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 e Oct 30. 2024

불혹의 나이에 갈대 같은 마음

슬픔이 찰랑찰랑

요즘 교회에서 모임을 하면 거의 매주 아무것도 아닌 일로(때로는 큰일도 있고) 눈물을 보인다.

같이 모임을 하는 분들이 이제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그냥 웃으며 눈이 또 촉촉해지셨다며 어색함을 무마해주시려고 한다.

왜 이리 주책바가지처럼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나는 것일까.

혼자 있을 때도 가끔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누구와 통화하닥 갑자기 눈물이 터지기도 한다.

왜 그러냐면…(벌써 갱년기?)

이유를 대려면 수만 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여기에 풀어놓을 수는 없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부분인 것도 있고 또는 여느 이유처럼 일반적이라 이야기할만한 것도 있지만

무엇 한 가지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나도 그것이다라고 정해서 말할 수 없어서 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 그만의 속사정이 있다.

누군가의 표정이 기쁨으로 빛나기도 하고

슬픔으로 찰랑 거릴 때도 있고

분노가 쌓여 타오르기도 한다.

어떤 주된 마음이 한 사람 안에 가득 차오를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얼굴빛이 그 마음의 내용을 말해주기도 한다.

심지어는 모든 것이 차올랐다가 다 쏟아져버려 텅비인 얼굴을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보통 기쁨을 좋아하지만 인생에는 기쁨만이 있지 않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다.

눈물이 가득 차있어 슬픔이 찰랑거려도 순간순간 소중하고 귀한 순간들이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주된 마음에 쉽게 희석이 돼버린다.

기쁨이 가득 차 있어 힘들고 슬픈 것이 가끔 나타나 그것들이 기쁨에 희석이 되면 좋을 텐데

인생의 시절 중 철이 들기 전에는 기쁨이 바탕색 같고 슬픔이 가끔 있는 물감 같지만

나이가 40이 넘어가면 그것이 여러 가지 슬픔 분노 회한 같은 물감이 가득 칠해져 바탕색이 잘 안 보인다.


예전에 미술수업을 들었는데 유화를 그릴 때 여러 단계를 겹쳐 올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배웠다.

그런데 좋은 그림이 되려면 초벌을 했을 때의 붓터치가 쌓이고 겹쳐진 레이어 사이로 아주 조금씩 비치는 부분이 있는 게 좋다고 이야기하셨다.

인생이 40년을 살게 되면 아주 다양한 경험의 색이 겹쳐졌을 것이다.

나에게 인생에 처음 붓질을 하던 초심 같은 마음이 내 마음속 어디엔가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초벌로 그리려 했던 삶의 생각들은 지금 남아있는 게 있을까.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살아내는 게 버거워서 그냥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만 파편처럼 가끔씩 수면 위로 떠오를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 40년을 살다 보니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를 많은 것들이 내 안에 가득 차있어서 찰랑거린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전체적인 감정은 슬픔에 가까운 것 같다.

모든 색을 다 섞어버리면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이 된다.

나는 인생의 모든 것을 내 안에서 휘휘 저으니 슬픔이 나온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싫다거나 부정하거나 아니라고 외면할 수는 없다.

살아보니 슬픔은 100% 완전한 슬픔이 없거든

완벽한 기쁨의 결정체를 지향하면서 사는 어리석은 생각은 이제 하지 않는다.


가장 힘들었을 때 기쁨을 경험했던 적이 많다.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오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안다면 슬픔을 마냥 싫어하지 않을 수 있다.


찰랑거릴정도로 차있는 슬픔도 어떤 경험을 만나 그 색이 변하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콸콸 쏟아 엎는 그런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비워진 뒤에 또 다른 색으로 칠하게 될 것이다.


아주 무겁고 쳐진 몸을 또 일으켜 하루를 살고 우울하고 어두운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다가 밤에 잠자리에서

아이의 온기를 느끼며 이불속으로 들어가 꼭 끌어안으며 머리카락 냄새를 맡으면 일단 그 순간은 모든 것이 휘발된다.

그리고 무거워서 저 지하로 떨어졌던 눈금이 0으로 맞추어진다.


나에겐 그런 순간이 몇 가지 포인트들이 있다.

매일의 시작점을 0으로만 놓을 수 있어도 나쁘지 않다.

언젠가는 0 위로 눈금이 올라갈 때도 있겠지 하면서


누구에게나 방전이 된 자기를 채울 수 있는 모먼트들이 있을 것이다.










이전 07화 필사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