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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나그네 윤순학 Oct 17. 2021

오르락내리락 계단도 자원이다.


계단도 기네스 등재가 되나?     


대한민국 제2 도시. 부산은 바다도 바다지만 유난히 시 전체에 산이 많다. 그래서 이름에 산(山)이 들어가는지. 부산은 지명 그대로다. 온 천지가 ‘산(山)’이다. 특히 한국전쟁시 피난민 정착지인 산복도로와 ‘40’ ‘168’ 등 숫자 이름이 붙은 계단의 산동네는 요즘 관광지로도 유명해졌다. 감천마을, 아미동 비석마을 등이다. 산동네 마을이 좁다란 골목과 길고 짧은 계단으로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룬다.

       

부산에서 계단 오르기란 일상이다. 다닥다닥 붙여지어 온 산을 뒤덮다시피 한 산동네 피란 마을의 혈맥이자 숨통의 역할을 해왔다. 바로 이 계단이 ‘한국 기네스 기록 인증’을 추진해 관광자원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부산 중구에 있는 계단은 모두 373곳, 총길이는 8,888m인데 우연의 일치인지 숫자 또한 신기하다. ‘8888’     

특히 영화에 나온 40계단이 제일 유명한데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 울지 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잣집에 /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이 묻는구나        

 

어르신들이 즐겨 부르는 전통가요 '경상도 아가씨'에도 등장한다. 부산 국제시장과 남포동, 피난민들의 삶이 배어있는 이 노래 속 40계단은 한국영화의 걸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안성기, 박중훈이 빗속에 결투를 벌이는 배경장소로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은 남포동 영화의 거리 관광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다.            

도시의 계단은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유명 관광지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하고 영화 속 명장면에 배경이 되어 훗날 추억의 관광지로, 인증샷 명소가 되기도 한다. 서민 달동네에 흔하던 계단은 서민의 삶과 애환을 담고 있다. 계단에도 가치(價値)를 부여하자. 돈이 될 수도 있고 더불어 사는 삶의 값진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세계인을 매료시킨 뉴욕의 계단.           


미국 문화의 상징, 세계인이 찾는 관광지, 뉴욕 하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데 또 새로운 랜드마크 명물이 탄생했다. 타임스퀘어, 맨해튼 고층 빌딩 거리, 월스트리트, 브로드웨이, 자유의 여신상, 하이라인파크, 허드슨강, 이 모두 현대 세계 문화를 이끌어 온 뉴욕의 아이콘이자 관광 명소인데 세계적 명물로 등장한 계단 2곳이 있다. 


그중 하나는 허드슨 강변에 있는 베슬(Vessel), 일명 '벌집 계단'이라고도 불리는데 전체적인 모양새가 벌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애칭이다. 걸작 예술품 못지않은 위대한 건축물인데 신화 속 바빌론의 계단도 이 정도는 못 따라갈 듯싶다. 마치 천국의 계단을 오르듯 계단 자체의 외관도 신비롭지만 계단 오르는 내내 사방팔방의 뷰를 관찰하고 음미하며 이내 사색하게 된다. 계단을 구비구비 올라가며 맨해튼 시내와 허드슨강을 다양한 각도로 조망할 수 있는 데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외관으로 즉각 뉴욕의 관광 명소가 되면서 ‘뉴욕의 에펠탑’이란 별칭까지 붙었다.     


뉴욕의 에필탑으로 떠 오른 베슬 계단은 그저 행복하기만 할까? 

    

호사다마라 할지, 계단의 유명세는 그에 못지않은 비극도 안겨다 주었다. 오픈한 지 몇 해가 안됐는데 벌써 네 번째 투신 사망자가 나왔다. 이번엔 나이 어린 14세 소년이 베슬 8층 난간에서 허드슨강으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소년의 짧은 인생이 안타깝다. 

     

새로 생긴 인위적 건축물. 베슬과 대비되는 뉴욕의 옛 계단도 명소로 떠올랐다.      


