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상계엄 선포 D+ 13일, 탄핵 가결 D+ 2일. 오늘은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못 했을 경우를 가정해서 대화체의 시를 써봤다. 방송에 보도된 아버지와 군인 아들의 통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12월 4일, 해가 뜨고 계엄군이 주요 시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면 정말 어땠을까? 1980년 5월 18일 아침에 국회를 점령한 당시 계엄군 사진처럼 될 뻔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해서 쓰다가 말다가, 힘들었다. 아들이 둘이라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이 연작시는 몇 편만 더 써서, 타임캡슐에 보관하는 기분으로 올리려고 한다. 후대에 어떤 한가한 국문학자가 고전문학 작품으로 발굴해 주길 바라면서...)
2024년 12월 4일, 그들이 국회를 점령했을 때
- 다시 만난 계엄 4
아빠, 나야. 뉴스 봤지? 지금 우리 부대도 서울로 출동한대. 핸드폰을 내라고 해서 화장실에서 문자 보내. 걱정하지 마. 여긴 특수부대도 아니고, 아마 외곽 경계를 맡을 것 같아. 소대장들이 하는 말을 지나가다 들었는데 서울 어느 대학으로 간대. 고참들은 이게 말이 되냐고 흥분하고 있어. 이제 트럭에 타야 해. 걱정하지 말고, 엄마랑 집에만 있어. 진수도 밖에 못 나가게 하고. 다시 연락할게.
현수야, 뉴스 보고 전화했는데 꺼져 있어서 엄마랑 계속 핸드폰 붙들고 울었어. 정말 몸조심해야 해.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시민에게 발포하면 안 돼. 알지? 부대원들과도 미리 얘기해라. 새벽에 국회 밖에서 계엄군이 국회의원과 시민을 구타하고 체포해 가는 장면까지 뉴스에 나오고, 지금은 방송에서 다큐만 나와. 외국 뉴스를 보니까 도청, 대학, 언론사에 시민들이 모여서 계엄군이 못 들어오게 막고 있고. 현수야. 이거 보면 바로 전화해라. 꼭.
아빠, 전화 못 받아서 미안. 어젯밤에 학생회 얘들과 술 마시다 뉴스 보고 학교로 돌아왔는데, 뛰어오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렸어. 이건 후배폰인데 SNS에 접속이 안 되고 인터넷도 안 돼. 조금 전에 방송으로 오늘 임시 휴업한다고 모두 밖으로 나가라고 했어. 총학생회장은 계엄군이 대학을 점령할 수 있다고, 회의해서 결정하자고 해. 걱정하지 마. 현수 형도 군인인데 설마 우리에게 폭력을 쓰겠어? 학교에서 5.18도 다 배웠는데. 회의 끝나고 다시 연락할게.
진수야. 전화하지.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이거 보면 바로 집에 와. 지금 방송국을 군인들이 점령했고 대학에도 군인들이 간대. 국회의원도 다 잡아갔는데 너희들 대학 안에 계속 있으면 위험해. 군인들이 시위를 못 하게 막고 끌어낼 거야. 절대로 군인들을 자극하지 마. 알겠지? 형도 서울로 출동한다고 문자가 왔어. 대통령이 미친 것 같아. 그러니까 빨리 집에 와. 너라도 와야. 엄마, 아빠가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