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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Nov 07. 2018

나의 친구, 블랙 독(Black Dog)

엄마라서 괜찮아.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육아와 교육.
걱정과 불안.
엄마들은 마치 걱정거리가 없으면 머릿속이 비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들같다.
아이가 이것 저것 집적거리고 돌아다니면 산만하다고 걱정한다. 아이가 자동차만 또는 공룡만 좋아하면 너무 한가지에만 치우친다고 걱정한다.
힘이 세도 걱정, 두들겨 맞고 들어와도  걱정이고 밥을 너무 많이 먹어도 걱정, 말라도 걱정이다. 열심히 그림만 그리고 있는 아이를 보며 학교수업은 잘 따라갈 수 있을지를 걱정하고, 공부만 하는 아이에겐 운동을 잘 할지 걱정한다. 이정도면 걱정은 곧 엄마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 키우는 엄마들의 공통점은 목소리가 크다는 것인데, 대형마트나 번잡한 대로에서  "야 임마, 너 이리 안와아아아!" 하고 소리지르는 아줌마들은 십중팔구 아들네 엄마다. 그리고 아들있는 엄마들은 대부분 바지만 입는다.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와 카플룩으로 추리닝을 입고 다니는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옷이 가져야 할 멋의 기능을 상실한채 오직 어딘가로 튀어 도망가는 아들놈을 재빨리 잡아오기 위한 엄마들의 유니폼인 것이다.

엄마들은 우울하다.
예쁜 정장 한번 입어 본지가 언제인지.
세련된 커피숍에 앉아 친구랑 수다라도 떨라치면 아이는 어느새 탁자밑을 기어다니다가 테이블마다 곱게 접혀있는 냅킨을 백장쯤 끌고와서 사람들 발밑에 카펫을 만들어주고 있다.

"엄마도 친구가 있어?"
"그럼, ㅇㅇ엄마도 친구고 ㅁㅁ엄마도 친구고 ㅊㅊ엄마도..."

나도모르게 아이의 친구엄마들 이름만 나열하고 있는 나의 좁디좁은 인간관계가 순간 서글프게 느껴진다.
엄마가 되면서 가장 심적으로 힘든 것이 사회로부터의 단절이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나는 ' 박모모’로 살아왔던 세상과는 이별을 고하고 '엄마'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이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뭐든지 제대로 할 줄 이는게 하나도 없는 눈물 찔찔이 단세포 인간이 되어있다.


아들놈들은 귓구녕에 코딱지를 박아놨는지, 한번 얘기해서는 도통 말을 들어먹지를 않는다. 결국 뚜껑이 열린 엄마한테 몇대 얻어맞고 나서 애는 앙앙엉엉 울고 엄마는 감정의 한도를 넘어 하지말아야 할 말까지 쏟아붓고 만다.
“도대체 내가 널 왜 낳았는지, 정말 후회 된다, 후회 돼! 이 꼴도 보기싫은 놈아!”
이렇게 아이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가했을 경우, 정상적인 심리상태를 가진 엄마라면 누구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며 심하게 자책 하게 된다.

‘내가 미쳤나봐. 애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세상에 애를 때리다니.’
엄마들의 우울증은 이럴때 가장 심하게 온다. 엄마는 다들 잠든 밤에 혼자 불꺼진 거실에 쪼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자책한다.
‘아이에게 그렇게 심한 상처를 주다니. 난 엄마의 자격이 없나보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감정의 고통을 못견디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일들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 자책감을 못 이겨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우울증을 'Black Dog'이라고 부른다. 어디에선가 나타나 슬며시 내 뒤를 따라다니는 커다란 검은 개처럼 말이다. 내가 아이를 학대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검은 개를 불러내는 엄마들이 오늘도 얼마나 많을지.

의외의 결과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위험한 것이 일명, '좋은 엄마 컴플렉스'라고 한다. 아이에게 좋은 모습, 좋은 말만 하면서 절대 감정이 대치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야단도 치지 않고 안정된 대화로만 아이를 훈육하는, 누가 들어도 대단히 훌륭할 것 같은 이 '좋은 엄마'가 아이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것이다.
'좋은 엄마'에게 자란 아이들은 오히려 감정이나 행동 조절이 안되고 자랄수록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것은  '착한엄마’가 곧 ‘일등엄마'라고 강조하며 판매부수 올리기에 열올리는 육아서들이 '무작정 좋은 엄마'가 되고싶어하는 많은 초보엄마들을 얼마나 망치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내가 앞으로 엄마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식에 대한 걱정은 내 뇌의 90%를 차지할 것이고 (나머지 10%는 다이어트) 세월이 가고 내 아이가 성장 할 수록 난 아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수없이 많은 날들을 우울하게 보내야 할 것이다.
우리 여성들에겐 남자들에겐 없는 모성애라는 것이 있다. 간단하게는 보살피고 돌봐주는 것에서 과격하게는 생명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 엄마의 모성애는 남자들의 부성애를 뛰어 넘는다. 밤새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치며 자책을 하는 엄마들은 오히려 이 모성애가 누구보다 강한 사람들이 아닐까.

어떤 날은 저 멀리서, 어떤 날은 바로 내 옆에서, 검은 개는 날 압박하기도 하고 내가 외롭게 눈물에 젖은 채 불면의 밤을 지새게도 할 것이다.
난 앞으로도 아들녀석을 혼 내기도 하고 또 가끔 쥐어박을 때도 있겠지만, 이 못생긴 녀석을 생전 처음 내 팔에 안는 순간부터 가졌던 생각, '엄마는 세상에서 널 가장 사랑한단다'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하는 행동과 말들이 때론 상처를 주고 때론 후회가 되더라도 난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줄 때, 내 눈의 눈물도 함께 닦아주자. 난 힘들고 서툴러도 잘 해 나가고 있으니까.
토닥토닥, 힘을 내렴.
네 아이에게 넌 항상 최고의 엄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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