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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Nov 06. 2019

음악과 영화가 있는 여행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머물고 싶은 자 떠나게 하라.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는 우리나라에는 이제 뚜렷한 사계절이 없어졌다. 아침은 춥고 낮에는 목덜미로 따끔거리는 땀을 닦아내며 일부 지방에서는 때 아닌 집중호우가 퍼붓는다. 영화 [중경삼림]의 임청하처럼 선글라스에 레인코트를 입고 다녀야 하는 것일까. 언제 비가 내릴지 햇빛이 날지 아무도 모른다.

뒤죽박죽인 날씨처럼 기억나지 않는 꿈을 꾸고 일어난 아침이면 지금 내가 잠을 깬 이곳이 집이 아닌 어느 먼 곳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한다. 눈을 뜨면 베트남 어느 골목의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들과 열대과일에서 풍기는 달착지근한 향기가 커튼 사이로 풍겨오는 낡은 게스트하우스라면 어떨까. 안개 낀 더블린의 회색 광장이 내려다보이거나, 화려한 라스베이거스의 휘황한 샹들리에 조명에 눈을 떠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
늘 한 자리인 것 같아도 사실은 사람들은 매일 떠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허둥대지만 결국 돌아와 거울 속에 비친 내 곁에 서게 되는 여행처럼. 그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쳤었던, 하지만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슬픈 사랑도 있었다.


굿모닝 베트남, 굿바이 내 사랑
 
우리에게 월남전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나라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오히려 공안이 강력하게 조직되어 있어 인도네시아 반도의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비교적 치안이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를 비하하는 문구나 내용이 담긴 물품은 휴대하지 않는 것이 좋고, 군사시설 및 국가보안 구역은 허가 없이 촬영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적자는 15일간 무비자로 베트남에 체류할 수 있으며 1회에 한해 무비자 체류기간을 최대 15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인도차이나 지역 여행객은 무비자로 베트남에 입출국 후 30일 내로 국제공항이나 국경 관문에서 비자를 발급받아 재입국할 수 있다. 베트남 화폐인 베트남동(VND)이 통용되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미국달러를 선호하는 편이다.

1993년 칸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한 트란 안 홍 감독의 [그린 파파야향기]와 1995년 작품 [씨클로], 2000년 작품 [여름의 수직선에서]는 대표적인 베트남 영화 3부작으로 꼽힌다. 베트남 다낭에서 태어나서 라오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2세 때 프랑스로 이민 간 트란 안 홍 감독은 뛰어난 색채감각과 몽환적인 카메라 기법 그리고 독특한 나레이션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삶에 담겨있는 철학과 애환을 예술로 승화시킨 감독이다.
그의 두 번째 작품 [씨클로]는 호찌민에서 씨클로를 몰며 가족을 부양하는 가난한 ‘소년 (르 반 록)’이 갱단의 일원이 되어가는 모습과 갱단 두목인 ‘시인(양조위)’과 그를 사랑하는 ‘누나(트란 누 엔 케. 트란 안 홍 감독의 부인)’를 통해 현실의 처참함이 결코 말살할 수 없는 인간성의 본질을 보여주며, 1995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다.
나이트 클럽의 댄스 씬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헤드(Radio Head)’의 노래 ‘Creep’의 가사는 극중에서 ‘누나’를 사랑하지만 다른 남자와 매춘을 알선하는 ‘시인’의 이율배반적인 사랑과 갈등을 표현하는 중요한 모티브로 쓰이며 영화보다 더 유명한 주제가가 되었다.

원스, 비긴 어게인, 그래프튼 스트리트가 있는 아일랜드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윌리엄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브램 스토커(Bram Stoker)등 세계적인 작가들과 U2와 엔야(Enya),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 크렌베리스(Cranberries), 웨스트 라이프(West Life)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을 배출한 예술의 나라의 수도인 더블린은 아일랜드 문화의 중심지로 예술적 분위기가 가득한 곳이다. 더블린의 명소로는 영국식 정원인 ‘이비가든’, 아일랜드의 상징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기네스 맥주의 성지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유서 깊은 도서관 ‘트리니티 컬리지’ 등이 있다.
더블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버스커들의 성지 ‘그래프턴 스트리트(Grafton Street)’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뮤지션들의 버스킹을 들을 수 있다. 영화 [원스(Once)]에서 주인공 ‘그’가 버스킹을 하고 있었던 거리이며 ‘그녀’와 함께 고장 난 청소기를 끌고 악기점에 들어가 유명한 ‘Following Slowly’를 불렀던 그래프턴 스트리트는 영화 ‘원스’ 이외에도 ‘비긴어게인’, ‘싱스트리트’등 많은 음악영화들의 배경이 되었다.


닐 조던(Neil Jordan) 감독의 1992년 영화 [크라잉 게임(Crying Game)]은 영국군 포레스트 휘태커(Forest Whitaker)를 납치 한 IRA군 스티븐 리아(Stephen Rea)가 영국으로 건너가 죽은 영국군의 연인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과 변화가 놀라운 반전으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영화의 주제곡인 ‘Crying Game’은 ‘컬쳐 클럽(Culture Club)’의 리더 ‘보이 조지(Boy George)’가 불러서 달빛 아래에서도 숨겨야 했던 사랑의 처연한 아름다움과 은밀한 상징성을 함께 담아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
 
라스베이거스는 미국 네바다 주 남동부 사막 가운데에 있는 미국 최대의 관광과 도박의 도시이다. 1905년에 남캘리포니아와 솔트레이크시티를 잇는 철도가 완성되면서 현대적인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하였고, 1936년 후버댐이 완성되고 도박장이 늘어나면서 관광과 환락지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연중무휴의 사막휴양지인 라스베이거스는 1946년 마피아 조직원 벅시 시걸(Bugsy Siegel)에 의해 플라밍고 호텔이 처음 오픈한 뒤 스트립 거리 북쪽 지역을 중심으로 호텔 로드가 형성이 되었다. 이후 1989년 미라지호텔이 오픈을 하면서 라스베이거스는 도박과 매춘등 소비적이고 타락적인 모습의 Sin City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형의 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쓸쓸함과 절망스러운 파국을 아름다운 영화음악과 함께 리얼하게 담아낸 걸작으로 마이크 피기스(Michael Figgis) 감독의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를 꼽을 수 있다. 자전적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의 원작자 존 오브라이언(John O'Brien)은 소설의 영화화를 결정하고 2주 뒤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4주 반 만에 거리에서 대부분의 장면이 완성된 영화는 16mm 필름과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하여 위태롭게 흔들리고 사정없이 달리는 네온의 불빛들 속에 상처받으며 버려진 주인공들의 비참한 일상을 여과하지 않은 다큐멘터리 화면처럼 관객에게 보여준다. 날 것으로 베이고 찢겨진 사람들은 서로 보듬어주려고 하지만 그 상처가 깊어질 뿐이다. 자살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를 찾은 니콜라스 케이지(Nicolas Cage)와 벗어날 수 없는 생(生)의 울타리를 전전하며 자신을 팔아 연명해 온 엘리자베스 슈(Elisabeth Judson Shue)가 안식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들에게 죽음이란 서로에게 마지막으로 전해 줄 수 있었던 중독 같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You can never ever ask me to stop drinkin.”
“I do, I really do.”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그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오늘 소개한 영화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상대방의 모습을 온전히 인정해주는 슬픈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에서 벤과 사라가 나누는 가슴 찡한 대사를 들으며, 오늘의 음악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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