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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Apr 09. 2019

파머스 마켓에서 핫도그를 먹으려면


다이아몬드 헤드 앞 파머스 마켓. 규모가 다른 파머스 마켓보다 크기도 하고 다이아몬드 헤드에 올랐던 사람들이 들르기 쉽기도 해서, 이 곳은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날은 또 왜 이리 더운지. 8월 한 여름 어느 날,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명동 한복판을 회오리 감자나 파인애플 꼬치를 한 손에 들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걷는 기분이다. 인구밀도 높은 거리, 타들어가는 땡볕, 시끄러운 소음. 모두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왜인지, 여기선 이런 것들이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것들 때문에 활기가 느껴진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차림의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등에서는 땀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총총거리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긴다. 별 볼일 없는 햄버거, 피자, 새우구이, 볶음밥, 쿠키 등을 구경하느라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게 재미있고 신이 난다. 한국에서는 의자도 없이 길바닥에 앉아 뭘 먹으라고 하면, 돈을 줘도 그렇게는 안 먹겠다며 손사래를 쳤을 텐데. 어느새 자연스럽게 바닥에 주저앉아 우적우적 핫도그를 먹고 있다. 



외국에 오니, 변하는구나, 나도. 놀이공원에 처음 와 본 아이들처럼 내 얼굴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마음 급한 아이들의 발걸음처럼 내 걸음도, 마음도 자꾸만 바빠진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의 저자 목수정 작가는 프랑스 유학 기간에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데 처음 본 어떤 남자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고 그 남자와 함께 수다를 떨다가 결혼까지 했단다. 작가는 한국에서라면 자신에게 말을 건 낯선 남자와 한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할 확률이 얼마나 됐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나도 변하는가 보다.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꼭, 변해야 할까. 


쓸데없이 걱정이 많은 점은 버리고 싶다. 어린 시절, 아빠가 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아빠가 돌아오시는 날까지 매일 밤 기도했다. 비행기가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흔들리는 간판을 보면서 저 간판이 떨어져 내 머리에 부딪히지는 않을까 쓸데없이 조심하기도 했다. 머리가 굵어진 후에는 월급쟁이로 살면 과연 집이나 한 채 살 수 있을까, 어떤 직업을 가져야 집을 가질 수 있는 걸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이빨이 닦기 싫어 그냥 자려다가도 오늘 하루 양치를 안 한, 이 한 번의 게으름 때문에 이빨이 심하게 썩어 신경치료를 하게 되면 어쩌나 무서웠다. 얼른 일어나 양치를 하고 잔 날들이 넘치고 넘친다. 나의 하루는 이런저런 걱정들로 늘 빼곡히 차 있다. 지치고 힘들다. 



버럭 하는 성질도 버리고 싶다. 분노조절 장애인가, 화가 나면 마인드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다. 엄청나게 크게 소리를 지르고 고래고래 목청만 높이느라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반의 반도 하지 못한다. 얼굴이 시뻘게져 어버버 하다 반박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목이 다 아프다. 우아하게 화를 내고 싶은데. 침착하게 또박또박, 그러나 날카롭고 정확하게 해야 할 말, 필요한 말을 뱉어내 상대방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싶다. 그래서 욱하지 않는 방법이나, 감정 조절하는 법 등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 화가 나면 30초를 속으로 세라든지, 잠시 그 장소를 벗어나라든지, 아니면 기분 좋은 장면을 떠올리라든지 여러 가지 조언이 있었다. 실제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 써먹어 보기도 하고, 평소에 수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님 별 차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참 변하지 않는다. 



이 외 나머지는. 뭐 괜찮지 않나, 싶다. 마냥 낙천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무조건 저질러 보는 추진력은 없지만. 어떤 일이든 조심성 있게 천천히 검토하는 소심한 성격이 오히려 안심이 된다. 꼼지락거리지만 꾸준한 것, 인내심이 많은 것,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이지만 어찌 됐던 해야 할 일은 하고야 마는 독한 점도 마음에 든다. 잘 웃고 쾌활해 주변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는 면도, 조금의 유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쓸만하다. 별 일 아닌 일에도 크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것은, 지난하고 별 볼일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큰 힘이니까. 감수성이 풍부해 잘 우는 건 조금 창피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울어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이 곳에서 얼마나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까. 변하지 않더라도 몇 가지 약점쯤이야. 모두들 마찬가지 아닐까. 아닌가. 내 단점들은 너무 치명적인 것 같기도 하고. 


길바닥에 앉아 핫도그를 먹을 수 있을 만큼은, 변했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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