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르고운 Sep 20. 2022

자전거로 찾아간 시간 속의 물음표

숱한 물음표가 만들어졌지만 답을 알 수는 없었다.

금산사 미륵전

  

                                                         

  5월 초순, 파스텔 톤의 고운 산색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직 내게도 봄처녀 나물바람 나듯, 설렐 수 있는 불씨가 남아있음을 고마워하며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일편화비감각춘一片花飛減却春이라며 안타까워하던 시인의 마음이 이랬을까? 이미 매화, 벚꽃이랑 이른 봄꽃들은 다 지고 철쭉도 시들어 봄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흩날려 떨어지는 한 장의 꽃잎에도 봄이 사위어가듯, 내 삶의 시간이 떨어지는 봄 꽃잎과 함께 날려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늙바탕에 시작한 자전거 타기이지만, 쉬운 길을 마다하고 젊은이들도 힘겨워하는 고갯길을 아등바등 넘는다. 가파른 고개를 헐헐거리며 넘어서면 마치 젊은이가 된 듯, 내게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아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싶은 욕심이 일어서이다. 내게 다가오는 그 시간을 어떻게든 멀리 두고 싶어 안간힘을 다하는 것이다.

  전주 효자동에서 모악산 기슭을 따라 독배 고개를 향하여 올라갔다. 목구멍에서 단내가 나도록 자전거를 비벼서 가까스로 잿 마루에 올라섰다.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아직도 가파른 길에 올라설 힘이 남아있음이 흐뭇했다. 그러나 흐뭇함도 잠시, 부질없다는 생각과 함께 외로움과 짙은 그리움이 엄습했다.


  재작년에 이 재를 넘어 정읍시 고부면에 다녀왔던 날에는, 요양병원에 누워 있던 아내에게 가서 왕복 100km가 넘는 거리를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대견해했었다. 작년 가을까지 나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요양병원에 찾아가서, 하루 동안 지낸 이야기를 해주고,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을 말해줄 수 있었다. 내가 가는 길에, 내가 생각하는 모든 일에는 항상 그녀가 같이 있었다. 그렇게 내 말을 들어주며 눈을 깜박거려서 날 칭찬하고, 때로는 눈을 크게 떠서 날 나무라던 아내가 지난 10월에 홀연히 떠났다. 아무도 모르게 눈짓 한 번 남기지 않은 채 날 두고 가뭇없이 갔다.

  아내를 향한 그리움이 내 마음을 일그러뜨릴 즈음에 땀이 식어 산산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보고 싶은 곳이 생각났다. 아내와 자주 들렀던 금산사에 가보고 싶었다. 독배 고개 내리막의 탄력을 받아 금산사 네거리를 거쳐 단번에 절까지 올라갔다. 석가탄신일을 며칠 앞두어 입구 도로에서부터 경내에는 울긋불긋한 연등이 수없이 걸려 한들거리고, 평소보다 많은 신도와 스님들이 부산하게 돌아다니며 명절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었다. 무르익은 봄의 푸름이 불러온 포근한 바람 사이로 스님의 독경 소리가 낭랑했다.


  평생 내 사진 모델이었던 아내는 금산사의 견훤 성문에, 금강문에, 당간지주에, 방등계단에, 미륵전에서 웃고 있을 듯했지만,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아련한 그리움만 여기저기 그녀가 섰던 자리에 바람처럼, 슬픔처럼 흐르고 있었다. 어디에도 그 미소가 남아있을 턱이 없음에도 한달음에 달려온 마음은, 그녀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보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리운 그 느낌이라도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이런 일에는 뭐라고 이름 지을 분명한 것이 없다. 그저 그렇게라도 뒤적거려보고 싶은 아쉬움 때문이었을 게다.

  분주한 듯 웅성거리지만, 들썽거리지 않는 절 분위기에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 석련대 철책에 자전거를 기대 놓고 미륵전 돌계단 옆 석축에 걸터앉았다. 눈앞에선 부처님을 맞이하는 기쁨과 희망이 넘쳐흐르고 있었지만, 이제 어디에도 그녀가 없고 나 혼자인 것을 실감한 나는 그저 허망했다. 훈풍 속에서 시린 외로움에 떨어야 했다. 기쁨의 자리에 한 덩이 외로움으로 동그마니 앉아있으려니, 몸에서 힘이 새어나가듯 흐트러지고 힘들게 비벼 온 자전거 타기의 노곤함이 밀려왔다. 졸음이 쏟아졌다. 모자로 얼굴을 덮고 걸터앉은 채로 몸을 뉘었다.


  눕자마자 가물가물 잠이 들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중략)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하략)’ 천수경이 들려왔다. 천수경은 목탁소리와 함께 낭랑한 스님의 목소리로 들리다가, 아스라하게 어머니의 음성으로 들리는 듯하다가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까마아득하게 잊었던 그 먼 시절의 소리.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경문이 노곤한 낮잠 속에 들어와 비몽사몽 가운데 또 하나 그리움을 깨웠다.

  일제가 전쟁물자로 모든 걸 걷어가던 시절에 몸바탕이 여리게 태어난 나는 첫돌이 지나기 전에 동생이 들어서는 바람에 젖배를 곯았고, 시름시름 앓다가 폐렴에 걸렸다. 거의 포기할 지경이었지만, 어머니와 누나가 매일 나를 업어 병원에 데려가 주사를 맞히고 돌보았다. 어머니는 밤마다 날 안고 천수경을 외우며 관세음보살의 자비로 막둥이 아들의 목숨을 살려주기를 빌었다. 그렇게 거의 일 년을 계속한 끝에 내가 목숨을 부지했다고 했다. 아픈 치레를 달고 살았던 나는 항상 어머니의 치마꼬리에 매달려 지내면서, 걸핏하면 몸이 부다듯해서 어머니의 천수경을 들으며 살아야 했다.

  의미도 뜻도 모르고 들었던 경문은 내게 자장가였고 어머니의 체취처럼 익숙한 소리였다. 자라면서 몸이 건강해졌고, 군대에서 ‘모친 사망 급래 요망’이라는 전보를 받았던 이후에 아득하게 잊었던 천수경이 갑자기 내 귀에 파고든 것이다. 그 먼 시절의 그리움이 스님의 독경소리를 따라 내 가슴에 따뜻한 온기로 퍼져 들어왔다.


  군대에서 제대하여 어머니를 잃은 아픔과 외로움에 어려워하던 시기에 아내를 만났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차츰 사그라졌었다. 그때처럼 아내를 향한 지금의 내 그리움도 살다 보면 시나브로 잊힐 것이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천수경으로 들렸을까? 세상에 오는 일이 곧 가는 길에 들어서는 것인데, 발싸심해도 가는 길을 피할 수 없으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소중하게 쓰라는 어머니의 당부였을까? 어머니에게 천수경은 가정과 당신을 지키는 무기였고, 당신 사랑의 모든 언어를 압축한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었음을 내게 일러주신 것일까? 돌아오는 자전거 위에서 숱한 물음표가 만들어졌지만 답을 알 수는 없었다. (2016년 봄)



이전 06화 소리의 Layer를 찾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