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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균 여행기자 Oct 05. 2020

광주 정신을 다시 새겼다

ACC와 전일빌딩245, 그리고 육전

전일빌딩245 꼭대기 전일마루에서 바라본 풍경

고향 광주에 20년간 거주했고, 매년 4~5번씩 이상 방문하지만 여행을 목적으로 어딜 돌아다닌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집-학교, 상무지구, 시내라고 불리는 충장로, 염주체육관 정도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서울에 거주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본가 방문에 그쳤다. 무등산, 5·18민주화운동 관련 공간들, 패밀리랜드 등의 관광지는 워낙 어릴 때부터 다니던 곳이라 여행 느낌이 거의 나질 않는다. 그나마 유명해진지 몇 년 안 된 광주송정역 앞 1913송정역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여행기자를 업으로 삼고 나서야 처음으로 광주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벌써 2년 전 일이다. 매년 한국여행업협회(KATA)에서는 여행사 상품을 대상으로 국내우수여행상품을 선정하는데, 광주가 일정에 포함된 상품이 있었다. 비록 1개뿐이지만 양림동 일대와 사직공원, 광주호 호수생태원, 월봉서원 등으로 알차게 구성된 일정이었다. 대부분 처음 방문했던 곳이라 내게도 색다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광주 출장은 없었다. 2019-2020 우수여행상품에 광주가 포함된 상품은 찾아볼 수 없어 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다 2년 만에 기회가 왔다. 8월 말부터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렸지만 다행히 출장이 임박한 시점에 광주는 잠잠했고, 마스크를 벗는 등의 행위가 불필요한 사진 촬영 위주였다. 완전히 홀가분한 마음이라곤 할 수 없지만 8월 내내 집에 묶여 있던 몸을 움직이고, 가족도 만날 수 있어 기쁜 마음에 출장길에 올라섰다.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9월17~18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제8차 국제협회연합(UIA) 아시아태평양 총회에서 서울과 광주의 명소를 360 VR 영상으로 홍보했다. 이번 출장은 그 장소들을 지면으로 한 번 더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광주에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와 전일빌딩245 등이 선정됐다. ACC는 내부 시설은 둘러보질 않았지만 종종 지나쳤던 장소고, 올해 5월 리뉴얼을 마치고 다시 시민에게 돌아온 전일빌딩245는 첫 방문이었다. 사실 해외 출장 같은 경우는 국제선 타러 인천공항 가는 길부터 설레고 기대도 되는데, 국내 출장은 그렇지 않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기대감 없는 방문에서 큰 재미와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광주 정신을 바탕으로 아시아 각국 문화를 소개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다양한 전시와 체험 공간이 특징이다
옛 자료들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번 일정의 시작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다. ACC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교류·연구·창제작·교육을 통해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아시아 여러 나라와 함께 성장하고자 2015년 설립됐다. 특히 다양성과 인권, 평화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예술과 문화로 소통하는 공간이다.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인들이 자유롭게 화합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을 지향하며,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민주평화교류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총 5개의 원으로 구성돼 있다. 


내부 공간을 구경한 건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 있고, 여행자나 시민들이 편하게 들려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문화정보원과 문화창조원 인상적이었다. 문화정보원 내 라이브러리 파크에는 아시아 문화와 관련된 서적, 사진, 음반 등 다양한 콘텐츠가 준비돼 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눈여겨본 공간은 옛 시대를 흑백 사진으로 채운 곳이다. 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국가의 몇십 년 전 일상을 담아낸 사진들이 나를 그 시간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연출된 사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순간들을 포착했기에 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제한된 시간만 머물 수 있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또 노란색, 연두색으로 꾸며진 도서관도 앉아서 책 읽고 싶은 마음을 한껏 들게 했다. 


문화창조원도 각종 전시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인권, 문화 등을 주제로 한 전시가 수시로 진행돼 예술 감수성을 채우고 싶을 때 방문하면 딱이다. 층고가 높아 답답함이 없어 오래 머물러도 될 것 같고, 작품 배치와 크기가 비교적 커 시원시원한 인상을 줬다. 어려울 수 있는 예술이 친숙하게 다가오도록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탓에 전시관 운영이 원활화지 않았는데 어려운 시기가 끝나면 꼭 다시 방문해 이 공간들을 좀 더 깊숙하게 들여다봐야겠다. 하늘마당에서의 피크닉도 빠트리지 말자. 


이번 일정의 핵심이고, 다시 한번 광주의 정신을 새기게 했던 전일빌딩245. 전일빌딩은 올해 5월11일 ‘전일빌딩245’로 다시 태어났다. 52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 흔적이 남아 있다. 빌딩 이름에도 최초 총탄 개수 245를 활용했다. 광주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만나고, 미래를 꿈꾸는 장소로 나아갈 예정이다. 


지하 1층, 지상 10층의 빌딩, 그중에서도 민주화운동의 긍지와 명예와 관련된 콘텐츠를 다룬 9~10층이 핵심이다. 

이밖에도 가장 높은 층의 전일마루를 비롯해 광주콘텐츠허브, 남도관광센터, 245살롱, 카페245, 굴뚝정원 등의 편의시설이 있어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이곳의 매력을 전부 느낄 수 있다. 


