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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롱 Feb 09. 2022

내가 너무 싫은 날이 있잖아요.

그런 날, 떠올리는 얼굴



나를 있는 그 자체로 온전히 사랑한다는 건 진짜 가능한걸까? 

수 없이 많은 눈물 뒤에야 가능한 것이구나 짐작한다. 하지만 그 끝에 진정 완벽함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대부분의 이들은 나를 자존감이 높고, 사랑이 가득하다고 말하지만 사람은 늘 그렇듯 양면적이다. 


오늘처럼 별일 아닌 것에도 예민해져 있는 날에는 한 없이 나 자신이 밉기 마련이고, 그런 날엔 나를 감추고 입을 다물어 버리니까, 다른 사람은 모를 수밖에 없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유독 나의 못남이 강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하필이면 엄마가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 냈다. 

그리곤 변덕스럽게도 울음을 쏟아낸 나에게 다시 와 먼저 손을 내밀고 사랑을 가득 주고 갔다. 

많이 화가 났던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리고 더 진한 눈물이 났다. 

아까의 분한 눈물과는 다른 것이었다. 






"긍정적이어야 해, 나를 사랑해야 해, 나는 최고야"

내가 미운 날, 이런 억지 긍정 문장을 되뇌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이지가 않다. 마음 깊이 와닿지 않는다. 

대신 최대한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오히려 더 위로가 된다. 

그리고 다시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질 때쯤엔, 

이토록 무겁고 지루한 굴레 안에서 대체 무엇 때문에 힘겨운 발걸음을 하고 있는 건지 자문한다. 


매번 깨닫는다.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얼굴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래서 나는 노력하고, 다치고, 성장하고. 이렇게 계속 살아가고 있구나. 


너무도 특별하지 않은, 그저 그런 존재일 뿐인 내가 누군가에겐 전부이다. 

이 사실이 때로는 많이 부담스럽고, 도피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또 나는 그곳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무한의 굴레가 지겨우면서도 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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