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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중년 남자 Jan 14. 2021

중국기행7

겨울, 북경2

마지막 황제, 자금성의 황혼     


  1988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무려 9개의 트로피를 가져간 영화 <마지막 황제>, 거대한 스케일로 파란만장한 푸이의 일생을 유려하게 담아내며 깊은 감동을 자아낸 영화다. 외부인에게 처음으로 자금성내 촬영이 허가된 케이스이기도 하다. 1988년 1월인가 2월로 기억이 되는데,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나는 근처에 사는 대학생 사촌형과 함께 이 영화 <마지막 황제>을 보러 극장에 갔다.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푸이의 굴곡진 삶과 자금성의 그 거대하고 웅장한 규모는 사춘기의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로부터 8년 뒤 1996년 겨울, 나는 북경의 자금성을 찾아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엄청난 규모와 정교하고 아름다운 갖가지 건축물들을 보며 감탄했다. 영화를 보며 그 규모를 짐작해보았는데, 실제로 본 자금성은 생각 이상으로 더 거대했다. 봐도 봐도,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펼쳐지는 자금성의 풍경들, 자금성의 첫인상은 우선 사람을 압도하는 스케일이었다. 

  중국을 전공 삼아 더 공부하게 되고 이후 여러 번 자금성을 가게 된 뒤부터는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고, 다양한 각도에서 자금성을 바라보게 되었다. 관심과 애정이 있다 보니 관련된 책들도 좀 사서 읽게 되는데, 예컨대 레지널드 존스턴의 <자금성의 황혼>이 국내에 번역되자 마자 사서 읽었다.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무척 흥미롭고 재밌게 읽었다. 북경에 사는 중국인 친구는 자금성과 그 성문을 전문적으로 다룬 중국책을 선물해주기도 했는데, 기회가 되면 번역을 할 생각도 있다.

  북경이란 도시는 명, 청대 황제의 궁이었던 이 자금성을 둘러싸는 형태로 구획되고 발전해 나갔다. 그래서 북경은 바둑판처럼 반듯반듯 직선으로 이어져 있는 형식이다. 외곽의 순환도로들의 명칭도 그래서 1환, 2환, 이런 식으로 되어있다.  

  자금성안의 여러 건축물들, 그리고 높다랗고 붉은 성벽, 그리고 군데 군데 마련해 놓은 통로들, 수많은 조각상과 무늬들이 다 멋지고 우아하다. 겨울에 자금성 안을 걷는 일은 그래서 꽤나 근사한 일이다. 해가 넘어갈 무렵, 자금성에 비끼는 노을은 정말 일품이고, 높은 성벽 아래를 천천히 걷다보면 저절로 까마득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묘하고 아득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물론 자금성을 좋아한다면 언제가도 좋을 것이고, 자금성을 좀 깊이 보려면 적어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자금성을 경험해봐야 할 것이다.           



이화원, 서태후           


  북경에 와서 천안문, 자금성을 봤다면 다음으로 이화원을 보러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청대의 여름 별궁으로 알려진 이화원은 자금성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엄청난 규모의 호수와 그 호수를 내려다보는 산, 그리고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 누각, 그리고 다리, 섬까지 이화원 역시 놀라운 시각적 성찬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 또한 놀랍다. 수백년간 황제의 별궁으로 사랑받아온 이화원은 19세기 중엽 북경을 침략한 영, 불 연합군에 의해 불태워지는 비극을 겪게 되는데, 그것을 다시 오늘날의 거대하고 화려한 이화원으로 재건한 이가 바로 서태후다. 당시 청은 서구열강의 침략으로 무력하게 무너져가던 풍전등화의 상황, 하지만 서태후는 자신의 오락과 만족을 위해 군비에 쓰일 돈을 끌어다가 이화원의 재건 공사에 사용한다. 

  호수의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한 바퀴 도는 데만 한 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그 호수를 만들기 위해 파낸 흙으로 인공 산을 쌓았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화원에는 봄이나 가을에 가도 빼어난 정취로 감동을 주지만, 영하로 뚝 떨어지는 추운 겨울에 가면 꽝꽝 언 호수를 걸어보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누각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풍광도 멋지지만, 반대로 호수 한가운데서 인수전이나 만수산, 불향각을 바라보는 것 또한 근사하다. 그 넓은 호수를 동서남북으로 달려보며 맛보는 시원함도 덤이다. 장랑이라 불리는 중국 특유의 긴 회랑을 천천히 걷는 것도 색다른 기분을 느끼기에 그만이다.  



만리장성에 올라야 대장부다


  자, 다음으로는 중국을 상징하는 건축물 만리장성이다. 달에서도 보인다 하니 중국을 넘어 인류의 자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장성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와 찬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모택동이 했다는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그만큼 웅장하고 거대한 바 장성에 올라 이른바 호연지기를 길러라는 말일 터이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만큼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데, 추운 겨울엔 상대적으로 좀 덜 붐빈다. 

  만리장성을 보는 포인트는 여러 군데인데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은 역시 팔달령이다. 북경 시내에서 멀지 않고 산을 타고 험하게 굴곡진 구간이라 만리장성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구간이다. 시내에서 장성 전용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 가장 대중적이고 저렴한 방법이다. 버스 안은 중국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온 사람들로 늘 만원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팔달령까지 한시간 좀 넘는 시간이다.

  장성 초입에 식당과 가게가 좀 있고, 그걸 지나면 본격적으로 장성에 오르게 된다. 경사가 좀 있긴 하지만 그리 힘든 정도는 아니다. 산등성이다 보니 매서운 칼바람이 불지만 멋진 풍경 앞에 별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지만, 장성의 그 거대함과 웅장함을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성곽의 도시 수원이 고향인 나는 틈날 때마다 산책삼아 성곽을 걷는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고향의 화성이 좋아진다. 그런 인연이 있어서인지 나는 북경에서 자금성과 이화원, 천단공원, 원명원 등의 궁전과 만리장성을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갈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찾는다.   

<자금성 안에서, 뿌연 대기, 역시 겨울 북경이다ㅋ> 

<자금성 안 통로, 이 통로를 걷는 걸 무척 좋아한다>

<칼바람 부는 만리장성 팔달령에 서다>

<만리장성에 올라야 사나이 대장부다!>

<드문드문 눈이 쌓인 장성 부근, 멋지다>

<경상도에서 온 여대생들을 우연히 만나 함께 찰칵!>

<꽝꽝 언 이화원 곤명호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다!>

<곤명호 한가운데서 바라본 불향각>

<북경대학에서, 저 자전거를 보라!>

<북경대학 근처 만두집에서, 하오츠 하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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