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을 땐 운동을 해야 해
여느 때처럼 게으른 하루를 보낸 날. 그나마 덜 게으른 사람이 되어보고자 자전거를 끌고 배산공원으로 나왔다. 하늘색 하늘을 만끽하기 위해 산책로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 틈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내 베이지색 자전거는 남들 것보다 바퀴가 작았다. 쪼꼬미 자전거를 타고 남들과 비슷한 속도를 맞추기 위해선 반 바퀴 정도 더 빨리 굴러야 한다. 자꾸만 나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야속해질 즘 생각했던 반환점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람이 송글송글 맺힌 이마의 땀을 식혀줬다.
‘아, 자전거를 바꿔야 하나..’
네이버에 '로드 자전거'를 검색했다가 가격을 보고 금방 창을 내렸다. 어차피 그렇게 엄청 사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전에도 이런 적 있었던 것 같은데. 종종 값은 내 판단 기준을 흐리게 만든다.
예뻐서 무심코 집었던 옷의 가격을 보고 슬며시 내려놓았을 때,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향수를 발견했음에도 집에 와 최저가를 검색해 보고 있을 때, 최근에 집을 고를 땐 예산보다 비싼 집은 살고 싶을까 봐 일부러 보지도 않았다.
내가 살 수 있는 것 중에 고르는 일이 익숙해졌음에도 익숙해진 내가 싫어질 때가 있다. 내가 지금 겪는 가난이 성인의 과도기인 20대에 으레 겪는 모습으로 치부할까 하다가 내가 나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나 싶다.
아빠의 노동으로 대학을 다니며, 아빠의 것보다 훨씬 좋은 교육과 가치관을 쌓고 있다. 아빠는 무엇을 바라고 나를 가르쳤을까. 엄마는 무엇을 바라고 1,000원, 2,000원 아껴가며 부어온 적금을 나를 위해 깨뜨렸을까. 나에게 기대했던 미래는 뭐였을까. 적어도 이런 고민을 하는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터널 끝에 날 기다리고 있던 건 매서운 바람이나 눈보라는 아닐까.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으니 우선 체력을 쌓아두고 씩씩하게 잘 걸어봐야겠다. 아, 물론 터널의 끝이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꽃밭 같은 거였으면 더욱 좋겠다.
계산해보니 달리기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되었다. 처음 달리기를 해보고자 큰 맘을 먹었던 날에 또렷하게 기억나는 몇 가지가 있다.
추운 겨울이었던 당시 회색 후드티에 검은색 운동복 바지를 입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내 속도를 낮추고 걷다시피 뛸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이마의 땀샘도 같이 열려 땀이 후두둑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그 후끈함을 집까지 간직한 채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의 시원함. 그 기분을 잊지 못한다.
그 뒤로 일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 나는 이어폰 너머 달리기 어플이 시키는 대로 달렸다. 8주 동안의 프로그램에서 처음에는 1분을 달리고 2분을 걸었다. 다음 주는 2분을 달리고 1분을 걸었다. 그랬더니 정말 마지막 주엔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래도 달리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생각했다.
여기에는 어떤 확실함이 주는 사랑도 존재할 것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 이번에 1분을 뛰었다면 다음에 2분을 뛸 수 있다는. 그다음엔 5분을 달릴 수 있다는 보장된 확신 같은 거였다.
하루는 이어폰 너머의 목소리가 잘 달리기 위해서는 근력 운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해준 날이었다.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이 함께해야 시너지 효과가 난다고. 근육은 마치 보조배터리 같은 것이라 우리가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말이다.
자연스럽게 헬스장으로 찾아 들어갔다. 근력 운동에 관한 관심은 전부터 있었다. 무거운 기구를 들고 으샤 으샤 하는.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분들의 전유물 같은 생각을 깨고 싶었다. 물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가 되고 싶었다.
아직 엄청난 무게까지 들 순 없지만 20kg의 바벨과 덤벨만 들어도 근육이 잘 쓰이는 느낌이 든다. 나한테 등 근육이 있구나. 햄스트링이 여기구나. 대흉근과 광배근은 이렇게 쓰이는구나. 내 몸이지만 몰랐던 감각들이 하나씩 살아났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아플 땐 마음을 살피고, 마음이 아플 땐 몸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제 기분이 울적할 땐 달리기를 한다. 땀을 잔뜩 흘리고 샤워까지 마치면 무엇이든 할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