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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운 May 08. 2019

작가의 탄생

그가 웹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월세와 관리비를 3개월 동안 밀리고 나서 수도가 끊긴 게 계기가 됐다. 십 년 전 스물여섯의 나이로 유명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화려하게 작가로 데뷔하고, 그로부터 4년 만에 낸 장편소설이 문학성을 인정받아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여일문학상>을 수상한 그였다. <여일문학상>이란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의 호를 따서 만든 문학상으로 상금이 3천만 원이나 되는 권위있는 상이었다. 심사평에서는 이야기의 흡인력과 감각적인 표현을 바탕으로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현시대의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한 그를 ‘문단의 발견’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오래지 않아 자신에게 부와 명성이 찾아올 거라고 믿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여일문학상>을 수상한 소설보다 더 나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이어서 낸 단편집과 장편소설은 이전의 극찬이 무색할 만큼 평론계와 대중 양쪽으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고, 그렇게 그는 잊혀져갔다. 수입에 꽤 도움이 되던 강연과 행사 섭외도 어느 순간 끊겨버렸고, 간간이 들어오는 문예지의 작품 연재로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있었다. 그는 글 쓰는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서른 중반에 편의점 알바라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일문학상> 수상자가 삼각김밥 바코드나 찍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수도가 끊겨버리자 그는 살고 있던 10평짜리 오피스텔을 비우고 밀린 월세와 관리비를 제하고 남은 몇 푼 안되는 보증금을 챙겨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갔다. 독립하기 전에 살던 방에 노트북을 놓고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들리는 TV 소리 때문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그는 제발 안방에서 TV를 보라고 짜증을 냈지만, 그의 어머니는 TV를 향해있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로 서른여섯 먹은 놈이 예술을 한답시고 돈 한 푼 못 벌면서 큰소리나 치고 앉아있다고 면박을 줬다.


민망해진 얼굴로 방에 들어와 포털사이트를 뒤적거리던 그의 눈에 띈 건 웹소설 작가에 관한 기사였다. 연봉 10억이 넘는 스타작가가 있는가 하면, 연 1천만 원 이하를 버는 작가나 수입이 거의 없다시피 한 작가도 많다는 게 기사의 내용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오로지 ‘억’만 들어올 뿐이었다. 연봉 10억은 무리더라도 다시 독립할 자금을 만들어 더럽고 치사한 이 집을 나가겠다고 결심했다. 아무렴 <여일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웹소설 작가만 못 쓸까 싶었다. 


그는 순수 문학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자신이 상업적인 웹소설에 뛰어든다는 게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아무도 모르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는 유명 작가의 작품들을 독파하며 웹소설을 익혀갔다. 독특한 소재, 장황한 비유가 없는 간결한 문장, 적절한 타이밍에 연재를 끊어서 다음 편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게 그가 발견한 인기있는 웹소설의 공통점이었다. 로맨스보다는 판타지물이 자신과 어울릴 것 같아 작품의 소재는 현대의 어리바리한 공시생이 우연하게 조선 시대로 타임워프를 하고 얼떨결에 정조의 호위무사가 되어 정적으로부터 왕을 지키며 성장해나가는 것으로 정했다.


그는 조선 시대의 역사서를 참고하며 글을 써내려갔다. 10편 분량이 완성되자 웹소설로 유명한 플랫폼에 필명으로 작가신청을 하고 바로 작품을 등록했다. 주간 베스트, 월간 베스트가 되고 돈을 쓸어담는 꿈을 꾸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음날 확인한 결과는 처참했다. [조회:21, 추천:0, 댓글:0] 고작 21이라는 조회 수가 비수처럼 그의 가슴을 찔렀지만, 애써 진정하며 다음 편을 업로드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매일 작품을 올렸지만, 조회 수는 계속 30 언저리에 머물렀다. 그러기를 10일째만에 처음으로 댓글이 달렸다.


[ID:lost_cat / 잘 읽히고 소재도 괜찮은데 재미가 약간 떨어지네요. 그래도 적당히 볼 만합니다]


그는 작품 초반이라 세계관 설명과 배경묘사가 많아 약간은 흥미가 부족할 수 있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 이후로도 lost_cat이라는 ID를 사용하는 독자는 계속 그의 글에 댓글을 달아줬다. 하지만 처음에는 호의적이던 댓글이 어느 순간부터 부정적인 내용으로 바뀌어갔다. [주인공은 능력도 없으면서 전부 운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네요], [이번 편은 초반에 나온 설정하고 어긋나는 것 같은데요], [왜 이렇게 지루하죠? 한 편 보는데 몇 번이나 딴짓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좋다는 말은 하나도 없고 작품에 대한 지적만 늘어놓는 lost_cat 때문에 그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는 마음 같아선 댓글을 신고하고 차단이라도 하고 싶지만, 유일하게 댓글을 남겨주는 독자인 lost_cat에게 그럴수는 없었다.


그렇게 연재를 이어간 지 한 달쯤 되었다. 이전보다 조회 수는 좀 올라갔지만, 댓글을 남겨주는 독자는 여전히 lost_cat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그가 연재로 번 수입은 고작 282원이었다. 돈이 되었든 댓글이 되었든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이 있어야 글을 쓸 맛이 생길 텐데 이제는 그도 지치기 시작했다. 자신이 보기에는 꽤 재미있는데 왜 이리 인기가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며 글을 쓰던 중 전날 올린 작품에 댓글이 등록되었다는 스마트폰 알림이 왔다. 오늘도 역시 lost_cat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댓글을 확인했다.


[ID:lost_cat / 한 달은 꾸역꾸역 읽었는데 오늘부로 하차합니다. 재미고 뭐고 다 떠나서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죄송하지만 글을 못 쓰시는 것 같습니다. 계속 작가를 하시려면 우선 좋은 소설을 읽고 필사라도 하면서 실력을 쌓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추천하는 책은 김지한의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 방법>입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그는 순간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였다. 맘에 안 드는 댓글을 남기던 유일한 독자가 떠난 게 기쁘면서도 슬펐고, 10년 전 등단한 프로 작가인 자신에게 감히 글 실력을 쌓으라는 말을 한 것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를 가장 비참하고 참담하게 한 것은 lost_cat이 추천한 책이 바로 6년 전 당당히 <여일문학상>을 수상한 자신의 작품이라는 사실이었다. 


지한은 씁쓸한 표정으로 ‘모든 작품삭제’ 버튼을 클릭했다. 오랜만에 <여일문학상> 상패를 한 번 보려고 했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오피스텔에서 급하게 이사오던 중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침대에 몸을 던져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잤다. 너무 오래 자서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난 그는 세수를 하고 자신의 모든 작품을 낸 출판사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혹시 자신이 출판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물었고, 사장님은 난감한 말투로 지금은 도서 재고를 관리하는 일밖에 없는데 괜찮냐고 말했다. 지한은 그 일도 좋다고 했고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그는 이제야 다시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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