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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진 Oct 11. 2024

나의 소소한 일상

다자이 오사무 (1909-1948)

<나의 소소한 일상>, 다자이 오사무, 김춘미 옮김, 시공사, 2007

162p.

"똑같은 얘기야. 무대만 줘 보라고. 내가 마음에 들걸. 그립거든 찾아와라. 나는 자루 속에서 일곱 편의 견본을 꺼내 다시 보일 뿐이다. 나는 그 일곱 편에 흩뿌려진 나의 피와 땀을 말하지 않는다. 보면 틀림없이 안다. 이미 나에겐 선택받을 자격이 있다."


164p.

인간이란 약점, 좀 더 세련되게 말하면 어깨의 낙엽 자국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쏜 화살을 진실이라 말하며 칭송한다. 하지만 그런 뻔한 약점에 화살을 쏘기보다는 알면서도 일부러 빗나가게 쏴서, 상대방에게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빗나가게 했구나 느끼게 하고도 자신은 어디까지나 실수로 빗나갔다고 중얼거리고, 정말 몰랐던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것도 재미있지 않겠는가.


165p.

"나는 덧없고 바보 같은 이 허영의 도시를 사랑한다. 나는 평생 이 허영의 도시에서 살고, 죽을 때까지 갖가지 헛된 노력을 계속하려고 생각한다."


167-168p.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었다. 매에 대한 두려움, 다시 말해 세상에서 따돌림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감옥에 대한 증오, 그런 것을 양심의 가책이라 부르고 마음 편해하는 것 같다. 자기 보존의 본능은 마차를 끄는 말이나 집 지키는 개에게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일상윤리의 뻔한 엉터리를 모른 척 답습해 나가는 것이 또 세상의 귀여운 점이니, 혈기로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 고 같은 하숙집의 샐러리맨이 내게 충고해 주었다.

아니지,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새로운 윤리를 수립하는 거야. 미와 예지를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윤리를 만드는 거다. 아름다운 것, 영리한 것은 모두 옳다. 추함과 우둔함은 사형이다. 이렇게 나섰지만 막상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살인, 방화, 강간, 몸을 떨면서 그들을 동경했지만 무엇 하나 하지 못했다. 일어섰다 주저앉았다. 샐러리맨이 또 나타나서 체념과 태만의 좋은 점을 역설한다.


170p.

문학에 난해는 있을 수 없다. 난해는 자연 속에만 있는 것이다. 문학이란, 난해한 자연을, 각자 자기식 각도로 싹둑 잘라서(자르는 척하여), 그 자른 부분의 선명함을 자랑하는 데 잠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172p.

문장에는 좋고 나쁜 구별이 확실히 있다. 외모나 자태 같은 것이리라. 숙명이겠지. 어쩔 수 없다.


189p.

마음이 굳건하고 훌륭한 인격을 지니고, 의심할 바 없이 감상문인 것을 즐거운 듯이 써나가게 되어서는 작가고 뭐고 없다. 세상의 명사(名士)중 하나가 되고 마는 것이다. 열심히 움직이고, 가는 곳마다 시원찮은 바보짓을 하던, 전혀 되어 먹지 못한 악령의 작자가, 어쩐지 그리워진다. 경박재자(輕薄才子)가 좋은 것이다. 터무니없는 실패의 고마움이여. 추한 욕심의 고귀함이여. 훌륭해지고 싶으면, 언제라도 될 수 있으니까 말이야.


193p.

율리시스에도 여러 가지 소리가 잔뜩 담겨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소리의 효과적인 적용은 서민문학, 소위 서민이 주인공인 세태소설에 많은 것 같다. 원래 상스러운 것이 틀림없다. 그 때문에 더욱 부끄럽고 애잔한 것이리라. 성서나  「겐지 이야기」 에는 소리가 없다. 완전히 고요하다.


200p.

웃음. 이것은 강하다. 문화의 궁극적 불꽃이다.이지도 사색도 수학도 일체의 교양의 극치는, 필경 포복절도하는 큰 웃음으로 끝난다. 그렇다면 아, 교양은, 교양이라니, 역시 그런 것에 얽매여 있으니까 포복절도감이다.


가장 속세에 신경 쓰는 자는 예술가이다.


242-243p.

