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3배, 멘탈 6배 성장의 회고
안녕하세요. 현직 한량입니다.
오늘처럼 삶이 여유롭게 느껴진 적이 언제였더라. 근 몇 년의 시간 중에는 단연 가장 '한량'같은 시간 이리라. 딸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 설거지를 좀 하고. 거실에서 맨손운동을 한답시고 약 40여분을 씨름하고는, 밖으로 나가 아파트 계단실을 5번 왕복했으니 약 120층 정도를 걸었다. 일련의 흐름이 너무도 여유로워서 마저 오늘을 좀 더 즐기고 싶은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스타벅스에 가는 길에 있는 문구점을 들러, 굳이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왠지 항상 찾았던 것만 같은 자그마한 노트를 하나 사서 커피를 들고 앉았다. 카페의 화이트 노이즈를 듣고 있자니 절로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아- 이대로 잠시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하하.
두 달 빠른 종무식, 다시 나를 채우는 휴식시간.
내가 글을 쓸 때마다 바쁜 척을 해댔던 것이 사실이다. 생산 강박에 가까운 셀프압박주의자인 나는 잠시간의 틈이 난 때도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글을 쓰곤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돌아보니 글들이 항상 뭔가 로 가득 찬 느낌인 것 같기도. 오늘은 조금 다르다. 나는 한없이 비어있으며, 게으르고, 스타벅스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무릎 위에서 글을 쓰고 있다. 좀 이렇다 한들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요즈음 시간에 깨닫고 있다.
지난 추석 즈음부터 엉덩이 뗄 새 없이 바빴던 나는, 휴식에 대한 매우 급진적인 다짐을 하기에 이르렀다. 11월부터 2개월간 전혀 일을 하지 않겠다! 아내에게 선언하고 대신 10월까지 정말 미친 듯이 일을 했다. 어디서 그렇게 일은 자꾸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걸까 신기할 만큼 나는 큰 영업의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일이 차고 넘쳤다. 10월 말 즈음이 되자 입 안은 모두 터져나갔고, 기어이 모든 프로젝트에 마침표를 찍고 11월 초에 떠난 제주도에서는 그 흔한 귤 하나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너무 따가웠다.)
제주에서 돌아와 며칠은 손을 떨었던 것 같다. 하하.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당장 돈을 버는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 그 며칠을 버티고 여유를 부려보니 금세 긴장은 풀어졌다. 느긋해진 나를 보니 아내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 사실 아내가 나한테 많이 벌어와!라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성취 중독적인 일에 빠져든 것은 나였고, 그것이 결국 숫자가 되어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재미에 빠졌던 것도 나다. 그냥 당분간은 흐물거리는 슬라임 마냥, 나사 빠진 지금의 자세로 여러 가지를 기획하며 나를 놓아주려고 한다.
연봉 3배, 멘탈 6배? 낚시 죄송합니다!
연봉은 3배, 멘탈은 6배 성장했노라고 글의 부제목에 적었다. 마케팅을 업으로 살았던 짧지 않은 시간 덕에, 관종 본능 같은 것이 자극적인 숫자와 단어들을 선택하긴 했으나 멘탈 6배가 말이나 되나! 하하. 그러나 몇 가지의 사건에 의해 내가 그냥 월급 받는 마케터 고인석이었던 시절보다는 더 성장한 것은 사실이겠고, 연봉은 뭐 거짓은 아니다. 회사로부터 떠난 첫해에 약 1.5배, 둘째 해엔 약 2배, 지금 3년 차에는 만 10개월을 일하고 약 3배가 되었으니 갈수록 효율을 높이고자 하는 전략은 나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수입을 늘려갔는지에 대하여 짧게 회고해보자면! 일단 나는 일을 거절 없이 받는 타입이다 보니 항상 일이 많은 편이었는데, 내가 소화 가능한 캐파의 90 즈음에 이르렀을 때 추가로 들어오는 일에 대해서는 항상 기존의 수주 단가보다 30~50% 정도를 높여 제시했다. 그렇게 하면 클라이언트에 따라 하는 경우도, 떠나는 경우도 생기는데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비교적 높은 가격대에서 계속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한 번 거래를 하게 된 클라이언트들은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물에 굳이 파트너를 바꾸려 하지 않았고, 가격도 수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을 쌓아 올리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몸값을 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외 정글 속 스몰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 몇 번의 애타는 상황들을 맞이하기도 하였는데 가장 큰 것은 바로 '수금'이다. 