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길거리에 던져두고 밥을 벌고 있었다."
새벽을 여는 소리, 빛, 삶
커튼을 걷고 베란다 큰 유리창을 열었다. 짜르르하도록 차가운 새벽이 정수리를 지나 이마에 꽂혀 든다. 내려다보이는 길과 자동차, 가로등 불빛이 선명하게 다가선다. 난간에 몸을 걸쳐 내밀고 한껏 몸을 새벽 안으로 밀어 넣어본다. 온몸에 새벽 기운이 가득할 즈음에 내려섰다. 방문을 활짝 열어 새벽을 방안에 불러들였다. 밤새 내가 뱉어낸 잡내와 퀴퀴한 냄새가 모두 빠져나가서 숨쉬기가 한결 수월하다.
베란다 창을 닫고 상큼한 새벽 기운을 즐기다가, 아예 밖으로 나가서 몸으로 새벽을 만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다가 덧잠에 빠지는 게 싫었다. 얼른 바지를 입고 머플러로 목을 감싼 뒤에 두툼한 점퍼까지 입었다. 기온은 영하 5.6도, 대기는 보통이다. 얼룩빼기 비니를 쓰고 장갑까지 챙겨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 마당에는 벌써 여기저기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번득인다. 벌써 새벽을 깨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파트 구내를 벗어나 공원으로 갈까 하다가 새벽잠을 털고 하루를 여는 사람들을 찾아서 불빛이 줄지어 흐르는 천잠로 거리로 나갔다. 네거리의 신호등이 번쩍번쩍 점멸하는 가운데 택시와 작은 트럭, 승용차들이 새벽을 가르며 쌩쌩 달린다. 이미 그들의 아침은 시작되었다. 달리는 차의 소음이 거슬려서 새벽 산책이나 할까 하고 공원길로 막 들어서려는데, 차들이 무섭게 달리는 도로에서 반짝이며 움직이는 게 보였다. 멈춰서 자세히 보니 어두운 새벽길에서 쓰레기를 주워 치우고 비질을 하는 환경미화원의 야광 어깨띠에서 반사하는 빛이었다.
과속 차량이 질주하는 위험한 도로 위를 오가며 쓰레기를 쓸고 줍는 이들, 추위를 막을 옷이라도 제대로 입었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스쳤다. 어둡고 위험한 도로에서 일하는 그를 걱정하며 바라보다가 막 고개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끽~~” 급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승용차 불빛이 덮칠 듯 다가갔다. 그의 어깨띠 빛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자동차도 멈추었다. 순간, 나는 그가 차에 치였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해서 현장에 달려가려 했다.
그때 다시 그의 어깨띠가 보이더니 달리던 차를 향해 뭐라고 몇 번 손짓하더니 이내 다시 갓길을 쓸기 시작했다. 멈추었던 자동차들도 가던 길을 가고 도로에서는 아무 일 없었던 몇 분 전의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오로지 어깨띠의 반사판만 믿고 일하는 그는 그런 일이 흔하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길을 쓸고 쓰레기를 주우며 금세 저만치 멀어져 갔다. 멀리서 바라본 나만 놀란 가슴이 되었다. 그는 그렇게 위험 속에 뛰어들어 일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목숨을 길거리에 던져두고 밥을 벌고 있었다. 그런 위험에 몸을 사리어서는 밥을 먹을 수 없는 현실이 그를 새벽의 위험 속에 내몰았을 것이다.
산 자들의 새벽 시간은 날 선 추위나 어둠, 위험 따위에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생명을 잇는 일은 낭만이나 연습이 아닌 아슬아슬한 실전이라는 걸 새벽의 환경미화원은 잘 보여주었다. 나의 부모 세대와 내 젊은 시절에도 저렇게 새벽이 열렸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추웠고 입은 옷은 얇아 열심히 움직이지 않으면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자동차의 위험은 적었지만, 추위와 부실한 영양으로 언제든 쓰러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부모라는 이름은 얼마나 무겁고 큰 짐이었던가? 부모는 딸린 식솔을 모두 책임지는 가정의 기둥이었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부모를 의지하고 따르는 자식들의 마음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자식을 위해 내 한 몸쯤은 쉽게 던지는 부모였고 그 부모를 따르는 자식의 마음은 절대의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 시대에는 춥고 가난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정’이라는 따뜻한 국물을 ‘호호’ 불어 마시며 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
새벽을 몸으로 안아보려 나선 산책길에서 아픈 삶의 현장을 만나 많은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런 새벽에 위험을 무릅쓰는 일쯤은 흔한 삶의 모습일 수 있다. 그런 삶에 비하면 내가 남은 시간을 위하여 자전거를 비벼 힘을 키우고 맑은 공기를 탐하는 일이 과연 잘하는 짓인지도 생각했지만, 쉽게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저 나도 이 광대한 우주의 한 부분이니 그 흐름에 티끌 같은 존재로 실려 갈 뿐이라고 마음을 다독거릴 수밖에….
(2017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