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인디안 썸머'라는 영화를 봤다. 한 여자가 집에서 감금당하며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겨우 남편을 죽이고 밖으로 탈출한다. 집을 떠나 먼 곳으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매표원의 "어디로 가실 건가요?"라는 말에 그녀는 말문이 막힌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갈 수 있는 친정도 없고, 오랜 세월 동안 집에만 있어 친구도, 갈 곳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자신이 죽인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어제 대전오월드에서 퓨마가 동물원을 탈출했다고 조심해서 퇴근하라는 긴급 재난문자가 갔다고 한다. 본능에 충실해 자유를 찾으러 동물원을 탈출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추측에서 발송한 문자였다. 그러나 달리 동물원에서만 살았던 퓨마 호롱이는 다른 곳으로 갈 줄을 몰랐다. 호롱이는 동물원 안에서 발견되어 마취총을 맞고 도망치다 배수로 내에 박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사람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살되었다.
호롱이가 도망칠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한 사육사의 잘못인가, (아마도) 호기심으로 밖을 나와 본 호롱이가 잘못인가, 호롱이가 도망쳐도 동물원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도록 동물원을 만든 인간이 잘못인가.
동물원이 동물을 보호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멸종위기 동물이 동물원에서 새끼를 낳는다고 해도 한 세대 정도 종이 유지되는 것뿐, 그 종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근자감을 버렸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동물원이 아닌 자연에서 동물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갑자기 동물원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미래에는 동물원이 사라지면 좋겠다.
그리고 인디안 썸머 처럼 짧고 강렬했던 호롱이의 시간이 고통스럽지 않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