업의 성격상 항상 대기업들과 일하기보다는 중소기업들과의 거래, 아니면 아예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과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이 수금에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작년에 한번 프로젝트를 통째로 도둑질당하는 경험을 해본 이후로 나의 작업 보호를 위해 계약 절차와 날인 등을 챙기고는 있는데, 그게 다 되어있다고 해서 수금이 무조건 보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행히 올해는 아예 수금을 하지 못한 프로젝트는 없지만, 수개월에 걸쳐 독촉을 해서 받아낸 경우도 있다. 일할 때는 즐거운데, 참 일 끝나고 수금이 늘어지면 그것도 괴롭다. 덕분에 법적, 행정적 절차들에 대해 공부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멘탈이 강해졌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나 스스로 작업에 대한 자신감의 상승에 있다. 대기업 프로젝트들도 여러 건, 정부기관 프로젝트도 여러 번. 특히 패션 브랜드, 명품 브랜드와의 작업까지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나니 이제 나 스스로 프레젠테이션 컨설턴트이자 디자이너라고 명함을 건네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 예산이 안 맞으면 깨끗하게 거절하고, 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클라이언트를 선택하는 것에 있어 겁이 없어졌다. 이것은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큰 내면적 가치가 아닐까 싶다. 올 한 해는 바로 그 토대를 키우는 아주 큰 역할을 한 한 해였다.
딸과 함께한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들
내가 퇴사를 막 했던 시점은 아직 딸이 돌이 되기 전이었다. 그렇기에 건강한 육아를 위해 퇴사를 선택할 만큼 당시에 육아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했을 때, 가장 큰 변화를 겪은 부분은 딸과의 시간이다. 아침 등원 무렵 1시간, 저녁 식사부터 잠자리까지 약 4~5시간. 아마도 평균적인 경우보다는 하루에 제법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아빠일 것이다. 나는 매일 딸과 아침 등원을 인스타그램에 기록했고, 저녁때는 깔깔댔다가, 삐졌다가, 울렸다가,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딸은 나중에 이 시간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정서적 유대만은 단단하리라는 믿음에는 의심이 없다. 재밌는 일도 있었다. 딸과의 유쾌한 아침 사진에 주목한 소셜 채널 딩고 패밀리에서 딸과 나를 소개해주어 과분한 인게이지먼트를 받기도 했다. (딩고 페이지 연결 링크)
딸과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어떤 유머 코드가 통하는 건지, 뭘 싫어하는지는 제법 알게 된 것 같다. 익숙하게 된 그 코드 덕분인지, 나는 다른 집 아가들에게도 제법 인기가 좋은 편이다. 요즈음은 내 본업인 프레젠테이션 디자인보다도 오히려 이 아이와의 놀이 관점에서 내가 많은 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조만간 콘텐츠를 기획하여 순차적으로 릴리즈 해보려고 하니, 많은 초보 엄빠들의 응원을 부탁드린다!
여전히 어려운 1인 기업, 4년 차를 기대하며
어렸을 적에 생각했던 서른 살은 엄청 어른이었는데, 막상 자신이 서른이 되었을 때 여전히 어벙하다는 허탈한 깨달음은 모두들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퇴사 후 벌써 만 3년이 지나도 그렇다. 매년 달랐고, 내년도 다르리라는 것 정도만을 안다. 다만 유연하게 시대에 적응하고 좀 더 나다운 삶을 위해 어떻게 고군분투할 것인가, 그 고민의 호흡만을 깨달아 가는 것 같다. 과연 내년에는 어떤 삶이 펼쳐질까. 나는 분명히 또 엉덩이 뗄 새 없는 바쁜 생활로 돌아가야 할 것은 뻔하지만, 지금의 여유는 일단 연말까지 물고 늘어져 보련다. 이렇게 빈둥거리는 시간 속에서 나는 또 다른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 조금 일찍 인사한다! 아듀- 2018.
고인석
FMCG 소비재 회사에서 브랜드 마케팅, 완구 제조사에서 B2C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다 퇴사, 현재는 프레젠테이션 전문 컨설팅 및 디자인 기업 <원포인트>를 운영하고 있다. 일과 삶과 육아의 공존에 대한 실천적 고찰을 하고 있는 1인 기업가이자 보편의 딸바보 아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