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프린세스 앤을 위하여
로마. 몇 번이고 말씀하셔도 로마예요.
저는 평생 로마를 기억할 거예요.
Rome. By all means, Rome.
I will cherish my visit here in memory... as long as I live.
로마의 휴일 속 프린세스 앤도 아니면서 이 대사를 외우고 있습니다.
분수와 광장과 애절한 사랑은 로마에서 영원히 현재 진행형이겠지요.
일정을 쥐어짜듯 늦은 밤에도 야경이 근사한 성에 들러 로마의 첫 밤을 기념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섭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어깨에 두른 덕에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며 로마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지요.
좁은 골목길로 우리를 안내한 현지 가이드는 여행자의 느낌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에 도통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밀조밀한 골목길이 끝나자 서프라이즈! 를 외치듯 나타난 트레비 분수는 입을 다물지 못할 걸작이었으니까요.
작은 폴리 궁전의 한 벽을 배경으로 너비 20m, 높이 25m의 분수가 마치 바다처럼 일렁이는 트레비 분수(Fontana de Trevi)의 시원은 22km 떨어진 살로네 샘물입니다. ‘아쿠아 비르고’ 수도교를 타고 온 샘물은 조각된 신화의 한 장면에 생명수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아쿠아 비르고’의 종점인 트리비움에 낡고 작은 분수를 허물고 세련된 새 분수를 짓기로 합니다. 공사를 맡은 건축가 베르니니는 폴리 궁전 앞의 좁은 광장을 확장시켜 분수를 만들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교황의 죽음과 공사대금을 대줄 후원자가 없어 분수를 새로 짓는다는 것이 물 건너갈 지경에 이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피렌체 출신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트레비움 분수 건축에 손을 갖다 댑니다. 교황은 동향 출신 건축가 알렉산드로 갈릴레이를 로마로 불러 일거리를 만들어 줍니다. 관급공사에 사적인 인연을 들이밀고 명분을 얻기 위해 공모전을 기획합니다. 1732년 라테라노 대성당 정면 개축공사 설계 공모전에서 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난 로마 출신 건축가 살비 대신 갈릴레이가 1등에 당선되자 로마 건축계에 뒷말이 무성합니다. 같은 해 열린 트레비움 분수 설계 공모전에서도 갈릴레이가 1등 상을 타자 로마 건축계는 극렬하게 반발합니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의 결과에 대한 분노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습니다.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면 분수의 대명사 트레비는 설계도로만 존재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겠지요. 결국 교황은 니콜라 살비(Nichola Salvi)의 설계안에 낙점을 찍어야 했습니다 설계안이 확정되어 착공에 들어갔지만 추가 공사비가 감당이 되지 않아 공사는 미루기를 반복하다 30년이 지난 1762년에야 완성됩니다.
로마의 크고 작은 분수를 모두 합치면 이천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로마는 분수 반, 사람 반인 도시인 셈이지요. 물이 흐르는 곳 어디나 분수를 만들어 이곳에 수로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분수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고, 그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로마는 번성할수록 테레베 강과 동네 우물, 샘에서 길어오는 물로는 어림도 없는 물 부족 도시가 되어갔습니다. 로마로 몰려온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강을 오가며 물을 길어대야 했지요. 로마는 공화정 시대부터 외곽에서 수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수로를 건설합니다. 수로가 완공되면 자금을 지원하거나 공사에 공을 세운 이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수로를 통해 옮겨진 물을 시내 곳곳에 있는 분수로 나눠 공급했습니다.
초기 로마의 분수는 소박하고 정겨웠습니다. 돌에 새긴 단순한 꽃병이나 삼각대 모양의 돌 위로 물이 흘러내리는 분수였지요. 그러다 로마에 새롭게 분수를 만들자는 캐치 프레이즈 아래 궁전에 살던 귀족과 고위 행정관, 교황 등 권력과 재력을 조금이라도 갖춘 이들이 분수를 짓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분수는 예술과 과학의 기막힌 합작품이었습니다.
트레비 분수의 물줄기는 바로크 양식이 아름다움의 절정에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조각을 넘나들며 수려함을 과시합니다. 폴리 궁전의 벽면을 배경으로 개선문을 쏙 빼닮은 분수는 물줄기의 결을 따라 완성됩니다.
