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렇게 생각하자
악플 달린 스토리를 털어놓기에 앞서 요즘 내가 푹 빠진 드라마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로 ‘마인’이다. 요즘 인기인 ‘우아한 복수극’ 중 하나다.
요즘 복수극은 우아하면서 완벽하게 복수한다는 점이 매력이다. 가난한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2년 3년 이를 아득바득 갈며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 주인공에겐 이미 돈과 권력, 인력이 있으니 복수도 빠르다. 집에서 비싼 위스키나 와인을 마셔가며 ‘어떻게 해야 상대가 가장 무너질 수 있을까’ 고심한다. 마침내 방법을 찾아내면 바로 실행한다. 이런 드라마가 유행한다는 건 어쩌면 우리 사회가 힘들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빠르고 완벽하게 복수하는 과정을 보며 탈출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거다. 여러분 마인 보세요. 정말 재밌어요.
마인 역시 그렇다. 아내의 유혹 정교빈(극 중 이름)부터 부부의 세계 이태오를 거쳐 펜트하우스 주단태의 뒤를 이을 희대의 쓰레기 한지용을 연기하는 배우 이현욱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는 물론 자신의 것을 강인하게 지켜가는 두 여성, 여러 모양의 사랑 이야기까지 참 재밌다. 대부분의 인물은 자신의 사랑과 탐욕을 지키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하나씩 감추고 살아간다. 난 그중에서도 이 아저씨에게 관심이 간다. 그의 탐욕과 사랑은 어쩐지 짠하고 불쌍한 것도 재미다.
최상류 층 재벌의 집에서 일하는 집사다. 그 집 재벌은 죄 타인의 감정은 일절 신경 쓰지 않고 막말하며 하대하는 인간상. 그럴 때마다 대부분의 메이드는 뒤에서 재벌을 험담하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지만, 이 아저씨는 다르다. 그들의 뒷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불쌍해 ··· 불쌍한 사람이야···.” 진짜로 연민을 느끼는 표정이다. 누가 봐도 불쌍한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욕먹는 이 아저씨인데, 그런 그가 재벌들을 진심으로 불쌍해하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모든 것에 해탈한 듯한 특유의 표정도 한 몫한다.
‘불쌍해 아저씨’의 그 짧은 대사가 내게 강하게 다가온 건 지난 악플의 경험 때문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콘텐츠가 타 채널에 노출되다 보면 악플이 달린다던데 나 역시 그 수순을 밟음과 동시에 몇 글에 악플이 달렸다. 과민성 대장증후군 때문에 탄산을 못 먹어서 생긴 에피소드를 담은 글에 ‘사회생활은 제맘대로 만 할 수 없다는 걸 모르냐’는 댓글, 탄산음료 마시는 게 언제부터 사회생활이었는지···? 복권같이 돈을 거는 게임에는 일절 관심 없던 나도 로또 사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게 되었다는 글에 ‘로또 살 돈으로 자기 커리어에 도움될 일을 할 생각은 못하냐’는 댓글. 제주도에서 맛본 인생 평냉을 이야기하는 글에 ‘원가 1000원도 안 하는 빙초산 덩어리.’라는 댓글이 달렸다. 냉면도 긴 역사가 있는 음식인데. 저건 냉면을 먹는 사람, 냉면을 만드는 사람을 모두 무시하는 발언이다.
난 몹시 기분이 나빴다. 달아오른 얼굴로 식식거렸다. 그들이 내게 무방비한 욕설을 남긴 것은 아니고, 좋게 생각하면 의견 차이일 수 있지만 ‘굳이 저런 말을 남겨야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댓글을 단 목적이 ‘글쓴이를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었을 거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검은 목적이 뚜렷이 보이는 게 바로 악플이 아닐까. 그 이후론 글을 쓸 때 ‘누가 또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고 주춤하게 됐다.
그런데 마인 속 ‘불쌍해 아저씨’를 보곤 악플 다는 사람을 대하는 내 마음도 달라졌다. 그냥 ‘마음이 아픈 사람이구나. 타인의 단점만 찾아내어 콕콕 찌르고 다니는 저 사람은 어쩌면 좋은 걸 보는 방법을 모르는 걸 거야. 싫은 것만 보고 느끼는 저 사람은 얼마나 괴롭겠어. 불쌍해···.’ 하고 만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내 행동이 적대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에겐 하등 도움 안 되는 말을 하는 사람에겐 감정 소비하지 않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그러니 악플이 달렸다면 속상해하지 말고 ‘불쌍해 아저씨’를 따라 해 보자. 무심한 듯한 표정도 필수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70일 차 _ 어쩌지, 내 글에도 악플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