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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Jan 30. 2022

내가 육아라는 겨울을 살아낸 방법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를 읽고


2살, 4살 어린 두 아이를 2년 동안 가정 보육했다. 내 의지가 아니라 코로나라는 외부의 환경 제약 때문이었다. 그 길고 어두운 시간이 내 인생의 겨울이라고 여겼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나는 자유를 잃었다. 운동도, 공부도, 피아노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두 아이 돌봄에 나의 24시간을 온통 쏟아부었다.


 새벽 6시, 둘째의 기상으로 긴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루는 아이들의 짜증과 나의 분노로 채워졌다. 아침을 챙기고 설거지를 마치면 점심을 차릴 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먹이고 치우면 저녁을 차려야 했다. 질투 많은 두 아이는 서로 내 관심을 차지하려고 싸우고 때리고 도망 다녔다. 장난감을 던지고 집안의 온 서랍을 열어 헤집었다. 사투 같은 날을 보내고 잠자리에 누우면 뺨 사이로 땀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집안일과 짐승 같은 두 아이 돌봄에 빈 껍데기만 남은 가슴속에 찬 바람이 휭휭 불었다. 이렇게 사라지고 있는 나를 찾고 싶었다.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았다.


겨울은 육아에 있어 더없이 괴로운 계절이었다. 추위와 미세먼지로 코로나 시기에 유일하게 허락된 행위인 놀이터도 갈 수 없었다.  산책도 무리였다. 감기는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한번 걸리면 일주일 이상 골골거리고 밤에 잠을 못 잤다. 밥도 하루 한 끼 겨우 먹을 정도로 입맛이 떨어졌다. 한 명이 걸리면 다른 아이가 바로 아팠다. 코가 막히고 콧물이 흐르니 짜증이 폭발했다.



겨울은 길기도 했다. 11월부터 3월까지 못 잡아도 5개월은 되었다. 1년의 3분의 1이 넘는 시기였다. 나는 겨울이 다가오면 희망을 잃은 새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어서 봄이 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봄은 더디게 다가왔다. 햇살이 따듯해질라 하면 꽃샘추위가 찾아와 희망을 차갑게 얼렸다. 나는 겨울을 버티고만 있었다. 시계만 쳐다보며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어디쯤에선가 넘어지게 되고, 겨울은 그렇게 조용히 삶 속으로 들어온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자연에도 겨울이 있어야 봄이 오는 것처럼, 인생에도 누구에게나 겨울이라 여겨지는 시기가 온다. 그 겨울 동안 좌절하고 우울해하고 몸부림치기도 한다.  



1월 마지막 주 일요일이었다. 조금 바람이 잔잔해지고 기온이 7도쯤 오른 날이었다. 여전히 차가운 온도는 공기 중에 가득했다.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이 공기가 쾌청했다. 유모차를 밀며 호수를 돌았다. 한 달만 이었을까. 오랜만에 마주하는 산과 호수에 기분이 좋았다. 봄은 아직 멀었다고 느껴지는 한겨울이었다. 땅바닥을 바라보고 걷고 있으니 산 옆에 조금씩 새싹을 틔우고 있는 잡초들이 보였다. 꽁꽁 언 땅을 뚫고 뿌리를 내리고 새어나가는 햇살 한줄기를 어떻게든 잎으로 받아들이려 애쓰는 작은 생명의 꿈틀거림이 보였다.


나무들은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한다. 떨어진 잎들은 산림층의 뿌리 덮개 역할을 하고, 뿌리는 여분의 겨울 수분을 빨아들여 겨울 폭풍에도 끄떡없는 견고한 지지대로 작용한다. 숙성된 솔방울과 견과들은 먹이가 부족한 이 계절에 들쥐와 다람쥐에게 필수 식량을 제공하고, 나무껍질은 동면하는 곤충들의 안식처이자 굶주린 사슴의 영양 공급원이 된다.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이것이 숲의 생명이자 영혼이다. 숲은 조용히 부단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숲은 봄에 갑자기 생명력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새로운 옷을 입고 세상을 다시 마주할 뿐이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자연은 겨울에도 부지런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죽은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있던 나무는 실제로는 봄을 기다리며 부단히 생명활동을 해나가고 있었다. 내가 보지 않았을 , 발아래 작은 이파리들은 돋아나려고 목숨을  생존 투쟁을 계속해나가고 있었다. 봄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살아있는 오랜 기다림 끝에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것이었다.



