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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Jun 20. 2024

지극히 평범한

  갑자기 너무 덥다. 요즘엔 한낮의 열기가 가신 저녁 여덟 시 이후에 밖으로 나와 공원을 걷는다. 매번 오늘만 쉴까 하는 마음을 딛고 나간다. 안 나가면 뭔가를 할 것 같지만 고작 리모컨을 들고 여기저기 흥밋거리를 찾아 버튼을 누를 뿐이다. 

  글을 올리지 않은 지난 두 주간은 지루할 만큼 편안했다...... 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이렇다. 

  절실하게 바라던 일은 프로젝트 자체가 없어졌고, 또 다른 일은 미끄러졌다. 와중에 나쁜 꿈같은 전조도 없이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리가 아파서 MRI를 찍었는데, 수술을 해야 하니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했단다. 동생과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던 중, 같은 증상으로 고생했다가 지금은 나아진 아버지 친구가 다른 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그 병원에 가기 위해 아버지 집 앞으로 갔다. 꼬부랑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가 평소엔 절대 쓰지 않던 지팡이를 짚고 집에서 나왔다. 


  "이 정도에 수술을요?"

  MRI 결과지를 들여다본 의사의 말에 마음의 무게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두 주간 입원비 포함 천만 원 이상을 예상하라던 돈 문제가 컸다. 우리는 연신 머리를 숙이며 밖으로 나왔고, 얼마 후 주사를 맞은 아버지는 다시 구부정한 노인이 되어 걸어 나왔다. 


  좋아하는 선배 언니가 전화를 했다. 유럽에서 한 달을 보내고 지난주에 돌아왔다고. 

  "그분(God)이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시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 순간이 놀라웠어."

  그 말 앞에는 길을 잃었다가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의 신은 나에게 어떠한가 생각해 보았다. 문제가 에워싸고 있지만 어젯밤은 평소와 비슷한 시각에 내 방 내 침대의 낡고 부드러운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깐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오늘 오전엔 아버지와 통화하며 좀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오후엔 어떤 나쁜 소식도 없이 시끌벅적한 카페아 앉아 가끔씩 빨대로 아이스커피를 빨아 마시며 이 글을 썼다. 

  

  지극히 평범한 하루를 허락한 것만으로도 신은 내게 잘해주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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