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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Apr 20. 2019

오바마를 이기는 법


도로가 꽉 막혔다. 출퇴근 시간도 아닌데 30분째 앞으로 나가질 못하고 있다. 나중에 들으니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여름휴가 차 하와이에 왔단다. 하필이면, 도로를 막고 교통을 통제했던 그 시간에 움직였나 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하와이를 방문할 때마다 숙소로 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카할라 호텔'이다. 관광지가 아닌, '카할라'라는 부자 동네 한 귀퉁이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호텔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들도 하와이에 올 때면 이 곳에 머무른다는 말을 들었다. 몇몇 연예인들의 결혼식장도 이 곳이었다. 



비싸기로 유명한 하와이 호텔 중에서도 더 비싼 축에 속하는 호텔이라 1박은 꿈도 못 꾸고 조식 뷔페를 맛보러 한 번 와 봤다. 한가롭고 조용하게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꿈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바다를 송두리째 전세 낸 기분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좋겠다, 매년 이런 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어렸을 적 철도 없고 겁도 없던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터무니없이 모든 일에 자신만만하던 때. 그때는 내가 나중에 유명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단한 사람. 어떤 분야에서 이름을 알릴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을 만큼 막무가내였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알 만큼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리석게도. 중요한 건 이 다음이다. 그래서 돈 걱정 같은 건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누리고 싶은 것들은 모두 누리면서 살고 싶었다. 그때는 오바마 대통령이나 카할라 호텔은 알지도 못했다. 여기 와 보니 언제든 내가 원하는 때 카할라 호텔에 와서 쉬다 갈 수 있는 사람 정도가 되고 싶었나 보다. 대책 없이 부끄러운 그 어린 시절에. 



불행히도 어린 시절의 말도 안 되는 그 꿈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고, 나는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돼 버렸다. 오바마나 미셸 오바마의 인생에 대해서는 도저히 손톱만큼도 상상이 안 가는, 완벽하게 평범한 인생. 유명 인사들의 자서전을 들춰보면서 그들의 인생을 신기한 눈으로 기웃거리는 또 한 명의 관객이다. 



이제는 안다. 나는 결코 유명해질 수 없다는 걸. 아무 때고 내가 원할 때 하와이에 놀러 와 카할라 호텔에서 머물 수 있는 기회는 내 인생에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나는 꿋꿋이
 내 앞에 펼쳐진 하루하루를
멋지게 보내야 한다. 


평범하게 산다는 건 이렇게나 어렵다. 



평범하게 살려면. 


유명인의 삶은 줘도 안 한다는 특유의 거만함이 있어야 한다. 유명인은 피곤하기만 하고 사생활도 보호받지 못하고 힘들고 귀찮은 일이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 지금의 내 삶이 저들보다 훨씬 낫다, 나는 아마 유명해졌으면 우주 밖으로 도망갔을 거라는 심각한 잘난 척. 너희들이 나보다 능력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일 수는 있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내 삶을 사랑하고 아낀다며 밑도 끝도 없이 콧대를 한껏 세워야 한다. 



좁은 시야도 필요하다. 자꾸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의 삶을 살피는 넓은 시야를 버려야 한다. 쟤는 저게 부럽고, 얘는 이게 부럽고. 누구는 돈이 있고 누구는 명예가 있고 누구는 권력이 있는데. 옆집 친구는 어떤 집에서 살고, 그 집 아빠는 뭐하는 사람이고. 옆 사람이 뭐하며 살든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나, 나, 나! 나에게만 집중하는 좁은 시야가 오히려 도움이 된다. 나는 뭘 할 때 행복한가, 나는 어떤 사람들을 사랑하는가, 나는 지금 건강한가, 마음이 아프지는 않은가, 나는 어제 왜 울었던가, 그래서 오늘의 나는 이제 괜찮은가, 내가 힘들 때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은 뭐였지 등등. 남들이 얼마나 비싼 스테이크를 먹는지는 중요치 않다. 대신, 비가 오고 우울한 날 내가 마시고 싶어 하는 따뜻한 핫초코를 잔뜩 준비하는 거다. 



쉽게 풀이 죽거나 낙심하지 않는 허세도 부릴 줄 알아야 한다. 혹시 이유 없이 나를 깔아뭉개려는 사람을 마주친다거나, 아니면 그냥 나보다 센 놈, 잘난 놈, 나은 놈들을 만났을 때. 네까짓 게 뭐냐, 나도 너만큼 귀한 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소리칠 수 있어야 한다. 아무 이유 없이 먼저 괜히 눈을 내리깔지 않아야 한다. 어깨를 더 크게 부풀리고, 나는 나대로 봐줄 만한 예쁜 구석이 있으니 너보다 낫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쳐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고집도 평범한 삶을 버텨내는 중요한 요소다. 그거 해서 밥은 벌어먹고 살겠냐, 네가 잘하는 게 뭐가 있냐, 옆집 누구는 이번에 어디에 취직했다더라, 누구는 무슨 시험에 합격했다더라, 너만 허구한 날 밥만 축내고 뭐 하는 거냐. 주변에서 이렇게 콕콕 찌르더라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채 꾸역꾸역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안하무인식의 고집. 하루 종일 병원에서 환자들 보는 것보다 주먹밥 만드는 게 더 재미있고 신나니까 제발 잔소리는 그만하세요, 라는 철벽 같은 똥고집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맥없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지나치게 과도한 자부심.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이해하지 못해도 나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을 과하게 부풀려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남들은 경시대회에서 받은 상장을 들고 자랑할 때, 나는 오늘 친구들과 했던 피구 경기에서 혼자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호들갑을 떨어야 한다. 부모님의 혀 차는 소리에는 뻔뻔한 얼굴로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정말 모르냐며 오히려 기가 찬 표정으로 반문해야 한다. 예민할 만큼 병적인 예리함으로 우리는 별 것 아닌 일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로 인해 진심으로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예쁜 연예인의 얼굴과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계속해서 비교하고 있나요. 당신은 지나치게 겸손하군요. 조금 더 거만해지세요. 네 얼굴, 네 피부, 나는 줘도 안 갖는다, 내가 더 예쁘다, 이렇게 외치면서요. 



승진에서 누락됐나요. 자꾸만 경쟁에서 뒤처지나요. 그래서, 오늘 풀이 죽어 울고 있나요. 당신은 사기꾼들의 허세를 배워야겠네요. 나는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쓴다, 나는 최선을 다 했으니  그걸로 됐다, 이러면서요. 



공무원 시험 준비해라, 준비해라, 그게 제일 안전빵이다, 이 모지란 놈아! 이런 비난에 자꾸만 풀이 죽고 흔들리나요. 이런, 당신은 너무나 유연한 사람이군요. 내가 맞다고, 망해도 내가 망한다며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세요. 



화분은 왜 키우냐, 그깟 싹은 배도 안 부른데 허구한 날 물 주느라 시간만 다 버린다! 동네 탁구대회는 무슨 탁구대회! 그럴 시간 있으면 잠이나 자라! 사람들이 자꾸만 나만의 즐거움을 방해하나요. 그런 친구들이라면 연락을 끊고 더 날카로운 눈으로 화분에 새로 난 싹을 찾아보세요. 팔목에 붕대를 다시 고쳐 감고 토요일 오전, 탁구채를 들고 큰 함성을 지르자구요. 


이런 즐거움이 있어야 우리는 오바마를 이길 수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오바마를 이길 필요가 있나 싶네요. 
오바마만큼 행복합니다,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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