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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휘 Jun 29. 2020

시커멓다면 미리 보여주세요

어릴 적엔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아주 작아서

뭘 보려 들면 아버지 어깨 위에 올라타서

머리 하나를 더 띄워야 했을 때 말이야


뼈가 무서웠어

1억 년 전 죽은 사체의 뼈를 보고 있으면

눈두덩이에 뚫린 눈구멍이 수 없이 많아 보여서

그 구멍 하나하나가 날 보고 있는 거 같았어


물이 무서웠어

부레가 없어서 평생을 헤엄쳐야 하는

시지프들의 유영을 보고 있으면

내 살갗을 뚫고 들어올 거 같았어


사실 유리 터널을 건널 때마다 무서웠는데

티 안 내고 걸었어


가오리가 무서웠거든

항상 웃는 얼굴로 아가리를 벌리는

태연함이 날 삼켜버리는 줄 알았어


나는 커다란 구멍 속 감춰진 그것이

평생을 헤엄쳐야 하는 물속의 시지프가

그의 입 속에 감춰진 그것이

너무 무서워서 한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잤어


요즘엔 항상 창문을 열고 자

유리창의 색이 시시각각 변할 때
밤은 더 까매질 수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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