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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 Oct 04. 2023

끝없이 스스로를 증명해 내는 고단함

To 2014 From 2023 [Part2]

2023년 10월. 바빴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숨 고르기를 하고 있어. 

바로 얼마 전에 회사와 재계약이 있었고, 참 감사하게도 또 한 번 지난 1년 간의 성과를 인정받았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스스로를 증명해 내는 고단함이 있단다. 

이때까지는 회사와 파트너들에게까지였지만, 앞으로는 대중 앞에서 증명해 내야만 하겠지.

그래도 제일 고단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생각해. 


취업 준비와 인턴 기간을 거쳐 드디어 직장이 생겼을 때, 모든 것을 열심히 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

준비뿐일까? 잘하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근질했었던 것 같아. 

그런 나를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회사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이사진들 앞에서 기획 아이템 2개 이상을 준비해 피칭하는 '피칭데이'를 의무로 참여시켰어.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피칭한 아이템이 1단계를 통과하여 시놉시스로 개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고.

그렇게 첫 회사에서 주어진 아이템 2건을 기획 개발하고, 시놉시스를 집필하는 동시에 내 아이템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거야.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대기업과 사람 위주로 굴러가는 제작사는 너무 달랐던 거야.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겪은 제작사는 잘 나가는 회사였지만 윗사람의 마음에 따라 휘둘리는 시스템과 여기저기가 모난 사람들이 막내와 같은 약자에게 지나치게 모질게 구는 곳이었어. 

그런 부당함과 불합리함을 유독 참지 못했기에 사람들의 걱정거리가 되었지. 

신입 여직원이란 이유로 사무실의 공과금을 지불하는 등의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일을 지시했고, 그걸 묵묵히 받아들인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알고 있어. 네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참고, 많이 노력했는지.

너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어. 단지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꽤 자주 비합리적이고 엉망이라는 것뿐이지. 머지않아 회사에서 주는 기회라는 것도 모두 허상이었고, 너는 그저 싼 값에 얻은 하인에 불과했으며, 분수를 잊고 자꾸 튀어나와서 견제를 받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 좌절한 이다음 너의 나날들이 참 아프다. 그렇지만 넌 억울하다고 화만 내고 포기하지 않았어. 허울뿐인 기회일지라도, 스스로를 증명해 낼 계기들을 계속 만들었고, 붙들고 매달렸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의 목표를 만들어 달성해 나갔어. 


그랬더니 어느새, 나를 좀 봐. 네가 만들어낸 나를.

10년 후의 나는 여전히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너를 먼저 알아보고 꼭 안아주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었단다. 

너의 불완전함, 타오르는 격정, 네가 스스로를 증명해 나가는 고된 시간들이

어떤 놀라운 일을 데려오는지 너의 꿈에라도 살짝 들려 알려 주고 싶구나.



커버 사진

루카 구아다니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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