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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Jul 24. 2023

흥미로운 중년 남성은 없다?

분노클을 하는 이유

1. 두 달 전쯤, 장강명 작가가 중앙일보에 기고한 한 칼럼이 화제였다. 제목은 <흥미로운 중년이 되기 위하여>. 요점은 '책을 읽어라!' 였다. 칼럼은 곧장 SNS를 강타했다. 명쾌하고 단호한 조언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곧 비판적 해석들도 뒤따랐다. '책을 개인의 과시재로 여기는 속물적 태도','이성애자 비장애인 기득권 남성의 원론적 현상 분석' 등….


2. 유독 한 중년 남성의 버튼이 제대로 눌렸다. '초파리 교수'로 유명한 김우재 교수다. 페이스북에 장강명 작가를 향한 저격 아닌 저격글을 올렸다. '젊은 소설가 꼰대가 자기 밥그릇 챙겨보자고 쓴 칼럼'이라는 식의 인신공격성 글이었다. 왜 눌렸는지 알 것 같았다. 김 교수는 대학생/대학원생 때 본인이 읽을 책 대부분을 읽었기에, 이후에는 논문을 통해 지식의 정수를 얻는다고 했다. 흠..


3. 김우재 교수 글에 대해 장강명 작가가 반박글을 올렸다. 거기에 김 교수가 단 댓글이 클라이막스다. "마침 이번 주 칼럼 연재가 있는데, 칼럼으로 답장을 대신하겠습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칼럼으로 답장을 갈음하지 못했고, 원래 쓴 글마저 삭제했다. 그 기회의 틈을 파고든 사람도 있었으니... 오찬호 사회학자가 경향신문에 쓴 5월 29일자 칼럼이다. <독서의 효과는, 독서입니다> 절묘하게 파고든 위치 선점이 돋보인다.


4. 돌아가는 이 과정이 너무 웃겼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워크숍 <분노클 기획과정>에서도 언급했다. 분노클에서는 혼자만 보는 글을 쓰지 말고, 공적 글쓰기를 하라고 조언한다. 장강명 칼럼이 일으킨 일련의 파장은 '공적 글쓰기'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다. 자신이 어필하고 싶은 이슈(장강명의 경우, 독서)를 일간지 칼럼을 통해 효과적으로 이슈 파이팅하는 권력. 물론 불특정 다수에게 읽히기 때문에, 다양한 오독의 가능성을 염두하고 써야 한다.


5.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으로 유명한 서울대 김영민 교수도 '칼럼을 위한 칼럼'이란 칼럼에서 공적 글쓰기의 까다로움을 논한다. 독자 다수에게 다가가야 하므로, 각기 다른 독자들이 각자 다른 것을 가져가도록 글을 써야 한다. 하지만 그게 재미다. 누가 내 글에 버튼이 눌리고, 감응하는지 알게 된다. 공적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이 사회와 구성원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7. 문제는 발화자 대부분이 중년 남성이라는 것이다. 김영민 교수도 중년 남성이고.. 이슈파이팅도 남자가, 버튼 눌리는 것도 남자다. 소중한 공적 지면에 반박 예고를 할 생각을 하는 것도 남자고, 그 대신 틈을 파고든 것도 남자다. 장강명 칼럼 사건(?)은 모두 그의 칼럼 <흥미로운 중년이 되기 위하여>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내가 가장 공감했던 트윗은 이거였다. "애초에 흥미로운 중년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8. <분노클 기획과정>의 목표는 분명하다. 여성의 이야기가 공적 영역에 더 노출되는 것이다. 기획과정을 하는 7주간 나는 여자들의 글에 푹 빠져있었다. 장강명 칼럼의 문장을 빌리자면, 이 여자들은 '콘텐트가 확실하다.' 튀르키예 장례식을 전하는 이방인,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실천기, 안티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지역 활동가의 기쁨과 슬픔, 출세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노동자, 큐티마초 지역 방송국 피디, 가스라이팅 회고록.... 동시대 여성의 목소리가 중년 남성의 목소리를 대체하길 바란다.


9. 그런데 이 여성들은 자기검열에 시달린다. 내 글이 자의식 과잉같이 느껴지고, 글이 포화상태인 세상에 '굳이 내가' 써야 하는 이유를 잃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글을 칭찬한들 잘 믿지 않는다. 다만 같이 글을 읽다 보면,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도 한다. 동료가 내 글을 칭찬하는 건 구라같지만, 내가 동료의 글을 칭찬하는 건 진심이다. 그럼 어느 순간 동료의 피드백이 믿겨진다. 나도 거짓말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자기 글이 더 좋아진다.  


10. 지난 주 분노클 주제과정과 기획과정 두 과정이 함께 열렸다. 몇 주간 여자들의 글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매번 친구들에게 자기 자신을 검열하지 말고 쓰고 싶은 걸 쓰라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말을 저버린다. 나는 괜찮은 글을 쓰고 있는가, 나는 분노클을 잘 하고 있는가. 자기 의심을 이기기 힘들다. 그럴 땐 분노클을 계속해온 3년의 시간을 떠올린다. 오랜 의심 끝에 가까스로 내 재능을 인정한다. 나는... 당신이 자신의 글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




(+) 분노클이 궁금하다면 ...

https://www.instagram.com/untilwefinish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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