"누구나 처음에는 본보기를 좇아 연습을 쌓지만, 창작자란 자가 언제까지나 본보기에서 못 벗어나는 것은 실로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확실히 말하면 당신은 아직도 누군가의 방식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거기에 목표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적'이란 애매모호한 장식적 관념을 버리는 게 좋습니다. 사는 것은 예술이 아닙니다. 자연도 예술이 아닙니다. 좀 더 극언하면, 소설도 예술이 아닙니다. 소설을 예술로 생각하려고 하는 데에, 소설의 타락이 배태되어 있다는 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 설을 지지합니다. 창작에서 가장 당연히 힘써야 하는 것은, '정확을 기하는 일'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풍차가 악마로 보이거든 주저 말고 악마로 묘사해야 합니다. 또 풍차가 역시 풍차 이외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때에는 그대로 풍차를 묘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은 풍차가 풍차로 보이지만, 악마처럼 묘사하지 않으면 예술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뻔한 궁리를 이리저리 하여 낭만적임을 자처하는 멍청한 작가도 있습니다. 그런 자는 평생 가도 무엇 하나 포착하지 못합니다. 소설에서는 결코 예술적 분위기를 노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본보기인 누님 그림 위에, 얇은 종이를 대고 벌벌 떨면서 연필로 베끼는 것 같은, 정말로 웃기는 유치한 놀음입니다. 하나도 볼만한 것이 없습니다. 분위기 양성을 기도하는 것 역시 스스로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체호프적 이라느니 하고 조금이라도 의식하면, 틀림없이 무참히 실패합니다, 무작정 글자체를 꾸미고, 일부러 한자를 피하고, 불필요한 풍경 묘사를 하기도 하고, 쓸데없이 꽃 이름을 쓰거나 하는 일은 엄중히 삼가고, 그저 진실하고 우직하게 인상의 정확을 기하는 일 한 가지만 노력해 보세요. 당신에게는 아직 당신 자신의 인상이라는 것이 없는 듯이 보이네요. 그래서는 언제까지나 무엇 하나 정확히 묘사할 수 없습니다. 주관적이 돼라! 강력한 하나의 주관을 지니고 나아가라! 단순한 눈을 가져라!"


244-245p.

 「중경에서 온 남자」 쪽은 그것과 정 반대였다. 도통 예술적이 아니다. 우수 장면 따위는 하나도 없다. 모두가 허둥거리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이 아주 재미있다. 결코 걸작은 아니다. 걸작이니 뭐니 그런 것은 다 잊어버리고 뛰어다니고 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일본영화도 진보했구나 생각했다. 이런 영화라면 반나절을 소비해서라도 보러 가겠다고 생각했다. 옛날 걸작을 본보기로 만든 영화가 아닌 것이다. 표현하고 싶은 현실을 기를 쓰고 쫓아가고 있었다. 그 정색하고 기를 쓰는 점이 신선했다.

 학생들이 만든 연극 같은 조잡한 구석도 있었다. 학예회같이 치졸한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어딘지 진지하게 기를 쓰고 있다. 그 영화에는 지금까지 일본영화에 없었던 청신함이 있다. 역겨운 예술적이란 장식을 무심결에 깜박했기 때문에, 도리어 성공하고 만 것이다. 거듭 말한다. 영화는 예술이어서는 안 된다. 나는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267p.

고고하다고 자칭하는 자는 경계해야 한다. 첫째, 그것은 같잖다. 거의 예외 없이 간파당하게 된 타르체프(Tartuffe)이다. 도대체가 이 세상에 고고란 것은 없다. 고독이란 것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고저(孤 

低)한 사람이야말로 많다고 생각된다.


274-275p.

 인생이란, 나는 확신을 가지고 이것만은 말할 수 있는데, 괴로운 것이다. 태어난 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그저 남과 다투는 것이며, 그 사이사이에 우리는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도움이 된다.

 그까짓 게 뭔가? 맛있는 것을 소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맛보지 않는다면, 어디에 우리가 사는 증거가 있겠는가? 맛있는 것은 먹어보아야 한다. 맛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위 노대가가 내민 요리 중 무엇 하나도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

 모두 무학이다. 폭력이다. 약함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한테는 맛이 없다.

 무엇이 맛있고, 무엇이 맛없는지를 모르는 인종은 비참하다.

...

 맛. 혀가 깔깔해지면 맛을 모르게 되어, 그저 양, 아니면 씹는 감촉, 그것만이 문제가 된다. 모처럼 고생하여 나쁜 재료는 버리고 정말로 맛있는 부분만을 골라서 바쳤는데도 날름 한입에 삼키고는 이것 가지고는 요기가 안 된다. 더 맛있는 것은 없는가. 소위 식욕에 있어서의 음탕함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다.


290p.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정성을 다하는 것이라 해도 자네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절이라고 하면, 너무 맛대가리가 없다. 마음씨, 마음가짐, 마음 씀씀이. 이렇게 말해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즉,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작자의 정성을 다한 것이 독자에게 통했을 때, 문학의 영원성이라든가 혹은 문학의 존귀함이라든가, 기쁨이라든가 그런 것이 비로소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299p.

고귀함이란 약한 것이다. 갈팡질팡 어찌할 바 모르고, 쉽게 얼굴 붉히는 것이 고귀함이다.


300p.

 진정한 정의란 우두머리도 없고, 부하도 없고, 자기도 약해서 어딘가에 수용되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거듭 말하지만 예술에는 보스도 부하도 친구조차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

 한마디로 말하자. 너희들은 고뇌의 능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능력도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너희들은 애무할지는 모르나, 사랑하지는 않는다.


302p.

예술은 시합이 아닌 것이 아니다. 봉사이다. 그렇지만 상처 입고 좋아하는 변태도 많은 것 같으니 못 당하겠다.


312p.

 좀 더 약해져라. 문학가라면 약해져라. 유연해져라. 네 방식 이외의 것을, 아니 그 괴로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아무리 해도 이해가 안 되거든, 잠자코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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