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 하시네요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만날 때, 우리는 가끔 실수를 한다. 문화가 달라서, 이해가 부족해서, 혹은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때도 있지만, 때로는 평생 잊히지 않을 악몽 같은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나에게 신입직원 시절 에티오피아에서의 기억은 그런 것이었다. 쥐구멍이 있다면 얼른 몸을 웅크려 숨어버리고 싶은.
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며 모금방송 촬영 현장에 다녀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어려움이 있다. 소위 ‘그림’이 잘 나오게 하려는 연출 속에서, ‘내가 과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평온하게 잘살고 있는 이들에게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뇌 말이다. 에티오피아에서의 그날도 그랬다. 방송국 피디는 빈민촌 아이들을 위한 급식행사 장면을 담고 싶어 했다. 연예인이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며,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런 그림 말이다. 일회성 급식이 무슨 큰 의미가 있나 반문하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한국인의 ‘정(情)’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뿐이었다. 마치 밥 한 끼를 든든히 먹이면 아프리카의 빈곤이 종식되기라도 할 것처럼.
급식행사 이틀 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에티오피아 음식을 고민하던 중에 피디가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우리가 한국 전통 음식을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닭죽 어때요? 닭죽!”
아니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 그것도 문화교류 행사도 아닌 빈민촌 아동 영양급식에서, 뜨겁고 끈적끈적한 죽을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본 적도 없고 수저 사용마저 어색한 아이들에게, 왜 굳이 한국식 식단을 제공해야 하는가에 대해 수많은 의문과 반감이 들었으나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고, 그 모든 준비는 내 몫이었다. ‘닭죽 200인분 끓이기’. 내가 요리의 99%를 완성해 놓으면 연예인이 마무리하여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놓아야 했다. 아주 간단한 미션이었다. 에티오피아에서 닭죽 200인분 정도야. 후훗.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우선 시내에 몇 군데 없는 한국식당 중 한 곳의 사장님께 사정하여 생닭 20마리와 쌀 한 포대, 그리고 마늘 등 몇 가지 양념을 구할 수 있었다. 행사가 진행될 유치원에서 가까운 가정집 부엌을 빌리고, 당일에 일을 도와주실 현지 어머님 한 분도 섭외했다. 행사는 다음 날 정오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현지 부엌을 처음 사용해보는 터라 음식 준비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당일 새벽 3시, 나는 모두가 잠든 시각 호텔에서 나와 닭과 쌀 포대를 챙겨 마을로 향하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고 대책도 없는 용기였다. 마을에 도착해 요리를 도와주실 마을 어머님의 단잠을 깨워 도움을 요청했다. 컴컴한 부엌 안, 우리는 작은 램프 하나에 의존해 손짓 발짓을 해가며 함께 닭을 손질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커다란 솥에 닭을 끓이고, 살코기를 발라놓고, 불려놓은 쌀과 마늘을 국물에 넣어 나무 막대로 하염없이 젓다 보니 어느새 동이 트고 행사시간이 임박해 오고 있었다. 이윽고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주인공인 연예인이 새벽 세시부터 준비한 닭죽에 소금을 한 꼬집 넣자 비로소 닭죽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급식행사를 시작하자마자 우려했던 문제가 터졌다. 몰려든 아이들의 눈앞에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끈적끈적한 쌀죽이 끓고 있었고, 줄을 서서 받아 든 움푹한 국그릇과 숟가락 또한 낯설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어색한 눈빛만 교환했고, 굶주린 아이들이 죽 한 그릇을 싹싹 비워내는 그림을 기대했던 피디는 아이들보다 더 당황한 모습이었다.
결국 피디는 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누나와 어린 남동생을 데려다가 ‘연출’을 하기 시작했다. 굶주림에 지친 동생을 위해 밥을 한 술 떠먹여 주는 어린 누나 콘셉트였다. 그러나 누나의 숟가락질이 능숙할 리도, 동생이 생전 처음 먹어보는 쌀죽을 맛있게 받아먹을 리도 없었다. 누나가 떠 먹여주려는 걸 두어 번 거부하던 동생은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고, 설상가상으로 촬영팀이 오누이와 실랑이하는 사이 다른 아이들은 먹던 그릇을 두고 운동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아이들을 나가지 못하게 하랴, 하던 촬영 마저 하랴, 연예인 신경 쓰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촬영팀은 애꿎은 현지 사무소 직원들을 다그치며 현장을 통제하도록 했다. 현지 직원들이 아이들을 위해 미리 준비해 놓은 콜라를 나누어주려고 하자 음료 브랜드가 화면에 노출된다며 그마저도 못하게 했고, 목마른 아이들에게 ‘소다'는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던 그때, 현지 사무소 직원 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나지막이 얘기했다.
“We are not animal.”
아…. 이게 아닌데, 이러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이러려고 내가 이 분야에 대한 꿈을 키운 게 아닌데…. 정말 너무나 부끄럽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죄책감, 미안함, 분노, 창피함….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당장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어찌어찌하여 상황은 마무리되었지만, 미안함과 죄책감에 온몸을 떨었던 그 날의 기억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 한 구석에서 나를 괴롭히곤 한다. 힘없는 신입직원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비겁한 핑계를 대 보지만, 어떠한 변명도 내 마음을 위로해 주지 못한다. 지금의 나라면 다를까? 또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새벽,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졸린 눈 비벼가며 끓였던 닭죽. 그 닭죽은 과연 누구를 위해 그렇게 밤새 끓었던 걸까. ‘좋은 일’ 하고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우리 멋대로 섣부르게 판단하고 결정한 아마추어들. 닭죽한테 보란 듯이 뜨겁게 한 방 먹었다.
글 정유경, 올해로 14년차, 아이 셋을 조련하며 개발협력 일을 하는 진격의 파워 워킹맘. 개발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배꼽도둑이 되는 것이 장래 희망입니다.
그림 이유연
편집 좋은 일 하시네요 (인스타그램 @suchagood_j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