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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Aug 29. 202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로나19 검사소, 쇤부른 궁전

씨씨가 말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오스트리아가 쇤부른 궁전을 코로나 선별 검사소로 개방한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코로나19 바꿔놓는 세상은 무엇을 상상하든  이상이라는 말을 실감케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로나19 검사소 쇤부른 궁전을 기억으로 스캔합니다.

쇤부른 궁전 내 코로나 검사소 .KBS뉴스 화면

빈에 있는 황실 전용 베이커리였던 데멜에서 동그란 상자에 든 사탕 한통을 샀습니다. 제비꽃을 꼭 닮은 보랏빛 사탕 한알을 입에 물고 아름다운 우물가 쇤부른 역에 내려서 걸어가는 길은 7월의 초입인데도 서늘합니다.


쇤부른 궁전을 만나기 전에 합스부르크 가문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세요.

13세기의 신성로마제국은 교황의 힘이 강력했지요. 교황은 '파문'이라는 제도로 황제의 힘이 커지는 것을 견제했습니다. 이 와중에 황제 가문의 후사가 싹둑 끊겼습니다. 난공불락이던 교황의 힘이 있었고 내로라하는 제후들 간의 알력 다툼으로 신성로마제국은 20년 동안 황제가 없는 무주공산이 되었습니다. 교황은 황제 가문에 발만 살짝 담은 누구든지 왕이 되어달라 애걸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경쟁 가문의 누군가가 황제가 되는 것을 원치 않던 제후들은 별 볼 일 없는 가문의 주인을 황제의 후보로 내세웁니다. 알프스 산골에서 귀족이랍시고 행세 좀 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1세였지요. 허울뿐인 황제인 줄 알았던 루돌프 1세는 큰 야망과 배포를 가지고 찾아온 기회를 일사불란하게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한 사내였습니다. 그는 황제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알프스 산자락에 자기 가문의 영지를 야금야금 넓혀가다 살기 좋고 농사도 짓기 쉬운 평야를 가진 오스트리아에 은근슬쩍 발을 들이댑니다. 때마침 일어난 전쟁에서 승리하며 가문의 기반을 다져나갑니다. 여기에는 독특한 세력 확장 전략인 결혼 동맹도 한몫합니다. 마침내 16세기 카를 5세에 이르러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럽의 패자로 등극합니다. '전쟁은 남들이 하게 두고 합스부르크 그대는 결혼하라'는 말이 그들의 가훈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결혼과 상속으로 제국을 이루며 번성합니다.


쇤부른 궁전은 유럽 역사에 오랫동안 영향을 끼친 합스부르크 왕가의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곳이자, 여러 예술 사조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의 놀랍고도 완벽한 본보기입니다. 17세기 초에 빈에서 가까운 황실의 사냥터를 지나던 마티아스 황제가 아름다운 샘을 발견하고 이곳에 여름 별궁을 짓습니다. 얼마나 샘이 아름다웠으면 궁전의 이름마저 쇤부른(Schönbrunn 아름다운 샘)으로 지었을까요. 쇤부른 궁전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의 공주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 마리아 테레지아(1717년 ~1780년) 재위 시절에 완공되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 카를 6세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살리카 법(여성의 왕위 즉위 금지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가문을 물려주겠다 공표합니다. 주변 세력들이 고개를 저으며 이를 거부하자 딸을 상속자로 인정해 주는 대가로 영토를 내어줍니다. 영토를 줄여서라도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려는 궁여지책으로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의 상속녀가 됩니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남편인 프란츠 슈테판을 명목상의 황제인 프란츠 1세로 즉위시킨 거지요. 황후인 그녀가 실질적인 통치자라는 걸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바닥난 국고를 채우기 위해 조세를 개편하고 초등학교 의무교육과 여성교육 제도를 도입하는 등 왕위 계승 전쟁으로 쇠약해진 오스트리아를 안정시킵니다. 문화적으로 번성하고 왕정을 확립하며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국모의 반열에 오르지요.

