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라도 해보기
오늘은 그림 말고 글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혼자 있을 때 나오는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고 하죠.
그래서인지 요즘 제 모습을 다양하게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무언가 해보려고 찾아보려는 모습, 게으르지 않게 일과를 만들어보려고 하는 모습, 살림이라는 걸 잘해보려고 하는 모습,
그러다가 무언가 쌓이고 쌓여서 와르르 쏟아져 어질러진 거실 같은 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잡다한 물건들과 설거지 그릇이 쌓인 싱크대와 정돈되지 않은 부엌을 볼 때
정리가 되지 못한 제 마음을 보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도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집안살림과 아이들만 보는데 왜 그리고 버겁게 느끼는지 질문해보기도 합니다.
아마도 뭔가 제 마음에서는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아는것은 다른 문제더군요.
저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것이 잘 안 되어질 때가 많습니다.
지금이라도 뭔가 아름다운 그림을 따라서 그리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때로 연습할 때는 좋은 그림을 따라서 그리는 연습 과정을 하고 있고요.
그러나 정작 내 그림을 만들어 내야 할 때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고 손에 연필을 또는 아이패드로 그려야 할 때는 애플펜슬도 잡는 게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그림을 보면서 그림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며 보지만
어느 것이 더 좋은 그림인지 잘 모를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그림을 좋아해서 그리던 때는 공부 안 하고 만화만 그리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화용지를 사서 아무 그림이나 그리고 좋아하는 만화가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하고
그때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혀 고민이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다른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주 수많은 이유가 있겠죠.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중 내가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내가 원하는 기대치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의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는 과정을 지나고 있는 중인데 번듯한 결과에 생각과 마음이 가있어 아닐까요?
과정을 견뎌가는 것이 즐겁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결과를 얻기까지의 그 긴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도 그 과정을 잘 견디지 못하면 정말 좋아하는 걸까 이걸 지속할 수 있을까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새로 시작한다면 난 그 일에 대한 과정은 또 잘 견딜 수 있을까 이미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게 되죠.
아마 어떤 분들은 이런 비슷한 고민이나 생각을 한 경험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한 일주일 전부터 우연히 필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필사를 하게 된 계기는 첫째 아이에게 일기를 쓰라고 시키던 중
아이가 엄마는 일기를 쓰냐고 묻길래 그동안 안 썼지만 지금부터라도 쓰겠다라고 말한 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제가 쓰는 건 사실 quiet time(이하 QT)이라고 성경을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면서 쓰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을 적는 것이 날마다 생각의 정도의 따라 내용의 편차가 심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QT일기를 적되 매일 읽는 성경의 분량을 필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일기를 썼냐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썼다며 필사한 공책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공책을 보면서 글씨가 정말 작다고 감탄을 하더라고요.
저희 아이는 왼손잡이지만 오른손으로 연필을 잡고 글씨가 아직 잘 자리 잡히지 않아서 손글씨로 균일하게 쓴 글자를 보더니 신기해했습니다.
그때 아주 조금 다행이다 하는 마음과 뿌듯한 마음이 살짝 올라왔습니다.
뭔가 아이에게 보여줄게 생겼다는 생각과
나 스스로에게도 필사가 주는 마음의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좀 더 오래 머금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머금는 시간 동안 드는 생각과 고민들이 슥슥 써 내려가는 글씨들을 통해
조금 더 마음에 잘 자리 잡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나 혼자만 느낄 수 있는 만족감과 허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만족감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허영은 혼자서 조금 누려도 되지 않겠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야 나도 나 스스로를 조금 봐주며 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도 사실은 나 스스로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다른 훌륭한 작가들의 그림을 따라 그려도 보면서 모작이든 화풍의 연습이든
그것을 손으로 익혀 훈련하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해서
첫째는 내 그림이 아닌 다른 작품을 그려서 완성한 후에 얻는 뿌듯한 마음이 왠지 약간 가짜 만족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 번째는 다른 게 아닌 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그러나 내가 만드는 것이 나의 기대치보다 낮은 수준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두가지 이유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바보 같고 부끄러운 이유지만 종이와 연필을 잡으면 자주 떠오르던 생각이었습니다.
빨리 나의 어떤 것을 찾고 싶지만 ‘빨리’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빨리’를 떨어뜨려내고 나의 것을 찾고 싶을 때 그땐 좀 더 과정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사를 하듯 그림도 연습을 모작이든 어떤 것이든 훈련을 계속해야겠습니다.
오늘의 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