F가 살아가는 방법
난 씩씩하다. 아니, 씩씩했다.
지금도 씩씩한가? 잘 모르겠다.
자주 울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씩씩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대학생 시절, 봉사 동아리 오빠들이 지어 준 별명은 ‘박 장군’이었다. 남자 못지 않은 체격도 한몫했겠지만 남자 비율이 70% 이상인 곳에서 여자라고 빠지는 것 없이 해내려고 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것들이 그들 눈에 장군감으로 비춰졌고, 어느 날인가 장군 이모티콘에 내 얼굴을 합성해서 보내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약해 보이는 게 지는 것 같아서 더 씩씩하게 굴려고 했던 것 같다. 남들 앞에서 우는 건 지는 것 같고 음악, 이야기가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날 때 울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건 창피한 기분이었기에 스스로 다독이며 시도 때도 없이 울컥대는 마음을 늘 쥐어 삼켰다.
움켜진 마음들이 모이다 보니 무기력이 되었다. 남들처럼 살기위해 내 마음을 외면했다. 한 쪽으로 치원 마음들은 갑갑한 이곳에서 해방시켜 달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내 마음들에게 미안해졌다. 이제부터는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마음들은 웅성웅성 자신만의 소리를 내며 본연의 자리로 찾아가고, 씩씩하게 우는 법을 배웠다.
우는 건 약한 것도 아니고 지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단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용기였다. 약하게 부서진 마음들은 부서져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조각들로 새로운 나를 열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씩씩하게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