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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휘 Aug 23. 2020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당신이 내게 얼굴을 붉힐 때 집 가는 길 한강의 석양이 위태롭게 흔들려 푸른빛으로 보일 때 짜증 난다 말했다 이유는 다른데 말은 같았다 말이 나온 곳은 분명 여기저기가 부르튼 바셀린의 흔적조차 없는 윤기의 황무지였지만 말이 거쳐 간 곳은 일관성이 통 없어서 정글 속 사막에 버려진 이상한 기운이 들었다 비가 오지 않는 7월의 한낮 같았다
 
 올해는 유난히 말라서 비가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구름은 여전히 태양을 자주 가려서 살갗에 닿는 습기는 비를 내리기엔 충분해서 밖에선 몸 곳곳에 구름이 달려야 했다 회색 티셔츠는 곳곳을 물들여 구름 색을 만들었다 겨드랑이를 흠뻑 적신 구름 물이 짜증 났다 구름은 왜 구름일까 궂음과 구림을 같이 말하다 보니 구름이 된 건 아닐까 


그냥 짜증 났다     


딱 붙은 티셔츠

흔들리는 경광봉     


주차장에 고인 웅덩이는 금세 마르겠지만 남의 온정에 기생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기는 닮지도 않은 생명을 잉태하고 빛을 따라 간 바퀴는 웅덩이를 지우고 생명을 지우고 모기는 악에 받쳐서 피를 빨겠다고 덤벼들고 가렵다며 여기저기를 긁은 사람은 살갗에 빨간빛을 틔우고 자국에는 닭살이 돋고 

이유는 여전히 다르지만 바퀴의 주인도 모기도 나도 그 날 하루를 짜증 났다고 말했겠지


달라질 하루는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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