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 이야기
드라마 <블랙독>을 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기간제 신입 여교사가 주인공인 학교판 '미생'인데 어찌 그냥 넘길 수 있을까요? 그런데 1, 2화를 보고 나서는, 본 것을 잠시 후회했어요.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하는 고하늘샘(서현진)이 동료 교사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현재의 공립학교, 그것도 혁신학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저에게는 한 편의 판타지 같았어요. 하지만 교사에게 상상을 초월한 갑질을 했던 대구의 한 사립고등학교 사건을 봐도 그렇고, 지금도 어느 사립학교의 기간제 선생님이 겪고 있을지도 모를 불안과 모욕과 좌절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리얼함이 있었습니다.
물론 비현실적 설정도 있었지요. 고3 담임인데, 진학부 업무까지 시키고 다른 교무실로 배정하는 것은 아무리 가상의 사립고라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같은 학년을 나눠서 가르치는 교과 파트너를 3월 개학식에 처음 만나 협의를 하는 것도 리얼리티가 떨어졌고요. 가장 답답했던 것은 진학부 박성순 부장(라미란)의 '차가움'입니다. 자기 부서에 들어온 신규 교사에게 밥 한 번 안 사주고 3월의 전쟁터에 내던지다니요? 고하늘샘이 개학 전에도 꾸준히 학교에 나와 새 학년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박성순 부장은 그냥 지나치기만 합니다. 그랬으면서 나중에 옆 자리 선생님에게 왜 도와주지 않았냐고, 호통을 치지요. ㅠ.ㅠ 언제 그만둘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기간제라, 정을 주지 않으려는 설정같지만, 실제라면 신규샘에게 너무 잔인하네요.
2화부터는 고하늘샘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미생의 바둑천재 '장그래'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차갑게 쳐다보고 가까이 하지 않는 블랙독 같은 고하늘샘도 자신의 내공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 앞에 서고 싶었던 강한 동기가 있기 때문에 고하늘샘은 1년짜리 기간제이지만, 2월의 텅빈 교실에서 '교사가 된 나'를 향해 눈물을 떨굴 수 있었습니다. 저도 담임을 할 때, 3월 2일 개학을 앞두고 빈 교실을 정리하며 혼자 뭉클해하곤 했거든요.
개학날 메신저로 밀려오는 업무 처리와, 갑자기 잡히는 회의, 선배 교사의 갑질 때문에 고하늘샘은 허둥지둥 땀을 흘리며 첫 수업에 들어갑니다. 그것도 첫 만남에 잔뜩 무게를 잡아야 하는 담임반인데요. 노트북 화면도 출력이 안 되고, 수업자료도 보여줄 수 없어서 '완전히 망하고' 말지요. 지독히 운도 나빴던 하루였지만, 고하늘샘의 땀에 젖은 얼굴을 보며 저의 신규 시절 모습이 떠올라 애잔한 마음이 되었어요.
돌아보면 저는 운이 좋게도 공립학교의 정교사가 되었습니다. 국어국문학과를 매우 우수운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에 운이 좋아 붙었습니다. 좋은 동기 선생님들과 교수님들을 만나 전공 공부의 맛도 뒤늦게 알았고 교직도 이수했지요. 교생 실습을 구하지 못해서 애태웠지만 역시 동기 선생님께서 무리해서 자신의 학교에 받아주셨어요. 또 대학 때 장학금 한 번 받지 못하고,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에 한 학기를 더 다닌 아들에게 비싼 대학원 학비까지 내주신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힘들게 작은 식당을 꾸려가시다가 32살에 교사가 된 아들이 그래도 자랑스러우셨는지 단골손님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셨어요. 무엇보다 학급당 인원이 줄면서 임용시험 선발 인원이 대폭 늘어났고, 교생 때 연구수업 주제가 배점이 높은 서술형에 나와서 저를 살렸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만났던 기간제 선생님들은 능력과 노력이 부족해서, 정교사가 되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청년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기성세대의 잘못도 큽니다. 운이 좋았던 저는, 3월 개학일 땀에 흠뻑 젖은 고하늘샘의 머리카락을 보며 초심을 꺼내봤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기간제 선생님들에게 실수한 것이 없나, 되돌아 보았습니다.
요즘 몇몇 아이들이 물어봅니다. "민수샘, 내년에도 수업 시간에 만날 수 있지요? "라고요. 이런 질문들에 기간제 선생님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일부의 사례이긴 하지만 교사 문화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 <블랙독>을 더 많은 분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사립학교의 문제점, 기간제 교사의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