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전쟁터였나, 이 곳이. 진주만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상대방을 정복하기 위한, 욕망과 잔인함의 범벅. 억압과 복종의 강요.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죽음을 직면한 공포. 아직은 너무 어리기만 했던 눈망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려야만 했던 뜨거운 핏물. 살기 위한, 살리기 위한, 아우성들은 모두 소리 없이 사라지고 진주만에는 사진과 유품과 바다만이 조용히 남아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저 평온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몰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누군가는 강해지기를 원하고, 더 많은 것을 갖기 원한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기 위해 전쟁이 시작된다. 그래서 인류는 늘 비극에 시달린다.
꼭 총이나 폭탄이 아니어도,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어
상대방을 억압하는 행위 모두를
전쟁이라 정의한다.
우리 사회 갑질 문화가 대표적이다. 재벌 회장이 비서나 운전기사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남편이 아내를 종 부리듯 부리는 것, 나이가 많다고 하여 어린 사람들에게 꼰대처럼 구는 것 등등.
철없이 경거망동하며 망둥이처럼 까불던 시절에도 그나마 마음속 깊이 새기고 지키려고 노력했던 가치들이 몇 가지 있는데, '평등'이 그중 하나다. 거창하게 만인평등이라 외치지는 않았고 그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소중한 존재다. 그래서 함부로 누구를 무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잘난 척하거나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거슬려 일부러 거리를 두곤 했다. 어렸을 때는 이 정도만 해도 어느 정도 평등이라는 가치를 웬만큼 지킬 수 있었다.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와 보니 사실 사람은 평등선 상에 있지 않았다. 누군가는 반드시 밑에 있게 되고 누군가는 높은 곳에 거하는 게 현실이다. 잠시 기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하루는 어느 대기업 홍보팀과 함께 회식을 했다. 회식이라 봐야 미친 듯이 폭탄주를 말아먹고 노래방에 가서 또 독한 폭탄주를 말아먹는 게 다였지만. 모두 취할 대로 취해 노래방으로 갔는데 홍보팀 상무님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벌건 얼굴에 피에로 가발을 쓰고 뒤뚱뒤뚱거리며. 물론 갓 기자 딱지를 단 나 때문에 상무님이 춤을 춘 건 아니고 같이 간 선배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선배라고 해봐야 그들도 나와 2~3살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았고 부장 기자도 40대 중반쯤이나 됐으려나. 어쨌든 내 앞에서 삼촌 뻘되는 상무님이 우리에게 접대를 한답시고 뒤뚱거리며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은 꽤나 충격이었다. 몇 년 간 준비해 간신히 된 기자를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망가지지, 싶었다.
그리고선 일개 회사 사원이 됐다. 업무 차 문의를 위해 전화를 걸면 공무원들은 모른다라고 쌩하게 답변하거나 내 담당이 아니라며 전화를 이 곳 저곳으로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기자 명함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필요하지도 않은 자료까지 보내며 친절하게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던 공무원들은 당연히 일개 기업 사원에게는 그런 친절을 보이지 않았다. 전무님 방에서는 매일매일 부장님에게 고함치고 소리 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 옆에 앉아 있던 과장님은 같이 전신 마사지를 받으러 가자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완벽하게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거다.
어차피 기분 나쁘고 망가질 거라면 누군가의 아래에 있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위에 있는 편이 훨씬 낫다. 누군가의 위에 있을 때는 나를 윽박지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내 의사와 관계없이 누군가에 의해 좌지우지될 일은 없으니까. 다만 내가 누군가에게 고함치거나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높이 올라가야 하는 이유는 남들을 짓밟기 위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함임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그러나 그 후로 나는 여전히, 아직도, 바닥이다. 내 머리 위에는 층층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쉴 새 없이 시끄럽게 명령을 해댄다. 자기 입맛대로 순순히, 고분고분 움직이지 않는다며 나에게 눈을 부라린다. 나를 지키려면 나는, 뭐라도 해야 한다.
모두 내 머리 위에서 내려오라고.
누가 콧방귀나 뀔까, 싶다.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