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탔다. 이제 한국은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가 되었다. (노벨상 최다 수상은 적십자라는 건 다들 알고 계시겠지)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어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대부분 접해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설 <소년이 온다>는 작년에 읽었다. 이 책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상황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이다. 요즘은 읽어도 책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책을 펼쳐 보니 이 책 도입부에 적십자병원이 등장하는 걸 찾았다. 여기에 책의 내용을 옮겨본다.
<소년이 온다> p8
여러분, 적십자병원에 안치되었던, 사랑하는 우리 시민들이 지금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여자의 선창으로 애국가가 시작된다. 수천사람의 목소리가 수천미터의 탑처럼 겹겹이 쌓아올려져 여자의 목소리를 덮어버린다. 무겁디무겁게 올라가다가 절정에서 결연히 쓸려내려오는 그 곡조를, 너도 낮은 목소리로 따라 부른다.
오늘 적십자병원에서 오는 죽은 사람들은 모두 몇이나 될까. 네가 아침에 물었을 때 진수 형은 짧게 대답했다. 한 서른 명 될 거다. 저 무거운 노래의 후렴이 다시 까마득한 탑처럼 쌓아올려졌다가 쓸려내려오는 동안, 서른개의 관들이 차례로 트럭에서 내려질 것이다. 아침에 네가 형들과 함께 상무관에서 분수대 앞까지 날라놓은 스물여덟개의 관들 옆에 나란히 놓일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병원은 광주적십자병원이다. 책에 등장하는 당시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구 광주적십자병원 터에서 상무관까지의 거리를 인터넷 지도에서 재 보았다. 직선거리로 600 미터. 광주적십자병원은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었다. 이 병원으로 택시기사들이 사상자들을 후송했고, 안치되었던 시신이 도청 상무관으로 옮겨졌다. 영화 <택시운전사>에도 이 병원이 등장한다.
광주민주화운동 사적지 제11호인 구 광주적십자병원 표지석에는 '이 병원은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에는 '광주적십자병원'으로 부상당한 시민과 시민군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돌본 곳이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에서도 의료진은 부상자들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기 위해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활동을 폈다. 혈액이 부족하다는 것이 알려지자 시민뿐만 아니라 인근 유흥업소 종업원들까지 헌혈에 참여, 뜨거운 시민정신을 발휘했다. 항쟁 후에도 계속 부상자들을 따뜻하게 치료해 주는 등 적십자 정신을 빛낸 곳이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펜은 총보다 강하다고 하였는데, 한강 작가는 자신의 글로 평화의 소중함을 전하는 큰 일을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다른 책도 많이 얘기하던데, 나는 바쁜 일 좀 정리되면 집에 있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한 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