그녀는 합스부르크 황제 가문의 영속을 위해 홀로 출산장려책을 편 듯 아들 5, 딸 11명을 낳습니다. 아들 둘은 일찍 떠나보냈지만 10명의 딸을 유럽 전역으로 시집보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의 정략결혼도 합스부르크 가문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세력 확장술이었지요. 다만, 자신과 같은 날 태어난 넷째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를 유독 사랑하여 그녀의 연애결혼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통치자가 아닌 딸의 사랑과 행복을 바라는 엄마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셋째 아들 레오폴드 2세의 결혼식 피로연 중에 남편인 프란츠 1세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짧은 머리에 늘 상복을 입는 것으로 그를 추모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세운 독수리가 비상하는 오벨리스크를 맞아주는 정문을 지나 쇤부른 궁전으로 들어갑니다. 황실에 어울리는 우아한 노란색 건물이 눈부십니다. 합스부르크 옐로.  두 단어로 풀어쓴 쇤부른 궁전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에 경의를 표하고 자연을 찬미하는 이곳에 마리아 테레지아는 16명의 왕자, 공주들에게 보여줄 동물원과 식물원도 지으며 엄마로서, 황후로서 가문과 제국을 위해 밤낮을 보냅니다.

합스부르크가의 상징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앉아있는 오벨리스크와 합스부르크 옐로의 별칭을  가진 쇤부른 궁전 photo by 푸른 모래시계

쇤부른 궁전 역시 베르사유 궁전에서처럼 분수와 정원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베르사유 궁전(궁극의 화려함을 탐하다)을 다녀왔다고 했나요? 그렇다면 쇤부른 궁전을 거닐 때 어딘가에서 본듯한 기시감이 찾아올 거예요. 베르사유를 따라 지은 쇤부른 궁전 역시 바로크 양식의 외부를 자랑합니다. 저 멀리 글로리에테가 보입니다. 1775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워졌지요. 만찬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무를 내려놓고 쇤부른 궁전과 빈 시내에 눈길을 주며 커피를 마셨다고 합니다. 노천카페로 돌아온 이곳에서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마리아 테레지아처럼 궁전과 빈을 조망해보세요.

넵튠 분수는 정원의 중심을 확실히 잡아주며 물줄기를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로마의 트레비 분수가 떠오릅니다. 이렇게 버무려지고 어우러지며 세월이 보태질수록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궁전을 쇤부른 파노라마 기차 대신 의자가 높은 마차에 올라 이곳저곳에 눈길을 주고 싶어 집니다.  

쇤부른의 정원은 글로리에테와 넵튠분수가 중심과 경계를 담당한다. 픽사베이.

이제 마리아 테레지아가 춤을 추던 ‘그로세 갈레리에(Große Galerie)'로 갑니다.

미국과 옛 소련의 갈등이 폭발하기 직전 케네디와 후르시츠프가 만난(1961년) 장소로 유명하지요. 아름다운 곳에서 만났으니 아름다운 결말을 내보라는 세계인의 소망이 전해진 걸까요. 속내야 어떻든 첨예한 이념 대립과 잇속이 부글거리는 갈등을 무사히 넘겼으니까요.

건축물은 굵직굵직한 당대 큰 회담이나 사건 현장의 배경이 되어 체급을 키워갑니다. 올 6월에 오스트리아 총리가 국빈방문으로는 처음인 대한민국 대통령을 이곳으로 초청해 오찬 행사를 가졌습니다. 외부 공식행사 장소로 40년 만에 개방되어 오스트리아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다니 정치적 견해를 떠나 KOREA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소식이었지요.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할 때 건물도 비로소 숨을 쉰다. 그로세 갈레리아. 쇤부른 공식홈과 청와대 홈피에서 펌.

제국의 마지막 황후, 쇤부른 궁전 수비니어 샵에서 집어 든 티스푼 손잡이에서도 미모와 우아함을 한껏 뽐내는 그녀, 씨씨(Sisi)라 불리는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1837~1898)를 만나러 갑니다.

바이에른의 루도비카 공주의 둘째 딸로 태어난 씨씨는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와 황후 후보였던 언니 헬레나가 선을 보는 무도회에 어머니와 함께 참석합니다. 황제는 언니보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봉오리를 닮은 열다섯의 씨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청혼합니다. 2년 후 빈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며 씨씨는 황후의 자리에 오릅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고손자 며느리가 된 것이지요.

당대 가장 아름다운 황실 미녀 씨씨 황후는 외모를 가꾸는 일에 열의를 보인 걸로 유명합니다.

