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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Jan 17. 2019

이런 친구가 돼 줄게요


집에서 차로 5분 정도의 거리에 다이아몬드 헤드가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다이아몬드 헤드다. 하와이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필수 관광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꼽을 만큼 유명한 곳이다. 왠지 사람들이 모두 다 가본다니 가고 싶지가 않다. 괜히 그런다.



오늘은 한 번 올라가 보기로 했다. 소문난 관광지인 만큼 역시 입구부터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다이아몬드 헤드에 오르는 길은 끝없이 이어진 좁은 계단이라 오르내리면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많이 마주친다. 딱, 유명한 관광지에 온 기분이다. 이유 없이 피곤해진다.



그래도 다이아몬드 헤드에서 보이는 경치는 꽤나 아름답다. 탁 트인 들판, 시원한 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하와이 푸른 하늘, 덩어리 구름들. 음. 갑자기 마카푸 트레일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여기보다 훨씬 한산하고 조용하니까? 마카푸 트레일은 길도 계단이 아니고 나지막한 오르막길이라 걷기도 더 쉽다. 왜 마카푸 트레일은 인기가 없지.



다른 사람과 취향이 다르다는 것. 그것은 같은 것을 봐도 남들과 다르게 느낀다는 거다. 그래서 상호 공감이 잘 안 된다는 거다. 그러니 서로를 인정하기 힘들다. 울고 웃는 포인트가 서로 너무 다르다. 예전에 미국 시트콤 <프렌즈>가 한국에서 꽤나 인기였다. 많은 친구들이 너무 재미있다고 한 번 보면 밤을 새워서 보게 된다고 나에게도 추천했다. 그러나 아무리 보고 보고 또 봐도 나는 단 한 번을 웃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배우들은 지금 왜 웃는 건지, 나는 어디서 웃어야 하는지, 친구들은 이게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어떤 책에서 사람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율 행동형, 순종 봉사형, 지식 지능형, 사랑 믿음형.


자율 행동형은 흔히 성격이 좋다고 평가를 받고 낙관적이며 열정적이다. 주로 몸을 움직이는 활동에 관심이 있고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다소 산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흥미가 생기면 굉장한 인내심과 집중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다.


순종 봉사형은 체계와 질서를 좋아하고 일을 하기 전에 꼼꼼히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질서나 집단, 조직에 속한다는 느낌을 좋아하며 단계별로 하나하나 절차를 밟아가 배우길 좋아하고 명확하게 정의된 규칙을 들어 설명하면 이해가 빠르단다.


지식 지능형은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지식, 논리적 사고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독립적이며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외모에 그다지 관심이 없단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초연하지만 합리적인 논리로 설득하지 않으면 결코 수긍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사랑 믿음형은 감정이 깊고 민감하여 직관적이고 언어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타인과의 친밀함을 갈구하고 이해하고 이해받기를 원한다. 네 가지 유형 중 가장 인간지향적이며 상대방의 기분을 예민하게 알아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미국인 중 약 38%가 자율 행동형에 속하고 38%가 순종 봉사형에 따르며 지식 지능형과 사랑 믿음형은 각각 12%를 차지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지식 지능형이나 사랑 믿음형의 경우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더 적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들이 저 네 가지 유형 중 하나에 정확하게 속하는 것은 않겠지만, 굳이 나의 유형을 생각하자면 나는 지식 지능형에 가깝다. 슬프게도 책에 나온 말처럼 내가 친밀감을 느끼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12%에 지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사람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은 유형이라는 거다.  



지금에야 나이도 어느 정도 먹었고, 이런저런 경험과 고민들로 많이 단단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손가락질받는 건 여전히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더욱이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는 아무래도 모든 것이 서먹하기만 한데 기존의 문화나 분위기에 단번에 편승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게 되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위축된다.



그래서 새로운 곳을 싫어하나? 편하고 익숙한 곳을 지겨워하기는 커녕 더 좋아하고 맨날 다니던 장소, 사람들만 찾았나 보다. 새로운 사람들로부터 또 이런저런 수군거림을 들을까 봐.



하와이에서 처음 만나게 될 어떤 분께.


이상한 놈이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몰아붙이면

고분고분하지 않은 제 성격에

저도 모르게 욱, 합니다.

음,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지식한 면이 있긴 합니다.

골치 아픈 페미니스트 기질도 다분하고요.

원칙주의자에 약간은 이상주의자라 현실에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이야기에

누구보다 집중력 있게 몰입할 수 있는

꽤 쓸만한 청취자입니다.

잘 웃는 게 큰 장점이라

함께 있으면 내내 유쾌한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당신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세세하게 살필 줄 알고

당신의 힘들고 아픈 면도 잘 알아챕니다.

따뜻하게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사람입니다.



혼자 있고 싶어 종종 무리에서 이탈한다 해도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마세요.

당신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

또다시 내일을 살 힘이 나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어요.

왜 지금 당장부터 깔깔대며 허물없이 지내지 않느냐고

쟤는 우리랑 친구 하기 싫은가 보다,

단정 짓지 말아 주세요.

조금만 지나면 금세 당신은,

입 무거운 내게 아무 염려 없이 모든 고민을

쏟아낼 수 있게 될 거예요.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대해주길.

나만큼 소심한 나머지 나와의 첫 만남이 떨리기만 한 그를 대할 때 나도 이 말을 떠올리며 조심할 것.


그리고 결국에는 누군가에게, 이 고백 같은 친구가 돼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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