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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코는 왜 Oct 06. 2019

윤성현 감독의 무채색 도시

진흙 속에서 피는 꽃처럼, ‘윤성현’



여자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영화 세계를 실험하고 그 세계의 가능성을 증명받은 감독으로 최근 ‘윤가은’, ‘김보라’ 감독이 떠오르고 있다. 두 감독은 특유의 따듯한 색채와 희망찬 연출, 그리고 그 안에 상징적이고 시대적인 메시지까지 함께 담아내며 영화계의 새로운 바람을 가져왔다. 두 감독은 영화 속에서 여자들의 세계, 혹은 미성숙하거나 어린 여성이 사회와 세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자신을 증명하는지에 대해 조명했다. 두 감독이 여자 주인공들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펼쳐냈다면, 그 반대편에는 남자들의 세계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조명한 윤성현 감독의 영화가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에 보지 못했던 미성숙한 남자들의 세계를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 윤성현 감독의 <아이들>과 <파수꾼>이다.


윤성현 감독의 <아이들>


대부분의 감독들이 그렇듯이 장편을 바로 제작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단편에서 다루지 못했던 아쉬운 부분들을 장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길게 다루곤 하는데, 윤가은 감독의 경우는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를 계속 확장시켰고, 김보라 감독은 주인공 ‘은희’를 성장시킨 후 그에 맞는 시선과 시련, 그리고 세계를 선사했다. 윤성현 감독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밟았는데, <아이들>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미묘한 감정선과 기승전결을 보다 확실하게 <파수꾼>에서 나타내고 있다.


영화는 담담하다. 인물들의 행동을 그저 따라갈 뿐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분명 컬러임에도 배경이나 다른 사물들이 돋보이지 않고 오로지 인물에 집중하게 된다. 인물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우정’이다. <아이들>에선 ‘태준’과 ‘진욱’의 우정이 주로 그려지는데, 그 과정에서 ‘태준’은 단짝 친구 ‘범석’과 멀어지고 ‘범석’과 ‘진욱’의 갈등이 일어난다. 이렇게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윤성현 감독의 영화를 이끄는 가장 큰 힘이다.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표현할 줄 몰라 갈등이 생기고, 그렇게 생긴 갈등을 유려하게 풀 줄 모르는 미성숙한 아이들이 더 큰 갈등을 만드는 과정은 실제로 있을 법한 일이면서, 인간관계의 본질과 본성을 보여준다. 때문에 감독은 이에 집중한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다만 <아이들>에서는 짧은 러닝타임 때문인지 갈등이 표면적이고 단편적으로 표현되고 그 해결 과정 또한 충분히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같은 결을 가지고 있는 <파수꾼>에서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갈등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해결 방식 또한 단순한 화해나 상징에 기댄 것이 아니라 비극적이지만 현실적인 방식으로 표현된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파수꾼>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우정’이다. 특히 3명의 인물, ‘기태’, ‘동윤’, ‘희준’이라는 세 친구의 우정과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해 기태에게 일어난 비극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독선적인 우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들의 우정은 겉으로 보기엔 단단해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각자 개인의 감정이 앞서기에 언제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기태와 중학교 때부터 절친인 동윤, 그리고 기태, 동윤과 고등학교에 들어와 친해진 희준. 기태는 자신이 주목받는 것이 좋아 독선적인 우정을 이끌어 가고, 그 안에서 희준과 동윤은 각각 다른 이유로 기태와 생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끝내 기태를 외면하고 만다. 결국 주목받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인 ‘친구’가 사라진 기태는 자살을 선택한다. 이렇듯 이들의 불안한 심리와 정제되지 못한 행동들은 끝내 우울한 결말을 맞게 된다. 그들은 서로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감정만을 내세운 노력이었기에 관계 회복에 실패하고 만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관계에 대한 불안과 본질을 3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감상을 경계해야 한다. 아 저땐 저랬지, 혹은 저땐 저러면 되는데 하는 식으로 외부에서 이들을 바라보면 저 이야기가 그저 어린아이들의 일 같지만, 정작 우리도 저 아이들과 다를 게 없다. 아이들과 같이 미성숙하고 의욕만이 앞선 관계의 결말을 한 번쯤 겪어봤음에도 우리는 아직까지 관계에 서툴다. 그리고 관계는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를 찾아오고 우리를 떠나간다. 자만했을 때 다시금 시련을 주는 것, 그게 관계의 본질이다. 영화는 그것을 보여주기에 위해 미성숙함으로 무장한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때였지만, 그저 친구와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했던 그때, 우리 또한 혼자서는 뭐 하나 할 수 없을 만큼 나약했다. <파수꾼>이 보여준 다양한 갈등, 일탈과 방황, 친구의 절교와 자살,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은 결국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것 같지만 이 모든 일들 뒤에 남는 가치가 하나 있다. 결국 누가 상처를 줬고 받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친구의 죽음으로 성숙해진 이후에야 진심을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된 ‘아이들’의 모습, 진흙 속에서 피는 꽃처럼 나타난 ‘성장’의 메시지가 다시 개인을 단단하게 하고 그들을 다시 세상으로 내보낸다.



어쩌다 보니 시리즈처럼 감독들의 최근작과 전작들을 비교하게 됐다. 단순히 좋아서 쓰던 글에 애정을 갖게 된 지금부터는 내 글 한 줄 한 줄에 책임감을 느끼고 된다. 어쩌면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보게 될 때 내 글을 떠올려 준다면 그걸로 족할 것 같다. 다만 그 사람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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