키 173cm에 46~49kg의 가녀린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는 다이어터의 삶을 그 당시에 살았습니다. 그녀는 트레이드 마크인 길고 숱 많은 머리카락을 관리하는데 매일 3시간 이상 보냈답니다. 3시간을 오롯이 머리카락 관리에만 쏟았다면 비난이 쏟아질 법도 한데, 이 시간에 외국어, 철학, 과학, 문학 등의 과외를 받았다니 실속도 챙기고 호사가들의 입소문에도 명분을 세운 거지요.

젊고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강박으로 씨씨는 나이가 들고 늙어가면서 공식적인 자리나 개방된 곳에서 얼굴을 감추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늙지 않는 약을 먹고 평생을 아리따운 얼굴과 날씬한 몸매로 산 것처럼 신비로운 베일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사진과 초상화 속에서만 씨씨는 살아있습니다.


화려한 가문의 부활을 위해 물심양면 완벽한 황제로 아들을 키우던 시어머니가 며느리감으로 낙점했던 언니 대신 들어온 씨씨는  날 수 없는 새장에 갇힌 어여쁜 새 한 마리였습니다. 바이에른 시골 별장에서 맘껏 뛰놀며 자유롭게 살던 그녀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지켜야 하는 황실 예법은 거추장스러웠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이모이자 시어머니인 조피 대공비의 잔소리는 모멸감으로 다가왔을 테지요. 검약하고 근면한 황제는 나랏일에만 열심일 뿐 어머니와 씨씨 사이에서 눈치만 보는 유약한 남편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부간의 갈등에는 내 몰라라 하는 마마보이 아들과 맥없는 남편이 한몫을 합니다.


씨씨가 낳은 아이들은 시어머니가 빼앗다시피 도맡아 기릅니다. 딸 둘을 연달아 낳자 황제의 뒤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녀를 사로잡습니다. 마침내 아들을 낳았지만 그녀의 몸과 마음은 둥지를 잃고 세찬 비를 고스란히 받는 새 한 마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녀는 쇤부른을 떠나 지친 마음과 몸을 돌보는 요양을 시작합니다. 궁에 머물지 않았던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녀가 황제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것을 알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에 무게가 실립니다.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 52세의 씨씨는 여행 중에 아들 루돌프 황태자가 어린 연인 마리 베체라와 마이얼링 별장에서 동반자살을 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이 마이얼링 사건은 유럽 전역을 발칵 뒤집었고 이들을 따라 동반 자살하는 연인들이 너무 많아 큰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 후에 남은 평생을 검은 상복을 입고 피폐해진 몸과 맘으로 정처 없이 계속 여행합니다.


씨씨는 <엘리사벳>으로, 루돌프는 <황태자 루돌프>로  백년이 넘어 뮤지컬로 조명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에서는 검은 상복을 입으면서도 꼭 끼는 코르셋을 고집했는데요. 스위스를 떠나는 배를 타러 가는 길에 암살자에게 가슴팍을 찔려 치명적인 상처를 입습니다. 씨씨가 비틀거리자 시녀는 씨씨의 코르셋이 너무 조여서 그런가 보다 했답니다. 코르셋을 쥐어짜듯 조였던 날씬한 몸에 대한 강박은 씨씨의 나이 60이 넘어서도 여전했나 봅니다. 배에 올라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선실에 들어가자 씨씨는 코르셋을 풉니다. 짓눌렸던 혈관이 풀어지자 심각한 출혈이 시작되었고 결국 오스트리아의 황후이자 헝가리의 왕비였던 씨씨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기울 대로 기운 대제국의 사무치게 아름다웠던 마지막 황후 씨씨.

오스트리아는 씨씨의 기념관을 짓고, 그녀의 발길이 머문 곳에 동상과 표지석을 세우고, 작디작은 티스푼의 손잡이에도 그녀의 초상화를 기어코 집어넣어 그녀를 기억하게 합니다.


쇤부른 궁전의 엘리사벳의 방. 공식홈 사진.
마리 앙투와네트의 방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원한 번영을 상징하는 백만굴렌의 방. 공식홈 사진.

쇤부른 궁전은 자신의 주인이었던 아름다운 황후의 조악한 퇴장을 모른척하며 여전히 화려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녀가 아꼈다는 헝가리 도자기 헤렌드 티팟에 그려진 제비꽃을 닮은 사탕을 한 알 꺼내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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