9~10층에 자리 잡은 5·18메모리얼 홀은 헬기 사격의 역사를 전시로 재구성했다.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증거, 목격, 왜곡, 기록, 진실, 에필로그, 기획전시로 마무리된다. 특히 탄흔 원형이 보존된 공간과 전일빌딩 헬기 사격 영상을 통해 당시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공간이 인상적이고 기억하는 게 맞지만, 그중에서도 전시관 초입 총알과 빌딩 사진을 활용한 예술 작품과 169번 총탄의 흔적이 특히 뇌리에 깊이 스며들었다. 예술 작품의 경우 총탄이 마치 관람객에게 날아와 박히는 것처럼 제작했다. 1980년 당시 계엄군에 저항했던 광주 시민들이 겪었을 공포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극한의 무서움에 맞서 끝까지 광주를 지켰던 모든 이들, 그리고 그 가족에게 또 한 번 경의를 표했고, 안녕을 바랐다. 

다음으로 '169번 탄흔'이다. 빌딩에는 헬기 사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탄흔의 흔적이 상당히 많은데 169번이 특히 중요하다고. 1980년 당시 전일빌딩보다 높았던 건물이 없는데, 169번은 총탄이 위에서 아래로 발사됐을 때 생길 수 있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일빌딩245를 관람하면서 생각한 건 진실과 거짓이다. 거짓을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게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증거와 조사,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입증하는 편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100명의 범인을 놓치는 것보다 1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드는 걸 피해야 하기 때문에 수사 기관과 법 해석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1980년의 충격적인 사건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왔다. 여전히 숙제는 남아 있지만 지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주기를 언제나 응원한다. 다음 광주 여행에서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모든 곳을 찾아가고 싶다.


빌딩 1층에는 전일빌딩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 역사를 잘 소개해놨다
전시관 초입의 작품. 수많은 총알이 관객에게 향하고 있다
옛 전일빌딩을 그대로 남겨 놓은 공간. 탄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헬기 사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데 있어 강력한 증거가 되는 169번 흔적
518 민주화 운동 관련 가짜 뉴스는 여전히 있고, 진실을 밝히는 이들에게는 시련 그 자체다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장소

광주의 맛

전라도는 맛의 고장이다. 광주뿐만 아니라 전주, 여수, 군산, 목포 등 어느 지역을 가서 한식 부분에서는 어떤 지역보다 더 나은 퀄리티의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다. 각 지역만의 대표 음식을 즐기는 것도 여행에서 빠트릴 수 없는 재미다. 광주도 물론 이러한 음식들이 존재하며, 송정리 떡갈비, 오리탕, 육전, 상추튀김, 주먹밥, 무등산 보리밥 등이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 꼭 추천하는 건 오리탕과 육전이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몇 번씩 얼굴을 비췄지만 광주가 손에 꼽히는 여행지가 아닌 만큼 아직도 생소한 음식일 거라 생각한다. 오리탕은 일반 가정집에서도 자주 먹을 정도로 광주 시민들에게는 익숙한 음식이다. 유명한 오리탕 식당들은 보통 미나리를 데쳐 먹고, 국물도 들깨를 팍팍 넣어서 걸쭉한 편이다. 국물 맛이 진하고 야들야들한 오리살 덕에 누가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실제로 몇몇 지인들에게 오리탕을 추천하고 높은 평가를 받은 경험이 있어 광주 여행 시 맛봐야 할 음식 상위권에 놓기를 권하고 있다. 반면 일반 가정의 레시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우리 집의 경우 된장과 고추장을 적당한 비율로 육수에 풀고, 머위대 또는 토란대를 넣어 미나리 샤브샤브가 아닌 진득하게 끓여낸 탕으로 즐긴다. 사실 어떠한 방식으로 먹어도 맛있는 게 오리탕이다.


육전은 제사를 지낸다면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이고, 소고기와 전이 만나다 보니 맛도 안정적이다. 그렇지만 광주의 육전은 조금 다르다. 특히 먹는 방식과 서비스에서 말이다. 종업원이 옆에서 바로바로 부쳐주고, 파절이와 함께 즐기기 때문이다. 바로 부쳐주는 따끈따끈한 전은 기본적으로 맛있지만, 숙련도에 따라 전의 고소함과 푹신푹신한 식감은 차이가 난다. 잘 부친 육전은 샛노란 계란 옷이 점점 부풀어 오르면서 다가올 식사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인다. 여기에 방점을 찍어주는 게 파절이다. 고춧가루, 참기름으로 무쳐낸 파절이. 양념 맛과 파 두께에 따른 식감이 포인트로, 육전을 물리지 않고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하는 영혼의 단짝이다. 일반적으로 육전 식당에서는 맛조개, 새우, 관자, 낙지 등 여러 종류의 해산물 전도 준비돼 있으니 육지와 바다의 맛을 모두 즐기는 것도 좋다.


여유가 있다면 상추튀김도 한 번 즐겨볼 만하다. 2010년대에 의무교육을 받지 않아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2000년대에는 급식에서도 상추튀김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맛도 좋았다. 상추에 오징어튀김 등을 싸 먹는 것인데 고추와 양파절임이 킥이다. 튀김의 고소한 맛과 두 채소의 알싸함, 간장의 달달 짭조름한 맛이 만나 훌륭한 조화를 만들어 낸다. 

광주의 유명 육전 식당 '대광식당',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시원한 단호박죽부터 오이무침, 파절이, 육전까지 모두 맛이 좋다.
매생이 떡국, 누룽지 등 식사를 주문하면 나오는 밑반찬도 그냥 보낼 수 없을 정도로 손맛이 좋다. 광주를 대표하는 육전 식당이라는 유명세는 그냥 얻어진 게 아녔다.
샛노란 육전, 파절이와 함께하면 끊임없이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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