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인석 Feb 07. 2023

100%의 사랑

아장아장 행복이 내게로 왔다

첫 글을 첫째 딸로 열었는데 이어서 둘째 딸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먼 훗날 두고두고 서운할 순서가 되지 않을까? 이 마음 약한 아빠에게 가장 무서운 공격은 딸의 서운함이기에 두 번째 글은 당연히도 우리 사랑둥이 둘째의 이야기다. 빛나는 나의 사랑, 이번 주말 첫 생일을 맞는 너에 대한 기록.


'기쁨'과 '행복'으로 우리 가정은 완성되었다. 문자 그대로 첫째의 태명은 기쁨. 둘째의 태명은 행복. 행복이가 더 의미 있는 것은 우리 집 기쁨이 언니가 함께 의견을 내어 결정한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뱃속에 있을 때부터 언니는 동생을 행복이라 불렀다. 검은 호랑이띠라고 하기엔 너무나 순둥한 우리 둘째는 잘 웃고 잘 먹고 무탈히 아프지 않으며 첫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기특하고 고맙고! 너의 그 첫 이름만큼이나 행복하다. 


조금 늦게 둘째를 결심했고 두 번의 유산을 겪었다. 그 사이 첫째와는 터울이 한 살 더 멀어져 일곱 해나 되었다. 조금 초조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온 우리 행복이의 심장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했기에, 마치 엄마 아빠에게 '걱정마세요 곧 만납시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집 안에 돼지와 양 뿐인 초원에 검은 호랑이띠의 등장이라 농담도 많이 했었는데 실제로 행복이의 태동은 엄청났다. 우리는 첫째와는 다른 대단한 육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각오를 했던 바에 비하면 검은 호랑이는 그 이름만큼의 위세는 전혀 없는 순둥이였다. 잘 먹고 잘 자고. 갓난아이에게 더 바랄 것 없이 잘 웃고. 재울 때마다 예민했던 언니에 비하면 잠투정도 없고(급 언니 공격), 대충 내려놔도 열 시간씩 통잠을 자는 자비로운 호랑이! 둘째는 사랑입니다-라고들 하더니 그 말은 참이었다. 두 배가 아니라 제곱으로 힘들다며 겁을 주던 아빠들도 있었지만 터울이 커서인지 지금껏 그리 느끼지는 못하였다. 무엇보다도 첫째가 둘째를 온 마음으로 귀여워하고 감싸안는 매일을 보며, 우리 둘째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생각뿐이다. 그저 사랑이더라! 하는 말에 더 공감이 된다.

언니가 너무 좋은 막내 호랑이 ㅎ

마흔이 넘어가면서 불혹은 아직 현자의 이야기라 생각되지만, 분명히 삶의 온도가 조금 내려간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다. 매일매일이 바쁘고 새로운 숙제들이 다가오는 것 같으면서도 멀리서 보면 같은 풍경이 아닌가 싶은 생각. 가슴이 예전만큼 뜨겁지 않고 부지런하지 못하다는 느낌. 다들 이러고 살겠지- 하는 생각을 가끔 해야 하는 매년 조금씩 조금씩 살이 찌고 있는 아저씨.(어째서 멈추지 않고 계속) 그렇게 하루를 달리다가 집 현관문을 열면, 순도 100%의 사랑이 나에게 꺅! 소리를 지르며 아장아장 기어 온다. 내복이 다 해지도록 콩콩 빠르게 기어 오는 저 걸음 속에 다른 감정을 의심하기는 어렵다. 저 눈빛에 담긴 나는 사랑 그 자체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어쩌면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보다 저 아장아장 몸짓에 깃든 사랑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두 팔을 벌려 너를 반기고, 번쩍 들어 올려 얼굴을 비빌 때 비로소 떨어졌던 마음의 온도가 훅- 하고 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에, 열정이 떨어졌다나 뭐라나. 맨날 똑같다나 뭐라나. 아빠가 그런 헛소리를 했지 뭐니? 어느새 내 왼쪽 다리에도 첫째 딸이 와서 감싸 안고는 얼굴을 보자마자 오늘 있었던 일들을 재잘거린다. 입으로 아이들에게 대꾸를 해주는 동안 한 걸음 뒤 아내와는 눈빛으로 안부를 나눈다. 세상을 뜨겁게 사랑하고 소중하게 지켜내며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는 그 순간으로 족하다. 글을 쓰는 와중에 머릿속에서 되감기 되는 그 아장거리는 걸음에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고마운 사랑둥이. 아빠가 고맙다.


첫 생일을 가족들과 조촐히 치러야지-하는데도 준비할 것이 참 많다. 딸들을 재워놓은 늦은 밤, 아내와 아이 생일상에 올릴 사진 고르는 일부터 성장 영상도 준비해야 하고. 가족들만 볼뿐인 초대장을 직접 만드는 엄마의 열정을 네가 알아야 할 텐데. 그렇게 분주함 속에 우리는 또 옛 사진을 꺼내어 행복을 곱씹는다. 

둘째 덕분에 일상에 따뜻한 장면 가득이다.

한 가지의 아쉬움은 오직 나의 체력이다. 언니는 조금이라도 더 젊을 적 아빠 기운에 무척이나 신나게 놀았던 수많은 날들이 있는데 우리 아가는 어떨까. 서운하지 않게 놀아줘야 하는데. 언젠가 지인과 아이에 대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연애를 할 적에는 '에이 뭐 그러던지!'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도 있었지만(엇 자기야 아니야), 딸들에게는 단 한순간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느낌이라고. 세상을 살다 보면 어차피 겪어야 할 실패와 좌절 별 수 없겠지만, 적어도 아빠와 나 사이에 어떠한 실망도 서운함도 없었으면 하는. 그래 쓰다 보니 드는 생각인데, 아내와 딸들이 나에게 서운함이 없는 인생이라면 그 이상 성공도 없겠다 싶다. 행복해! 까지 아니더라도 아빠에게 부족함 없는 사랑을 받았다는 그 느낌으로 세상 살아갈 힘을 얻고, 좋은 사람 어울릴 단단한 마음을 얻게 된다면 그것이 더없는 행복이겠다.


타고난 껄껄보랄까? 웃으면 일단 따라 웃는 것은 태어나서부터 쭈욱. 귀여운 것.


우리 둘째와의 내일이, 내년이 더 기대된다. 어서 이유식 떼고 기저귀 떼거든 단둘이서 나가보고 싶다. 언니와도 그런 추억들이 참 깊은 잔상을 남겼다. 물론 그렇게 따로 나서면 엄마가 안 챙겨주니 반쯤은 엉망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또 우습고, 왠지 벌써부터 껄껄껄 하는 너는 더욱더 호탕하게 웃어줄 것 같다. 우리 집 행복의 완성인 너.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고맙고, 사랑한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