할리우드 흥행 영화 ‘조커(Joker)’의 배경으로 등장해서 ‘조커 계단’이라고도 불린 이 계단은 주인공 ‘아서’가 거닐던 허름한 골목길과 함께 뉴욕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주제가 게리 글리터의 노래 ‘헤이’에 맞춰, 광기 어린 춤을 추던 그 계단길. 악당 조커로 변한 아서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자 영화 포스터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름도 없던 60m짜리 평범한 계단이 어느 날 갑자기 조커의 의상과 춤을 따라 하는 관광객, 피에로 분장을 한 관광객 등 가지각색 진풍경을 자아낸다. ‘조커 계단’이 있는 뉴욕 브룽크스의 하이브리지 지역은 뉴욕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로 분류되던 곳이었다.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고, 후미진 길이 많아 우범 제대로 통했는데 영화로 인해 거리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추억과 감동을 주는 세계의 계단.     


이태리 로마의 핵심 관광은 트레비 분수로 상징되는 스페인 광장이다. 이곳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물이 또 있는데 바로 137개로 건축된 계단이다. 스페인 계단 또는 137계단으로도 불린다. 이 계단이 알려진 계기는 영화의 명작이라 손꼽히는 '로마의 휴일'에서 비롯된다. 영화 '로마의 휴일'은 1953년作으로 명배우 그레고리 펙, 오드리 헵번이 주연으로 열연한다.     

  

영화 속에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아이스크림(젤라토)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있다. 이후로 수많은 여성 관광객들이 이 계단에서 흉내 내고 따라 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애꿎은 아이스크림 덕분에 계단이 더러워지는 걸 막기 위해 로마시는 이 계단에서 아이스크림 먹기나 반입을 금지시켰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더욱더 특이한 점은 최근엔 아예 계단에 앉아있는 것도 금지된다. 혹시라도 관광객이 계단에 털썩 주저앉는 순간 계단 관리인의 기립 호루라기가 불어 제친다. 


계단이 간직한 작은 스토리텔링, 에피소드로 유명 관광 포스트가 되었다. 137계단은 관광객에게 행복을 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브라질 리오에는 예술가의 계단이라 불리는 명물 셀러론 계단이 있다. 빈민촌에 있는 평범한 계단을 칠레 출신의 예술가 '호르헤 셀러론'이 열정과 혼(魂)으로 아름다운 걸작을 빚어냈다. 215개의 계단에 전 세계에서 모은 2,000개가 넘는 알록달록 타일(세라믹)을 붙여 아름다운 예술 계단을 만들어 냈다. 


가난한 예술가 셀러론은 빈민가 이웃에게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해 이 고독한 예술작업을 시작했다. 1990년부터 무려 23년간 그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 집념의 의지로 이 예술 계단을 탄생시켰다. 사람들은 이 예술가의 이름을 따 셀러론 계단이라 칭하며 그를 추모하고 있다. 지금은 연간 수백만의 관광객이 찾는 리오의 명물이 되었고 리오 시민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삶의 애환과 고락이 상존하는 서울 달동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돈벌이와 생계를 위해 전국 팔도에서 서울로 몰려든 사정 탓에 서울에는 유독 하늘 아래 달동네가 많이 생겨났었다. 지금은 재개발로 없어진 혜화동, 후암동, 삼양동, 금호동, 홍제동, 봉천동등이다. 구불구불 혹은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골목 사이로 셀 수 도 없이 많은 계단이 마을을 이어주고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는 마을의 오랜 역사를 품은 108계단이 있다. 오랜만에 가보았는데 108계단 중앙에 마을 주민을 위한 작은 경사용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물론 한편으로 아직 계단이 있어 정 많고 훈훈했던 예전의 추억을 고대로 간직하고 있다. 더불어 사는 계단의 모습이 이러한 것일까? 

        

대학로에 위치한 이화마을은 몇 안 남은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 중 하나이다. 이 마을이 수년 전부터 감성마을, 벽화마을로 유명세를 타면서 주말마다 인파가 넘쳐났는데 해바라기, 물고기가 그려진 계단이 특히나 유명했다. 하지만 얼마 후에  관광객의 소음과 사생활 침해를 참지 못한 마을 주민이 이 계단 벽화를 크게 훼손하는 일이 생겨났다. 지금은 예전의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갔지만 이 계단도 한바탕 큰 내홍을 겪었다.  


계단(階段)에도 삶의 가치가 있다!        


모든 계단에도 품격이 다 다르고 세월 값이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삶의 애환이 어떤 이에게는 볼거리와 즐거움을 어떤 이에게는 경이와 환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수많은 계단에는 나름의 가치와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다.          


오르락내리락 계단은 소중한 자원이다.    


  

■  황홀한 골목을 위.하.여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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