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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화영 Mar 22. 2021

리츄얼(Ritual)에 대하여

조직문화를 정착시키는 도구

요 며칠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의 아침 등굣길에 함께했다. 딸아이의 학교는 일주일에 2~3일 정도만 등교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원격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학교에 가는 날에는 꽤나 무거운 가방을 메고 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운동도 할 겸 대신 아이 가방을 들어주려고 함께 등교를 하고 있다. 학교에 도착하면 매번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정문에 나와서 인사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이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정문을 통과할 때마다 목례와 함께 '사랑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신다. 매일 아침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따뜻한 인사와 함께 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축구나 배구 등의 단체 스포츠 경기에서도 매번 볼 수 있는 모습이 있다. 경기 시작 전에 모든 선수들이 동그랗게 어깨동무를 하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공사 현장에서는 작업자들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모여서 안전 구호를 외치고 작업을 시작한다. 학교 선생님, 운동선수들, 그리고 작업자들이 하는 행동들은 일종의 리츄얼(Ritual)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들은 매번 이런 리츄얼을 하는 걸까?

어떤 집단이 지향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들이 있다. 이야기, 상징, 그리고 리츄얼이다.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조직의 기원, 창업스토리, 성공담 같은 이야기를 구성원에게 공유하거나 혹은 조직을 상징하는 배지(badge)나 그래픽 등의 상징물을 만들어서 구성원들에게 배포하는 노력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매월 정기 조회에서 사가(社歌)를 부르게 하거나 중요한 회의를 시작할 때 기업 가치관 영상을 보게 하는 등의 리츄얼을 활용하기도 한다.

리츄얼이 가지는 힘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심리학자 캐슬린 보스(kathleen D.vohs)와 그녀의 동료들은 실험 참가자들을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초콜릿을 먹게 했다. 한 그룹은 간단한 리츄얼에 따라 초콜릿을 먹으라고 지시했다. 초콜릿의 포장을 벗기지 않은 상태에서 반으로 나눠서 한쪽의 포장을 먼저 벗겨서 먹고, 이후에 나머지 한쪽을 벗겨서 먹게 했다. 다른 그룹은 평상시에 본인이 먹던 방식으로 먹도록 했다. 실험 결과, 리츄얼에 따라 초콜릿을 먹었던 사람들이 초콜릿을 더욱 맛있다고 느꼈으며, 초콜릿을 먹는 경험 자체를 더 즐겁게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초콜릿을 맛보았으며, 이후에 초콜릿을 더 먹기 위해 두배나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당근을 먹기 전에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리츄얼을 하게 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후에 눈을 감고 당근을 먹게 했다. 이 실험에서도 리츄얼을 진행하고 당근을 먹었던 참가자들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는 결과를 얻었다. 캐슬린 보스는 리츄얼의 효과를 가능하게 한 핵심 요인으로 '관여'를 찾아냈다. 리츄얼을 통해서 사람들이 좀 더 심리적으로 깊이 관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러한 관여를 통해서 특정한 소비 경험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리츄얼, 조직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을 조직 방향에 맞추도록 돕는다.

브랜드 가치 세계 1위라고 하는 아마존은 '고객에게 집착하라(customer-obsessed)'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사업 초창기에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회의 때마다 빈 의자 한 개를 회의실에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고객이 실제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지만 가상으로라도 고객이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통해서 고객을 위한 회의를 하자라는 일종의 리츄얼을 한 것이다. 이를 통해 회의 참석자들은 '고객에게 집착하라'는 회사의 원칙에 맞게 고민하고 의사 결정하도록 노력하게 된다.

바다에서 배가 목적지를 향해 항해할 때, 그 배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중간중간 점검하지 않으면 나중에 엉뚱한 곳에 도착할 수밖에 없다. 조직에서 우리는 매일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달린다. 열심히 달리는 것만큼이나 현재 달리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츄얼은 구성원들이 조직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기하게 하고, 거기에 맞게 본인들의 생각과 행동을 맞추도록 돕는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사랑으로 교육하도록, 운동선수가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하도록, 공사 현장에서 작업자가 안전하게 작업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함께 사가를 부르거나 신조를 낭독하는 등의 리츄얼은 시대에 맞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리츄얼을 모두 없애 버리는 것은 조직문화를 정착하게 하는데 유용한 도구 하나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다. 구성원들이 우리 조직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기해 볼 수 있으면서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리츄얼을 만들어 보자. 우리 조직에서는 어떤 리츄얼을 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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