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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중년 남자 Nov 07. 2023

내인생의 영화13 <와호장룡>

지난 부산영화제에서 주윤발이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받았다. 십수년만의 방한에 많은 팬들이 환호했다. 주윤발이 누구인가. 8, 90년대 홍콩 느와르의 중흥을 맨 앞에서 이끌었고, <영웅본색>, <첩혈쌍웅> 같은 전설적 느와르를 통해 아시아의 슈퍼스타로 군림했다. 한국 티비 광고에 최초로 출연한 외국 스타이기도 했는데, 사랑해요를 외치던 밀키스 광고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잘생긴 배우들은 외모의 덫에 갖히는 경우가 많은데, 주윤발은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은 특에이급 배우였다. <우견아랑>, <가을날의 동화>, <종횡사해> 같은 멜로나 드라마 장르에서도 주윤발은 반쩍이는 연기를 보여준다. 유덕화나 양조위가 코미디를 찍으면 안 맞은 옷을 입은 듯 영 어색하지만, 주윤발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아주 잘 어울린다.      


8, 90년대 전성기를 누린 주윤발, 이 시기 영화를 꼽으라면 <영웅본색>시리즈, <첩혈쌍웅>과 그에 버금가는 수작 <용호풍운>, 그리고 갬블러 무비의 진수인 <정전자>, <도신2>, 그 외에도 <첩혈속집>, <타이거맨>, <강호정> 등등 여러 작품을 꼽겠다.      

알다시피 주윤발은 90년대 말 홍콩을 넘어 할리우드에 진출한다. 그를 무비 히어로로 이끈 오우삼이 적극 도움을 주었지만, 아쉽게도 할리우드에서 주윤발은 별 임팩트 없이 그저 그랬다. 이때부터를 주윤발의 후기로 친다면, 내 보기엔 딱 하나 번쩍이는 수작이 있다. 바로 리안 감독의 무협 명작인 2000년 작 <와호장룡>이다.     

<와호장룡>, 그해 전세계 영화계에서 큰 바람을 일으킨 작품이다. 아마도 이소룡 이후 아시아 액션영화로서 가장 큰 화제와 히트를 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뭐 워낙 유명한 영화이고 오래된 영화이니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더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주윤발은 느와르에 익숙한 총잡이다. 다시 말해 무술과는 영 거리가 있는 배우인데, 여기서 주윤발은 강호의 초절정 고수 리무바이 역을 매우 훌륭하게 소화한다. 역시 특급 배우임을 여실히 증명한다.


아마도 스무번쯤은 본 것 같고 다각도에서 할 말이 많지만, 나는 <와호장룡>에서 딱 두 장면만 언급하고자 한다. 초반 장쯔이가 복면을 하고 밤에 몰래 들어와 청명검을 훔쳐 달아날 때, 그걸 보고 쫒아가는 양자경, 그 둘의 대결신이 기가 막힌다. 몇 번을 다시 봐도 과연 저걸 어떻게 찍었을까,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정중동,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명제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명품 대나무 대결신, 역시 두말할 나위 없다. 주윤발과 장쯔이의 역할과 성격, 세계관도 잘 대비를 이루며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와호장룡>으로부터 23년, 매해 수많은 무협영화가 만들어지지만 그걸 뛰어넘는 건 커녕 그 근처에 다가가는 영화조차 없는 것 같다.       

주윤발의 올드팬으로 최근 그의 배우로서의 행보가 다소 아쉽다. 물론 이미 충분히 보여줬지만, 기왕이면 현역으로 좀 더 의미 있는 영화에 자주 출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10여년 전의 <조조>, <공자>, <대상해> 정도가 그나마 언급할 만한 작품이고 그 외엔 별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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