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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인석 Dec 25. 2023

특별히 따뜻했던 크리스마스

딸바보 아빠의 못말리는 감정이입 기록

우리집 강아지 인형 월월이. 내 딸이 만 두 살 때부터 쭈욱 친구였던 강아지. 오늘 갑자기 다시 또 딸에게,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선물이 되어준 너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뭉클했던 크리스마스의 밤을 마무리해보려 한다.


언제나 동심을 지키며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올해는 정말 큰 난관이었다. 제법 구체적인 무언가를 아이에게 미리 듣고 준비하면, 기대를 벗어나지 않고 만족스러운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던 지난날들과 달리 올해 아홉 살인 우리 큰 딸의 소원은 조금(!) 특별했다. 


월월이. 그리고 공손하고도 빼곡했던 우리 딸의 카드.

월월이. 월월이와 꼭 대화하고 싶다고. 월월이가 움직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우리 첫째의 순수한 소원이었다. 다른 니즈(?)는 전혀 없었고, 오로지 월월이랑 얘기해 보고 싶다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다. 산타할아버지께 빼곡히 적은 카드에는 간절한 그 마음이 담겨 있었다. 딸내미는 24일 밤, 월월이를 트리 앞에 앉혀놓고 직접 만들어 쓴 카드를 옆에 가지런히 열어놓고 제법 늦게 잠이 들었다.


산타 할아버지의 능력을 의심케 하지 않으며, 동시에 월월이에 대한 그 따뜻한 마음을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짧지 않은 시간을 고민했다. 늦은 밤 한참을 고민하여 눌러 담은 산타할아버지의 답장은 길었던 생각만큼이나 간결하지는 못하였다. 월월이를 어차피 살아나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이 글이 우리 딸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혹시 길어진 이 카드의 필체를 보고 드디어 아빠를 의심하게 되려나. 나도 여러 생각 속에 잠을 청했다.


아직 이른 아침, 우리 딸은 막내 옆에 잠들어 있는 내게 다가와 글썽이는 눈으로 말했다. '아빠! 산타할아버지가 월월이랑 얘기를 해봤나 봐. 나 너무 감동받아서 볼 때마다 눈물이 나.'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안겼다. 나는 아, 올해까지는 잘 지켜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뭉클해진 마음을 애써 모른 척하며 '대박! 할아버지가 답장을 남겨줬어? 선물은?' 하며 손잡고 거실로 나올 수 있었다.


우리 딸의 의심 없이 따뜻한 그 마음을 지켜내고자 짜내었던 하얀 거짓말이지만, 사실 카드를 쓰던 이브의 밤에 이미 나 스스로 위안을 얻었다. 딸에게 좋은 친구였던 월월이. 함께 찍힌 많은 사진들. 수년이 지나 꺼진 솜을 꼭꼭 채워 다시 생명을 주었던 지난 어느 날 아내의 손길. 언제나 잠자리에 딸의 침대에서 함께 했던 익숙한 골든리트리버는 나에게도 어느새 소중했던 모양이다. 아내는 카드를 쓰는 내 뒤에서 글을 읽고는 이미 눈물을 닦았던 참이다.(둘다 주책) 그러니 우리 딸에게 이 강아지는 어떤 의미일까. 벌써 만 6년이 되도록 함께 해준 이 작은 강아지 인형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따뜻했던 기억을 머금은, 사랑의 흔적으로서 함께 해 오고 있었던가 보다.


아마 머지않아 우리 딸도 이 모든 실체를 알고 말겠지만, 산타할아버지께 받은 카드를 고이 넣어둔 그 상자를 언젠가 열어보았을 때 이 모든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이 언제이든 간에 아마도 월월이는 계속 딸의 방 한켠을 지키고 있겠지. 월월아 고맙다!


(아래는 산타할아버지의 답장 전문)


마음이 예쁜 우리 OO야, 할아버지는 OO의 편지 잘 받았단다.

바쁜 할아버지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참 기특하고 고맙구나.


할아버지에게는 장난감 세상을 지키지 위한 규칙과 약속이 있단다.

그래서 귀여운 월월이의 모습을 OO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이해해 줄 수 있겠니?

월월이도 무척 아쉬워 하지만, 서로의 세상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쉬워도 지켜야 할 약속이 있는 것이니 너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월월이에게 물어보니 그러더라. 계절마다 예쁜 옷을 입혀줘서 고맙고,

항상 소중히 대해줘서 고맙다고. 제주도 같이 간 것이 참 좋았다고 그러는구나.

당장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도 서로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더 감동했단다. 계속 이렇게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을 간직하기를.


월월이가 말하길, OO가 요즈음 친구랑 게임을 재밌게 한다더구나.

그래서 올해 선물은 게임기 안에 넣어두었단다. 마음에 꼭 들었으면 좋겠구나.

내년에 또 건강하게 다시 만나 인사하자 OO야.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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