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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May 05. 2019

억지로 만드는 정체성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쓰고 싶다'보다 '작가'가 되고 싶다가 먼저였다. 왜냐면 작가는 혼자 일할 수 있으니까. 평범한 샐러리맨이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어느 회사든 쓸데없는 험담과 비웃음이 없는 곳은 없었다. 관심도 없는 드라마나 TV 프로그램 이야기는 매일매일의 주제였다. 당당하게 주말에 워크숍 일정이 잡히는 것도 힘들었고 가고 싶지 않은 회식 자리에 가네 마네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피곤했다. 남자 직원들에게 적당히 생글생글 웃어주면서 비위 맞추는 것도 고달팠고 여자 직원들과 어울리면서 머리 모양이나 매니큐어, 성형 등으로 호들갑을 떨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 쪽에도, 저 쪽에도 제대로 끼지 못하고 겉도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특이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작가라는 직업을 소망하게 됐다. 


나의 글쓰기는
이렇게 불순한 의도로
시작됐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쓴다는 작가들의 운명 같은 후기들을 많이 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강력한 끌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천부적인 재능, 고독의 시간에 집중하는 절대적 몰입. 내 경우는 이와 반대다. 글을 쓰지 않아도 내 삶은 잘만 굴러간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은 잘만 흐른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즐겁게 수다를 떨다 보면 글을 써야지, 하는 다짐은 저만큼 달아난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 언제든, 글은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이 훨씬 수월한 법이다. 반면 글을 쓴다는 건 언제나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텅 빈 종이를 잘 된 글이든 아니든, 어쨌든 나만의 이야기로 채운다는 게 사실은 무척이나 버겁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글을 읽고 쓰는 행위가 익숙하고 자연스럽다는 거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다. 거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을 초등학교 어린 나이에도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지금 다시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라면 좀이 쑤셔서 못 할 것 같은데. 그땐 어렸는데도 어떻게 그리 진득하게 앉아서 책을 읽었을까 신기하다. 대학에 와서 법을 공부하고 언론고시를 공부하면서 글 쓰는 일에 자연스럽게 노출됐고 기자가 된 후에는 이렇게 단순히, 기계적으로 사실만 나열하는 글쓰기보다 좀 더 창의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 혼자서 이것저것 끄적이면서 글을 써왔다. 



그리고 지금은 하와이 생활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있고. 이번 에세이 쓰기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더운 날씨에 무거운 카메라를 챙겨 들고 그늘에 앉아 쉬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 곳 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한다. 글 개요를 짜고, 컴퓨터를 켜고, 글을 써내려 간다. 다른 모든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모든 것들을 일상생활을 하면서 간신히 짬을 내 남는 시간에 쉬지 않고, 졸린 시간에 눈을 비비며 해야 한다. 억지로, 불가능한 시간에. 몸은 천근만근이고 졸리다. 일어나고 싶지 않다. 더 자고 싶다. 머리에서 쥐가 난다. 잠시 남는 틈에 글을 쓴답시며 애쓰고 싶지 않다. 그저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 



가장 힘든 점은, 굳이 이렇게까지 무리하면서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사실 내 글은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다. 

아직 정식 작가도 아니고 글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나 편집자가 잇는 것도 아니다. 마감일을 지켜야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 혼자 억지로, 글을 써야 한다고, 쓰고 싶다고, 언젠가 나도 작가 되고 싶다는 나만의 열정으로 꾸역꾸역 이어가는 거다. 필요도 없고 의무도 없는 일. 혼자만의 결심과 약속만으로. 쓰는 것도 아닌, 안 쓰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수준으로, 한 달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한 글쓰기를 지속한다는 것. 몸이 부서질 만큼 고달프다. 그럼 다 그만두고 맘이라도 편하게 쉬면 되는데 그러지도 못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새벽 4시에 맞춰 놓는 알람. 내일은 꼭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마음을 다잡고 다음 날 역시 일어나지 못하는 나. 스스로를 향한 실망감. 그 실망감을 다시 추스르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추는 매일매일은 뼛속까지 서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것도, 안 쓰는 것도 아닌 글쓰기를 겨우 이어가는 이유는. 나만의 정체성을 만들고 싶어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 유학생을 뒷바라지하는 와이프. 이런 상황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정체성을 찾기란 사막에서 쌀 한 톨을 찾는 것처럼 허망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포기하고 싶은 일이다. 그까짓 쌀 한 톨 뭐에 쓰겠다고 이 고생을 하나, 안 하고 말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고 결론이다. 



그래서 더 쓴다. 끝끝내 내 존재를 찾고 싶어서. 아무도 작가로 인정해주지 않아도, 아무도 내 글을 원하지 않아도, 가까스로 새로운 내 이름을 찾고 싶어서. 때문에 내 글에는 육아 이야기도 없고 아줌마의 한탄도 없다. 유학생 와이프라는 타이틀도 없다. 의식적으로 이런 것들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외면한다. 오로지 내 감성, 느낌에만 집중한다.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상의 분주함 때문에 금세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생각들을 끝끝내 붙잡는다. 


나만의 이야기들로만
글을 꽉 채운다. 


하와이에 놀러 온 관관객들이 부럽다. 여기서는 마음껏 쉬고 즐기기만 하면 되니까. 돌아갈 날짜가 정해져 있고 약속된 비행 날짜가 있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면 두고 왔던 자신만의 이름이 있으니까. 외국인으로, 이방인으로, 그냥 주부로 보내는 하와이 하루하루는 파란 하늘 때문에 더 초라하다. 


내일은 꼭
새벽 4시에
일어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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