좌우 대칭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뤄낸 건물의 창이 트레비 분수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조각의 중심에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이 조개껍질 모양의 마차 위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풍요의 신과 건강의 신이 포세이돈을 호위하듯 양쪽 벽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반신 반어(인어)의 신이자 포세이돈의 아들인 두 트리톤이 양쪽에서 마차를 끌고 있습니다.
몸부림치는 말(거친 바다)을 다루려고 사력을 다하는 왼쪽 트리톤.
다소곳한 말(잔잔한 바다)에 한 손을 올린 채 소라고동을 한가롭게 부는 오른쪽 트리톤.
소라고동을 불면 고래가 헤엄쳐 몰려오고 거칠게 날뛰던 파도가 잠잠해집니다.
마치 내 앞으로 마차가 달려오는 듯 역동적인 이 조각은 브란치의 작품입니다..
바다의 신과 아들까지 모두 소환된 이 조각에 생명을 불어넣듯 물은 낙차를 달리해 흐르다가 힘차게 쏟아집니다.
건축가 살비는 트레비 분수에서 바다를 길들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분수 앞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오래전에는 이 분수의 물을 같이 마시면 로마에서 재회한다는 말이 있었으나, 지금은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져 넣어야 합니다.
몇 개? 보기에서 골라보세요.
동전 하나를 찰랑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되고
퐁당퐁당 두 개를 던지면 여행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두 개에 하나를 더 던지면 이탈리아 여행 중에 큰 행운이 온다고 합니다.
몇 개를 던지고 싶나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분수를 등지고 돌아서서 동전 하나를 손에 쥐고 잠시 기운을 모은 다음 휙~ 분수를 향해 팔을 크게 휘둘러 머리 위로 던졌습니다. 전해졌을까요, 내 마음이?
‘로마에 다시 오고 싶어요’.
언제부터 사람들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기 시작했을까요?
미국 영화 Three coins in the fountain (1954)에서 이탈리아 여행을 하던 세 여인이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던지며 다시 로마에 올 수 있기를, 그래서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를 빌었답니다. 영화 개봉 이후 트레비 분수에 서 있으면 동전을 던져야 하는 유전자의 기억이 지구인의 몸속에 새겨졌을까요.
소원을 싣고 우리의 주머니를 떠난 동전의 종착지는 어디일까요?
로마시는 이탈리아 가톨릭 자선단체인 카리타스에 동전을 기증한다고 합니다.
동전은 사회 빈곤층과 복지 프로그램에 쓰입니다.
로마에 대한 염원과 사랑이 이곳의 누군가에게 따뜻한 빵과 수프로 다시 흐른다고 생각하니 소원을 태우지 않은 동전 몇 개를 더 분수를 향 해 던져야 할 것 같습니다.
트레비 분수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하늘도 올려다봅니다.
로마의 하늘은 ‘푸름’의 색감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온종일 연주하듯 보여주네요.
트레비 분수 옆에 젤라토 가게들이 알록달록 어여쁩니다.
프린세스 앤처럼 어떤 시름도 없이 젤라토를 녹여 먹을 시간입니다.
로마에서는 젤라토를 손에 쥔 모든 여인을 프린세스 앤 이라 불러도 괜찮습니다.
트레비 분수에서 가장 가까운 젤라토 가게에 일행 한 분과 같이 들어갑니다. 선뜻 어떤 맛을 고를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결정장애조차 달콤한 젤라토 파티입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곡 한 소절로 분수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트레비 분수 옆 젤라토 가게 앞에 서 있습니다.
일행분과 순례하듯 사진을 찍기로 합니다.
젤라토를 양 손에 들고 로마인처럼 웃는 내가 먼저 일행분의 카메라에 담깁니다.
역할을 바꾸어 젤라토를 일행분의 두 손에 넘겨주고 카메라를 받아 듭니다.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던 중년의 로마 여인이 나를 부릅니다.
너도 저기 옆에 가서 서라. 보기에 참 딱하니 내가 사진 찍어줄게.
몸짓 언어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라찌에 그라찌에.
영화 로마의 휴일 (Roman Holiday 1953)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앤 공주의 손에 쥐어진 장미 한 송이를 기억합니다. 동전 몇 푼 만 남아 있어 장미꽃 한 다발을 살 수 없는 앤 공주에게 장미 한 송이를 건네주던 로마의 꽃장수 아저씨.
영화 속 로마의 꽃장수 아저씨가 걸어 나와 로마의 여인으로 변한 걸까요.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듯 로마의 여인이 사진기의 셔터를 누릅니다.
찰칵! 그대는 로마를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