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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Aug 27. 2019

마당넓은 집이야기

가마솥의 단상

타닥.타다닥 나무타는 소리가 정겹다.

내가 사는 마을은 도심에서 살짝 비켜난 외곽지에 위치해 있다. 외곽지라 해도 버스도 흔하고 한블럭 아래 지하철도 다닌다. 농촌은 아니어도 농촌의 풍경과 정서가 느껴지는 이곳을  사람들은 반촌이라 부른다. 털털 거리며 요란스럽게 경운기가 다니는 길 예전엔 소가 달구지를 끌며 지나 다니기도했다. 강산이 두번 바뀌고도 남을 세월이 흐른 지금, 아쉽게도 그 시절이 아이들에겐 그저 그림책속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되었지만 가을 타작마당은 아직 해마다 여전하다.


우리 동네 집들은 시내의 집들과 달리 대부분 널찍한 마당을 끼고 있고, 저마다 넓은 마당 한켠에 우리집 마당에 있는 것과 같은 가마솥이 한두개씩 걸려 있곤 하다. 넓은 마당은 가을걷이후 수확한 농작물을 펴 말리는데 요긴하고, 한쪽에는 헛간이나 작은 창고를 지어 농사일에 필요한  집기들과 허드레것들을 보관한다.

시어머님은 가마솥이 걸려있는 그곳을 부엌이라 칭한다. 마당에 있는 부엌, 불을 사용할수있어 그렇게 부르는거 같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깻대와 콩대를 바싹 말려 놓았다가 가마솥에 불을 피울때 불쑤시게로 사용하곤 한다. 부엌에 불을  모두면, 가끔씩 타작때 털리지 못하고 콩대에 남아있던 콩알들이 튀어서 탁 탁 소리가 나곤 한다. 난 그 소리가 너무 좋아,애꿎은 콩대를 화덕에 자꾸 밀어넣는다. 그럼 그때마다  빨간 불꽃이   화르륵 피어올랐다 너울 거리고 또 화르륵 거린다. 나무들은 따닥따닥따닥  장단을 맞추며 신나게 타들어 간다. 그 정겨운 소리와 특유의 냄새 까닭에 불장난에 빠진 어린애처럼 한참 곁 지키고 앉아 볼이 게 지도록 들여다 본다.


처음  시집을 와서  마당에 있는 가마솥을 보고 

 내가 저 솥을 사용하게 될일은 꿈에도 없을거라 생했다. 가마솥에 대해 의식적으로 무관심하려 애썼다. 그저 가마솥을 어머님 세대의 유물과 골동품정도로 여겼. 편리함에 길들여진  어린새댁에게 가마솥이 그리  반가울리 없었다. 이곳에 시집온지도 꽤 되었지만,  아직도 마당의 가마솥이 내살림처럼 친근하진 않다. 허나 짧지 않은 세월,  맑은날이나 궂은날도 변함없이 단단하고 다부지게 그자리를 지키는 모습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마당을 지키 가마솥의 존재감이 내 마음으로  조금씩  스며고 있었다.


바싹 말린 콩대는 불쑤시게로는 최고다.


시골집의 가마솥은 생각보다 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트는대로 바로 따뜻한 물이 나오게 보일러 시설을 갖추었으나, 예전 시집 왔을때만 해도 따뜻한 물을 려면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했고,

그것 마저도 기름값을 절약하기 위해 어느정도 식구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바람끝에  찬기운이 묻어올때면, 목욕탕 가는 돈이 아까운 시어머님께선 마당에 있는 가마솥에 물을 길어다 가득 채우신후, 화덕에 활활  피곤 하셨다. 김이 펄펄 나는 물을 길어다 먼저 발가숭이 손주 녀석을 담궈 씻기신후  당신께서 씻으시고, 사용한 허드렛 물은 빨래감등을 치대어 담궈 놓으시는등,  하나도 헡으로 버리시는게 없으셨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인데  떠올리면  어제일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건 왜 일까.  세월이 무색하게 생생한 가마솥이  아직 우리곁을 지키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저만치 높아지고,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며 춤추는 계절. 까만밤 하얀 보름달이

두둥실 뜰무렵에  우리집 마당에 걸린 가마솥도 하얀 김을 뿔뿔 내뿜으며, 무뚝뚝한 뚜껑일랑 내려놓고  바쁜 한철을 보낸다. 

가마솥을 이용하면  가스불에서  요리할때랑 비교해  콕 집어 설명할수 없는 그런 감칠맛이 난다.

먼저 펄펄 끓는 물이 든 솥에  큼직하게 끊어온 돼지고기된장. 음나무등을 넣고 몇시간 푹 삶아 내면, 냄새없 단백 둘이 먹다 하나가 가도 모를 맛난 돼지고기 수육이 완성된다.  어머니께서는  금방 건진 고기를  부엌칼로 숭덩 끊어  맛보라며  며느리에게 들고 오신다.  지금 어야  젤 맛나다 하시며 한사코 입을 벌리라 하신다.   이기는척  입으로 가져와  쭈욱 찢은 묵은 김치와 곁들어 먹는  수육 한점의 기막힌 맛이란!  


추어탕은 손맛과 불맛이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또하나.

 추어(미꾸라지)를  가마솥에 푹 삶아내어 채에 거른후, 나물등과 함께 된장을 풀어 넣 한소뜸 끓여내는 어머님 손맛으로 완성된 찐한 육수의 추어탕. 아낌없는 나무가 되어 자식들 위해 희생하신 어머님의 사랑 가마솥 불맛이 어울어 그맛 길들여진 우리 식구는 외식할때 추어탕을 절대 사먹지 않는다.


당신의 이마주름 밭고랑처럼 패어져 가고, 허리는 활처럼 휘어가도록 난 왜 몰랐을까.시집올 당시만 해도 밭일이면 밭일, 집안일이면 집안일, 당신 손을 거치면 안되는게 없었던 슈퍼우먼 어머님 이셨다.

이젠 아쉽게도 콩대를 꺽어 불을 지피시는 어머님의 뒷모습은 해가 수록 작아 지신다.


새벽닭 울면 피곤 몸 겨우 일으켜, 떠지지 껌벅이며 애써 불 지  가마솥 열어 새벽 짓던 새색시는 어디 갔을까. 엄니는 불똥 튀는 화덕속을  빤히 쳐다보다, 꼬박꼬박 졸다 화들짝  고목나무 같은 손으로 마른 장작더미 하나를  화덕에 또 밀어 넣는다. 같던 불이 화르륵 살아난다.  


오랜세월  어머님를 도와 식구들을 챙기던 가마솥은, 오늘도 화덕불이 빨갛게 올라와 검은 그을름을 남겨도, 묵묵히 뜨거움을 참아 견디고 있다. 반백년이 넘는 세월 전쟁치르듯 하루하루 자식들을 위해 삶을 이어오신 엄니처럼 그렇게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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