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를 아시나요
이슬람인들이 생각하는 낙원은 물과 열매 달린 나무와 아름다운 여인이 함께 있는 곳이라고 해요.
어쩐지 알함브라의 곳곳에 자리한 중정 뜰마다 물이 넘치는 분수와 잘 익은 오렌지 나무가 서 있더라고요.
아름다운 여인요? 술탄의 여인들이 궁전 저 깊이 숨겨진 곳, 하렘에 살고 있었답니다.
이슬람인들은 그들의 천국을 만들듯 온 힘과 정성을 기울여 알함브라를 지었던 거지요.
알함브라는 14만 2천 제곱미터의 땅 위에 펼쳐져 있어요. 거대한 부지, 꼭 있어야 할 그 자리에 궁전, 요새, 탑들이 9세기부터 자리잡기 시작하여 14세기가 되어서 위용을 갖추었지요.
무함마드 12세는 알함브라 궁전을 가톨릭에 내어준 마지막 이슬람 왕입니다. 자그마치 780년 동안 지속된 레콩키스타 (Reconquista, 재정복 전쟁)의 최후의 패배자인 셈이지요. 가톨릭 왕국의 땅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치른 이 전쟁은 가장 오랜 기간 뺏기고 빼앗는 신성한 전쟁으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만 함락하면 빼앗겼던 가톨릭의 영토를 모두 되찾게 되는 역사적 과제 완수를 앞둔 이사벨 여왕은 마음이 급했을 테지요, 알함브라를 보기 전까지는.
탈환하는 곳마다 파괴를 명해 깊게 뿌리 박힌 이슬람 문화의 흔적을 지워가던 이사벨 여왕이니 불을 지르거나 군사들을 들여보내 마구잡이로 파괴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오랜 시간 자신들의 땅을 차지하고 신앙을 욕보이던 이방인의 왕이 살고 있는 궁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사벨 여왕은 알함브라의 절절한 아름다움에 차마 알함브라가 자신의 눈앞에서 파괴되는 걸 볼 수 없었어요. 결국 이사벨 여왕은 궁전으로 들어가는 물길을 끊어 항복을 받아냅니다. 천국의 샘도 인간의 손으로 물길을 대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함브라는 알았을까요?
그라나다 남쪽으로 쫓겨가던 무함마드 12세는 알함브라가 보이는 마지막 고개에서 잠시 발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의 탄식과 찢어질 것만 같은 심장의 박동 소리가 그의 눈길이 닿은 알함브라 어딘가쯤에 영원히 박제되어 슬픈 황홀감을 느끼게 하는 건 아닐까요.
알함브라는 이제 가톨릭 부부 왕인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의 궁전이 되었고, 아랍 양식을 그대로 둔 채 르네상스 양식으로 낡은 곳을 보수하였습니다. 콘비벤시아(Convivincia, 공존)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곁길로 잠깐 세면 콜럼버스는 이곳 알함브라에서 신대륙으로의 항해를 승인 받습니다.
떠오른 태양은 지는 법.
스페인의 국운이 기울어지자 옛 이슬람 왕궁들은 사람들의 손길과 기억에서 잊히게 됩니다. 천국이라 일컬어도 손색없던 알함브라는 잔인한 세월을 비껴가지 못해 폐허로 변해버렸고, 밀매업자와 강도와 불한당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전락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알함브라를 볼 수 없는 그라나다의 장님>이라지만 이 시절만큼은 그라나다의 장님도 그리 불행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차라리 눈 감고 사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잖아요, 왜.
1810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한 그 해. 프랑스 지휘관이던 세바스티아니 장군이 이끌던 군대가 그라나다까지 점령했습니다. 교양 있는 외교관에 가까웠던 장군은 황폐하고 버려진 알함브라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단번에 알아보고 이곳을 프랑스군 사령부로 삼습니다. 200년 가까이 버려진 알함브라가 전부는 아닐지라도 예전의 영광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주스페인 미국공사관 공사로 알함브라에서 한때 머물기도 했던 워싱턴 어빙 Washington Irving (1783~1859)은 자신이 들었던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낭만적인 이야기들로 <알함브라 궁전의 이야기 Tales of the Alhambra>를 펴냅니다.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죽기 전에 봐야 할 걸작 건축물 리스트 정상에 알함브라를 올려놓습니다.
