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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랑 Apr 03. 2020

3. 한순간 변해버린 삶

할머니와 죽지 않을 병



우울증은 그녀의 기분을 롤러코스터에 태워서, 보는 사람까지 조마조마한 코스로 빙빙 돌리고 있었다.


 모든 것에 부정적인 그녀에게 여섯 자식들은 어떤 의미로든 그녀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다. 감성적인 딸은 매일 꼭 안아주었고, 굳은 마음을 가진 딸은 격려와 공감으로 강하게 위로했다. 누군가는 매일매일 찾아가 온몸을 마사지해주며 힘을 실어줬고, 누군가는 매일매일 찾아가 병원에 데려갔다. 가끔 그녀가 병원 가기 싫다고라도 하면 무엇 때문인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고, 그렇게 힘들면 오늘은 쉬자며 목적 잃은 방문임에도 다정하게 희망으로 회유했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죽지 않을 병은 나아가고 있었지만, 그렇지만


 우울증은 전혀 떠날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항상 부정적인 그녀 자체가 익숙해져 갔다.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삶을 비관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병들게 했을까.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눈귀를 닫고 입으로 절망을 쏟아내는 사람이 되게 한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구병모 작가의 소설 <파과>에서 주인공 조각은 ‘노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걷는 것’이라고 했다. ‘걸을 수 있는 노인’과 ‘걷지 못하는 노인’의 삶은 너무나 극명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녀에게 걷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노인내가 걷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누워서 손만 벌리며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는 거니, 항상 건강해야지.”

 라고 말했다. 다행히 그녀의 다리는 늙긴 했어도 제 할 일을 다 할 수 있었다. 또 오랜 밭일로 허리가 굽었을 만도 한데, 그녀의 허리도 항상 꼿꼿했다. 덕분에 그녀의 걸음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큰 키 때문인지 느린 걸음도 당당하게 느껴지곤 했다. 80세가 지나면서 손이 많이 가는 농사를 포기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크게 아픈 곳 없이 아주 성한 육체를 갖고 있었다. 매일 동네 마실을 다녔고, 회관에서 화투를 쳤고, 집 앞의 텃밭을 가꿨다.


 그랬던 그녀는 병이 시작되자, 집 앞에 대놓은 차까지 걸어가는 것도 힘들고 무섭다고 하기 시작했다. 병은 피부병 같은 것이어서 절대 그녀의 근육을 못쓰게도, 통증을 유발한 적도 없다. 그녀의 다리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고, 식사를 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갑자기 다리에 힘이 없을 것을 걱정하기 시작하였고, 소화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잠이 오지 않는 것을 한탄했다. 실상은 잘 걸었고, 소화에 문제가 없었으며 낮잠을 많이 자서 저녁때 잠이 안 오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어느 주말, 나는 그녀의 셋째 딸인 나의 엄마와 함께 그녀를 오래도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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