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걸으면 맘이 편해진다. 왕복 8차로, 16차로의 뻥뚤린 대로변 인도는 왠지 삭막하고 불편하지만 살짝 뒤안길로 벗어난 골목은 정감 있고 따듯하다. 지나치는 행인들 마주하는 것이 가끔씩은 부담스럽고, 불편할 때가 있지만 적당한 경계심도 괜찮고 사람을 오히려 살짝 긴장하게 해주는 것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골목을 찾아 무언가에 골몰히 생각하며 걸어보라. 혹 누가 보면 길 잃고 헤매이듯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장점이 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자 날씨도 선선해졌다. 오늘도 습관 인양 늘 그렇듯 집을 나서 동네 골목을 산책한다. 매일 지나치는 낯익은 거리, 골목이라 딱히 시선을 집중하지 않고 걷다 보니 스치듯 머릿속에 우연히 한 문구가 별안간 떠올랐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극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조지 버나드 쇼의 유명한 묘비명이다, 보는 이, 읽는 이에 따라 해석이 조금 다르지만 치열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중장년 세대에게는 아마도 대부분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거라 본다. 매일 바쁘게 살며 경쟁하고 살아왔지만 뚜렷이 이룬 업적, 성과도 없고 자신의 일생이 어느덧 인생 중반역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허무하게 느껴질 일이다.
시대를 풍미한 극작가답게 죽음을 맞이하고도 위트 있는 유머를 남긴 버나드 쇼의 이 유명한 묘비명이 천재 작가의 화려한 생애와 함께 널리 알려졌지만 문구 해석의 오류에서 기인한 오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원문은 이렇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좀 더 정확한 해석은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죽음) 생길 줄 내가 알았다!” 즉 이런 일이 올 때를 예상했다는 다소 평범한 일상 언어인 셈인데, 꿈보다 해몽이라고, 세대를 넘어 명언으로 남을 줄이야. 오늘 오후의 골목길 산책에서 떠올린 문구가 머리에 맴돌며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골목길 산책이 잦아진 요즘엔 스마트폰 ‘만보기’ 앱을 하루 한두 번씩은 체크하는 버릇이 생겼다. 단순하고 심플한 구조지만 매일, 주간, 월간의 도보량을 수치로 보여주니 참 유용한 앱이다. 도보거리 외에도 도보시간, 소모 열량 등이 자동 카운트되는 것도 참 신기하다. 보여주는 데이터의 정확성과 신뢰성은 그렇다 치고 대략 하루의 도보량을 감지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한 번 아재의 유별난 궁금증이 발동한다. 왜 ‘만보기’인가? 그러고 보니 대체로 요즘 사람들은 ‘하루 1만 보 걷기’를 건강 습관의 지표로 받아들인다. 하루 1만 보가 어떻게 가이드라인이 되었을까? 이 대목에서 꽤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지표가 등장해야 될 법하지만 사실은 별거 없다.
1965년 일본의 한 제조회사가 계보기(pedometer)를 만보계(萬步計)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데서 유래되었고 이후 걷기 운동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1만 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었다. 왜 옛날부터 한국, 중국, 일본 등 한자 문화권에서는 ‘만(万)’자가 풍요, 충만, 최대치를 비유하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던가? 천석꾼, 만석꾼 할 때의 만처럼...
사상 초유의 코로나 팬데믹이 해를 넘어 올해도 벌써 종반에 가까워지도록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 국민 백신 접종이 진척되기를 고대하며 모두가 예전처럼 일상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원하지만 여전히 답답한 상태다. 머리도 복잡하고 가슴이 갑갑한 오늘 같은 날. 골목을 산책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무릇 상념에 빠져 때론 방향을 잃고 헤매기 일쑤이다. 웃픈 얘기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무상무념의 진공상태가 잠시나마 머릿속을 맑게 비우는 청량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골목에서 헤매이지만 무덤덤하고 진지하게 도시와 골목을 들여다보고 성찰해보려 한다.
이제부터라도 골목을 꼼꼼히 철학하기로 했다.
■ 황홀한 골목을 위.하.여 -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