알함브라의 심장은 단연코 나사리에스 궁전입니다.
이 궁전 안에 왕의 집무실과 대상의 방이 있는 코마레스 궁이 있습니다. 코마레스 궁에 딸린 아라야네스 정원은 알함브라의 상징으로 불립니다. 굉장히 정돈된 느낌입니다.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정원을 파티오 Patio라고 해요. 스페인 사람들이 유독 사랑하는 건축양식의 하나라고 하니 역시 역사는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가운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숨 쉬는 유기체와 다름없습니다.
이제 이슬람 최고의 권력자 술탄의 내밀한 공간인 레오네스 궁으로 가 볼게요. 이곳은 술탄 이외의 어떤 남자들의 출입도 허락되지 않은 하렘입니다. 124개의 대리석 기둥이 안뜰을 호위하고 있어요. 정시마다 사자들이 돌아가며 한 마리씩 물을 뿜어 시간을 알렸다고 하는 12 마리 사자상 물시계가 있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이 선물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그때나 지금이나 유대인들은 시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솜씨가 있었나 봅니다.
12마리 사자상 물시계가 있는 안뜰은 4개의 방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중에서 <자매의 방>과 <아벤세라헤스의 방> 이야기를 해볼게요.
벌집 모양의 장식인 모카라베가 빼곡히 들어찬 <자매의 방> 천장은 보는 사람을 빨아올릴 것 같은 기세입니다. 우주 속을 유영하는 착각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몸서리를 쳐 우주의 기운을 털어내고 나서야 인간의 땅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낮의 알함브라와 밤의 알함브라를 계절을 달리 하여 만나고 싶어 지네요.
<아벤세라헤스의 방>은 비극의 방으로 불립니다.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남자 30명이 이 방에서 처형당했는데 처형의 이유야 다른 왕조의 역사에서 보듯이 뻔합니다. 정쟁으로 모함당했거나, 왕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허우적댔거나.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젊은 귀족이 술탄의 아름다운 후궁과 사랑에 빠져 질투에 눈이 먼 술탄이 그 가문의 모든 남자를 처형한다는 대목에서 속절없는 인간의 마음은 끝이 없다는 느낌에 오렌지 나무 아래서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서른 명의 남자들이 죽어가며 흘린 피가 수로를 타고 12마리 사자의 입으로 흘러나왔다는 후문은 아무래도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으로 전해지며 결국 대미를 장식한 버전이라고 해야겠지요.
헤네랄리페 정원은 가끔 기억 속에서 페레로로쉐 초콜릿 이름과 혼동되기도 합니다. 헤네랄리페와 페레로로쉐. 끝말잇기를 해도 될 것 같은 오페라의 두 주인공 이름 같기도 하네요. 세상 만물을 건축한 유일신 알라가 빚은 정원이라니 이름에서부터 그 아름다움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나요? 헤네랄리페는 길쭉한 물길 위로 포물선을 그리듯 내려앉는 물줄기 사진으로 유명하지요. 알함브라는 산처럼 올라야 해서 가끔 오르다 고개를 돌려 지나온 곳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헤네랄리페 정원은 여름궁전이라 그곳은 지금 까무러치게 아름답지 않을까요. 겨울의 헤네랄리페는 초록은 추위에 움츠리고 빛깔 고운 꽃들도 꽁꽁 얼굴을 숨겨 한숨을 내쉴 만큼 아쉬웠습니다.
<아벤세라헤스의 방>에서 죽임을 당한 젊은 귀족과 술탄의 아름다운 후궁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지켜본 죄로 고사목이 된 나무의 모습이 처연합니다. 이야기가 빚어지면 저렇게 생명이 다한 나무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애간장을 녹이기도 합니다.
어느 여름날, 타레가(1852~1909)는 제자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애달파하며 알함브라를 찾았습니다. 화려한 꽃들과 생기 가득한 초록잎들 사이에 뜬금없는 고사목이 자신의 모습 같았겠지요. 사랑을 잃어버린 작곡가에게 또르르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얼마나 애잔했을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ycYC2pCDkhU
인간이 지은 건축물에 세월의 풍화작용과 격렬한 인간사가 뒤섞여
슬프도록 아름답고, 신비한 전설로 가득한 궁전, 알함브라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