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세계에서 어머니는 말할 수 있는가. 아니, 감히 입을 연 어머니는 어떤 최후를 맞는가.
이 책은 아버지의 세계로 일컬어지는 가부장제에서, 감히 말하려 들고 감히 떠들었으며 또한 감히 설친 여성, 강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말하고 떠들고 설쳤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세계에서 지워진 어머니의 삶을 알아가고자 하는 딸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이 책은 살얼음판 같은 두려움 속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탐구를 놓을 수 없는 딸의 이야기, 즉 허스토리(Herstory) 소설이다.
권지예 소설가는 이 책을 두고 ‘피비린내 나는 남성들의 히스토리와는 달리 도화 꽃 냄새와 젖내와 살내가 나는 허스토리 소설’이라고 일컬은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매캐한 피비린내가 성큼 풍긴다. 역적이 되고 만 어머니에 대한 앎을 멈출 수 없어 두려워하면서도 끝끝내 어머니의 목소리로 다가가는 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 어머니는 어떻게 역적이 되었나, 어머니의 무엇이 아버지의 세계를 거역했는가? 소현세자빈 강 씨는 여성의 공간이 궁궐로 제한된 세계에서, 볼모로나마 청나라까지 그 발걸음을 확장한 인물이다. 그리고 강빈은 볼모의 땅에서조차 위기를 기회로 일구었다. 원수의 나라라도 청나라를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였고 청과 조선 사이의 무역을 주도하여 부를 일구었으며 남편과 함께 외교의 다리를 이었다. 그러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발화와 성취는 그 자체로 균열이며 반역이다. 감히 시아버지 인조를 패배시킨 청나라에서 위기를 기회로 일구었다는 이유로, 볼모의 땅에서 부를 증강하고 원수의 나라에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강빈은 시아버지의 미움을 받아 역적의 굴레를 덧쓰고 만다. 그 가족까지 멸문지족을 면치 못하여 어머니와 형제는 비명횡사하고 어린 아들들은 유배지에서 죽어 갔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딸들은 어미가 역적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긴 채 숨 막히는 생을 보존했다. 이 소설은 그 살 떨리는 도륙 이후 피비린내 나는 두려움을 한가득 껴안고 살얼음판을 건너 어머니의 삶을 찾아가는 딸 경녕군주의 처절한 앎의 여정이다.
아버지의 세계에서 감히 입을 연 어머니의 목소리는 삭제되고 검열되어 이 땅에 남았다. 그러나 여성주의적 시선에서 다시 읽은 행간과 행간 사이에 채 삭제되지 못한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그 목소리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