멈추어 있다고만 생각했던 겨울. 자연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겨울을 죽은 것처럼 맞이하고 있던 나의 삶의 태도를 돌아봤다.  나무, 새싹, 다람쥐들은 겨울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겨울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봄이 올 때까지 겨울을 살아낼 가장 편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어쩔  없이 다가오는 겨울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내야 하는지 생각했다. 어차피  아이와 집에만 있어야 하는 시기를 벗어날  없다면,  시간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방도를 찾을 것인가. 나는 숨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겨울이라는 침잠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보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것이 바로 윈터 링이다. 슬픔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그것은 슬픔을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의 요소로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우리의 경험 중 최악의 경험을 응시하고, 최선을 다해 그것을 치유하고자 애쓰는 용기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인생의 겨울이라는 시기가 찾아왔다.  슬픔과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 피하려 할수록 끈질기게 내게 달라붙어 나를 괴롭혔다. 슬픔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려는 태도. 겨울을 견뎌내는 나무에게서 윈터링을 배웠다. 겨울이 어쩔 수 없이 동반하는 슬픔과 최악의 시간을 최선을 다해 치유하려고 애쓰는 용기. 그것이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아이  가정보육을 하며 만들어   있는 나만의 시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챙겼다.  시간이라도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며  생각을 쓰고, 책을 읽고, 명상을 하면 그날 하루는 아이들에게  관대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대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시작했다. 첫째는 자전거를 타고 둘째는 유모차에 태웠다. 오후 태양이 가장 따뜻할  날씨가 괜찮으면 무조건 나갔다. 바깥바람을 쐬고 나면 막혀있던 체증이 내려간  숨쉬기가 편해졌다. 부지런히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오리를 구경했다. 아이들은 오리 하나,   마리에도 까르르 웃어댔다. 겨울에도 이파리가 파란 작은 식물들을 발견하고 감탄했다. 세상 작은 미물에도 시선을 멈추는 아이들의 순수한 얼굴에  마음도 환해졌다.




아이가 낮잠에 들면, 집안일은 제쳐두고 일단 책상에 앉았다. 커피 한잔을 내리고 잔잔한 배경음악을 켰다. 접어두었던 책 한 권을 펼쳤다. 현실은 내 방안이었지만, '이곳이 카페다'라고 주문을 외웠다. 어디에도 나갈 수 없는 현실 속에 나만의 소소한 환상을 채웠다. 오렌지빛 조명을 켜놓고 흰 시폰 커튼이 한들거리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노랫소리에 마음을 맡겼다. 그 사소하고 작은 여유가 마음의 호수에 작은 풀이파리 하나를 던졌다. 동그라미가 잔잔하게 일며 평온해졌다. 마음이 치유되었다.


휘게는 마음 상태의 일종으로서의 아늑함, 혹은 냉혹한 바깥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위로하는 소박한 위안으로의 선회를 뜻한다. 나는 지금 양초와 차, 적당한 양의 케이크, 따뜻한 점퍼, 올 굵은 양말, 난롯가에 오롯이 파묻혀 앉아 있을 수 있는 넉넉한 시간으로 가득한 휘게 라이프 속으로 파고들어 가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결혼 전, 겨울방학마다 제주도 올레길을 찾았다. 겨울이라 사람이 없었고 비행기 티켓값이 저렴했다. 길 위에 세찬 바닷바람이 불었다. 패딩에 달려있는 모자가 머리 뒤로 벗겨질 만큼 강한 바람이 뺨을 때렸다. 어떤 때는 바람의 저항을 맞서며 걷는 것이 힘들 만큼 바람의 진면모를 제대로 맛보았다. 천천히 발자국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사유의 바다에 빠졌다. 그런 강한 추위와 대자연의 힘을 맞서는 행위는 순간 과거와 미래를 사라지게 했다. 온전히 현재에 집중하게 했다. 육지에서 했던 수만 가지 고민은 바람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오직 길 위에서 내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의 발자국을 남기는 일만이 내 앞에 있었다.


극한의 추위와 맞닥뜨리는 것은 우리를 상투적인 표현인 ‘지금 이 순간’으로 데리고 갔다. 이 순간, 우리의 정신은 과거나 미래에 연연하거나 끝없는 할 일 목록을 적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추위가 우리를 지나치게 잠식하지 않는지 경계하며 바로 여기서, 바로 지금, 우리의 몸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겨울은 언제든 다시 찾아온다. 봄의 꽃망울이 터지려면 겨울이라는 쉼의 시간, 고독과 기다림의 시기가 필요한다. 그 겨울의 시간 동안 수동적으로 도망치고 침잠하는가, 적극적으로 삶 속으로 수용하고 생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가는 모두 우리 마음의 태도에 달려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겨울나기의 과정을 인식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법을 배우는 것. 우리는 겨울은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낼지는 선택할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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