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olulu Coffee Experience Center가 생겼다고 해서 한 번 가 보았다. (주소 1800 kalalaua Ave, honolulu, HI 96815) 호놀룰루 커피는 독특한 커피 향을 가지고 있어 이 곳을 방문한 관광객들 중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사가는 맛있는 커피다. 시큼한 맛이 도는 코나 커피는 이 곳에서 꽤나 인기가 있다. 요즘에는 커피콩을 손으로 딴 피베리 원두나 고품질의 원두를 조합한 extra fancy 커피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커피 맛을 알지 못하는 나는 그게 다 거기서 거기지만. 그저 잠이나 쫓아보내려고 간신히 한 잔 마시는 수준이다.
Honolulu Coffee Experience Center에는 원두 볶는 큰 기계가 카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코나 커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광객들이 눈으로 과정을 직접 볼 수도 있고 담당자가 이에 관해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산하다. 테이블도 널찍하게 배치돼 있어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하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 전까지는 자주 올 것 같다. 한국에서처럼.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한산한 카페에 노트북이나 책, 신문 등을 들고 주말마다 자주 갔었다. 토요일 늦은 아침, 바쁠 것 하나 없는 걸음으로 카페로 가 하루 종일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기쁨. 아마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수많은, 크고 작은 카페들을 기웃거리며 내 마음에 쏙 드는 장소를 발견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보물 찾기였다.
하와이에 와서 당혹스러웠던 일 중 하나는 이 곳에는 크고 작은 카페들이 없다는 점이었다. 온통 스타벅스 천지다. 주관적인 집계긴 하지만 이 곳 카페 점유율은 스타벅스 70%, 커피빈 20%, 나머지 작은 카페 10% 정도다. 다양한 분위기의 카페들을 찾아다는 게 퍽 즐거운 취미였는데 이 곳에서는 그런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됐다.
스타벅스, 스타벅스, 스타벅스.
어딜 가나 스타벅스만 가득하니까. 다양성이 없다는 둥, 지나치게 획일적이라는 둥, 소비자에게는 다른 선택권도 없다는 둥, 취향 존중이라는 것도 없다는 둥. 알지도 못하는 거대 자본과 대기업의 시장 독과점에 대한 불평이 구시렁, 구시렁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익숙해졌다. 스타벅스의 맛에. 커피 맛을 잘 아는 사람에게 왜 사람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유난히 좋아하는지, 왜 당신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지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어딜 가든, 어느 곳에서든, 어느 정도 이상의, 동일한 품질의 커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전 세계 어느 동네에서든 내가 아는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스타벅스의 큰 장점이란다. 낯선 곳에서 커피를 주문하더라도 내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선택.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처음 가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보면, 평소 내가 마시던 커피보다 향이 연할 때가 있다. 커피 맛을 잘 알지 못하는 나도 커피를 마시다 보니 스타벅스 커피가 주는 묵직함과 진한 강도가 어느새 커피의 기준이 됐다. 대규모 프랜차이즈의 힘이다.
얼마 전 프랜차이즈의 힘을 코스트코에서도 느낀 적 있다. 집으로 우편이 날아왔는데 코스트코에서 산 레몬밤 가루에서 기준치 이상의 철분이 발견됐다고 한다. 레몬밤 가루를 산 모든 소비자에게 환불 조치를 해준단다. 게다가 이미 레몬밤 가루를 다 먹어 실제 상품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전액 환불을 해준다고 약속했다. 코스트코니까 가능한 조치다. 전 구매 고객에게 환불 조치를 할 수 있는 자본력은 물론이며 구매 고객 리스트, 고객의 주소 정보까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만일 구멍가게에서 레몬밤 가루를 구입했다면 그 구멍가게에서는 전액 환불을 해 줄 돈이 있을까. 내가 어떤 물건을 구매했는지에 관한 정보가 있을까. 내 집 주소를 알고 있을까. 나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코스트코의 힘이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코스트코가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고 거대 자본이 소규모 자본을 독식하는 무자비한 일을 막아야 한다는 등의 이상적인 주장, 좋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나만 해도 스타벅스의 균일한 커피 맛과 코스트코의 서비스에 만족하는 소비자니까. 대기업이 소상공인을 죽이는 것에는 당연히 반대하지만
내가 구입한 물건에
하자가 있다는 정보를
통지받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코스트코에 믿음이 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정작 자기 자식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정치인 아비의 마음을 알 것 같은 묘한 모순.
무슨 일에든 함부로 주장하거나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겠다. 한 번 더 고민하고 한 번 더 신중하게. 과연 내가 그 주장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나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함부로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 없다, 개념 없다, 이기적이다, 비판하지도 말고.
더욱 중요한 건, 오로지 내가 얻을 이익만을 모든 문제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비겁한 사람이 되지 않기.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며 지혜로움과 둥글어짐을 핑계로 물러서지 말 것.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