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처럼 똘똘했던 너를 추모하며
새해가 밝았던 오늘,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딸과 놀이방에서 블럭을 가지고 놀고 있던 평화로운 오전. 갑자기 희미하게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잠시 통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이내 그 소리가 눈물이 된 것이다. 나는 직감했다. 아, 똘이가 떠났구나.
나는 딸에게 적당한 핑계를 대고 안방으로 가 울고 있는 아내를 안았다. 결혼 전, 나도 17년이나 키웠던 강아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었기에 그 마음이 조금 짐작은 되었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까지 아내에게는 가장 따뜻한 존재였을 녀석. 나 역시 똘이 생각에 슬프기도 했지만, 슬퍼하는 아내를 봐야 하는 것은 더 크고 힘든 슬픔이었다. 잠시 그렇게 아내를 말없이 안고 있었다.
처가로 가는 길은 하나도 막히지 않았다. 딸은 잠시 본가에 맡겨두고, 나는 분주히 차를 몰았다. 유난히 길을 빨리 열어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빨리 도착했고, 똘이는 항상 봤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얼마 전 아내가 사 왔던 쿠션 방석 위에 웅크린 채, 고개만 바깥쪽을 향한 채.
아내는 반려견 추모공원으로 가는 길 내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쿠션을 조금 더 큰 걸 사줄걸, 이라며 몇 번을 자책했다. 내가 집으로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하며, 아내는 똘이를 안고 그렇게 눈물을 삼켰다. 아내가 안쓰러워 나도 눈물이 났다. 그래 녀석아, 이렇게 갑자기 가버릴 줄은 몰랐어.
똘이는 대단히 똑똑한 강아지였다. 내가 키웠던 강아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똑똑했다. 거의 대부분의 아내 말을 사람처럼 따랐다. 똘이를 대하는 아내의 방식과 철학은 내가 꼭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여긴 부분 중 하나였다. 아내는 마법처럼 따뜻한 언어와 제스처로 똘이를 다뤘다. 아마도 그런 케어 속에서 그리도 총명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똘이의 입장에서 나는 얼마나 황망하고 원망스러운 존재인가. 일생을 함께 했던 주인을 데리고 그 집에서 쏙 나와버렸으니, 무슨 원망을 들어도 내가 할 말이 없다. 아내를 자주 보지 못하게 된 똘이는 처가에 가끔 갈 때마다 대단히 아내에게 집착했다. 지금에서야 그 마음이 너무 애처롭다. 똘이 너에게 너무도 미안하다.
얼마 전 처가에 갔을 때, 똘이의 상태가 이제 제법 위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덧 똘이도 열일곱 살이었다. 눈에는 초점이 없고, 걸음은 앙상했고, 등뼈가 다 드러날 만큼 먹지 못해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나하고는 비할 수 없이 마음이 아팠을 아내는, 마지막 배려를 위해 우리 집으로 데려오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당연히 나는 찬성했다. 내가 감당해야 할 수고는 얼마든지 감내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내가 갑자기 빼앗아버린 시간,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 순간까지만이라도 네 주인 곁에 편히 있으렴.
하지만 우리가 잡고 있던 겨울여행 계획 등등이 있어 잠시만 미루기로 했고, 여차저차 며칠을 또 정신없이 보내다 어느새 새해가 밝았던 것이다. 그 며칠 사이, 똘이는 거짓말처럼 새해 첫날에 서둘러 그렇게 떠나버렸다. 데려올걸, 데려올걸 하는 아내의 혼잣말이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나 역시 화장을 하기 전 똘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미안하다 잘 가라 인사했다. 이별은 너무도 아팠다.
형님도 쏜살같이 추모공원으로 오셨다. 형님도 결혼 전엔 아내와 함께 똘이에게 정을 많이 주셨다. 가끔 아내만 너무 편애하는 녀석을 원망스럽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평소 상남자 같은 형님은 조용히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인사를 나누셨다. 형님은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는 않겠다고 하셨다.
똘이는 그렇게 한 시간 여가 지나고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먼저 데리고 오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유골함은 우리가 가지고 왔다. 날이 조금 풀리면 집 근처 볕이 좋은 곳에 묻어주기로 했다. 평생을 살았던 처가 근처에 묻어줘야 할까를 이야기하다, 내가 '자기를 제일 좋아했으니 자기 가까운 곁에 묻어주자'고 하니 아내는 눈물을 또 왈칵 쏟았다.
나도 미안하고, 아내도 미안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에게 사람은, 그 주인은 이렇게 사무치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진다. 아마도 그것은 강아지가 주인에게 주는 애정을 사람이 결코 따라갈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영원한 안식을, 따뜻하고 평안한 하늘에서 누리기를. 아내에게 커다란 행복이 되어주었던 너를 추모하며. 미안하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