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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s Nov 15. 2022

[31주 임신일기] 휴직 전 마지막 출근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일보다 힘든 육아를 향해 떠납니다~

30주, 후기 임산부의 체력 저하, 무료 만삭 사진 촬영

31주, 출산 휴가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 출근



11월 2일 수요일 (31주 3일)

출산 휴가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 한 주가 시작되었다. '언제부터 쉬어?'라는 질문에 항상 '12월부터요~'라고 대답했었던 나는, 갑자기 당겨진 휴직 일정에 2~3주간 빡센(?) 저녁식사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지난 월요일엔 가장 가깝게 지내는 부서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했고, 화요일엔 담당 임원께서 저녁을 사주셨다. 메뉴를 최대한 안 겹치게 고르는 게 힘들었는데, 복직할 때의 근무지가 이곳이 아니라서 메뉴 고르는 데 도움이 좀 되었다. 여기를 떠나면 생각이 날 것 같은 메뉴로.. 돼지고기, 곱창, 중국 음식, 양꼬치, 항상 2차로 가던 맥주집...


오늘은 팀 워크샵이 있는 날이다. 회사에서 매년 임직원의 스트레스 지수를 조사하는데, 우리 팀이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 팀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건 스트레스 정도가 심각한 팀을 골랐다가 보단 얼마나 응답에 솔직히 대답했는지가 선정 기준이 아닐지 의심된다.. 우리 팀보다 스트레스가 심한 팀이 분명히 많을 텐데...

제목은 힐링 프로그램인데 딱히 힐링이라기보다는 팀 빌딩 워크샵에 가까웠다. 내용도, 액티비티도 예전에 어디선가 했었을 법한 것들이었지만, 그저 일터를 떠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점심으로 호텔 런치를 준다는 게 제일 좋은 점.(ㅋㅋ)

워크샵이 끝나고 나의 송별회를 겸하여 팀 회식을 했다. 환영회 이후 주인공이 된 회식은 또 오랜만이었는데, 선배 부모님들께는 조언을, 부모가 아닌 선후배들께는 응원을 한 몸에 받았다. 


연초, 새로 만들어지는 팀으로 전배 제안을 받았을 때, '저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이라면 No'를 선택했던 이유는 현재 조직이 좋고, 사람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 현재 내 인생에서 1/3을,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라면 내 삶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는 나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난 '일보다 사람'이다.

출처: KTV 국민방송

현재 조직이 절대 영원하진 않지만, 심지어는 내가 복직한 이후에 나의 상황이나 조직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현재의 Stable한 상태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 안에서도 소위 말하는 '또라이'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좀 나은 '또라이', 그리고 중재해줄 수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됐다. 


11월 3일 목요일 (31주 4일)

드디어 마지막 출근 날이다. 미리미리 내 자리의 짐들은 집에 조금씩 갖다 두어서, 오늘 자리 정리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자리 정리를 대충 다 마친 후에, 다른 층에 근무하는 가까운 분들께 찾아가 휴직 인사를 하고 못 찾아가는 분들께는 메일로 휴직 인사를 전했다. 

점심시간에는 동기들과 점심을 먹었다. 우리 부서는 다음 달 근무지가 이동되어 복직하면 자주 못 볼 동기들과도 작별인사를 하고, 진심 어린 응원을 받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갑자기 부서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동료 중 하나가 날 다급하게 찾았다. 나는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다급하게 갔는데, 깜짝 선물을 받았다. 계속 내가 구매하려고 당근마켓을 들락거리던 베이비브레짜!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딱 필요한 물건을 선물 받았다. 선물에 힘을 보태준 모든 동료들과 다 같이 마지막으로 사진도 찍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물을 고르면서 이건 '아빠를 위한 선물'이 아닐까?라고 고민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자리를 비웠던 분들이 돌아오면서 나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주었다. 가끔 아기 사진을 보내달라는 분도 있고, 아내가 생각나는지 고생할 것이 눈에 보여 안타까운 마음을 비친 분도 있었다. 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마지막 퇴근은 사수인 책임님이 함께 해주셨다. 틈틈이 짐을 옮겨두었다 생각했는데, 막상 다 비우려니 오늘 짐이 꽤 나왔다. 그래서 책임님이 내 차까지 짐을 들어주셨다. 잘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건강하게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잠시 안녕!

마지막 퇴근길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이 정도면 내 지난 직장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몇 년 뒤 은퇴를 앞둔 우리 아버지처럼 나도 그렇게 긴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면, 지금 이때를 돌아봤을 때, 가장 좋았던 때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11월 4일 금요일 (31주 5일)

첫 휴가 날, 역시나 늦잠에는 실패했지만 눈만 떠도 행복하다. 회사를 안 간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연차를 소진하고 있는 11월 한 달간은 아직 만삭이 아니기도 하고, 체력이 그나마 조금 남아있기 때문에 무언가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 볼 생각이다. 


일단 첫날의 일정은 오랜만에 만나는 선배 엄마를 만나러 서울로 이동. 두 살 딸이 쓰던 물건을 물려받을 겸, 조언도 받을 겸, 그리고 근황 이야기도 나눌 겸 언니의 집으로 향했다. 내 친구들 중에는 임신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전무해서, 내가 처음 임신인 걸 알았을 때, 가장 먼저 이야기했던 사람이 이 언니이기도 하다. 임신테스트기가 두 줄이 나오긴 했는데, 병원은 언제 갔었는지, 회사에는 언제 얘기했는지 물어볼 데가 언니밖에 떠오르지 않았었다. 자주 연락하진 않았어도 가끔 나의 안부를 먼저 물어봐주고, 그저 나도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 사람이다. 

아이가 원래는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시간이지만, 오늘따라 열이 나서 어린이집에 못 갔다고 했다. 난 사진으로만 보던 아이를 실제로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웃는 모습을 못 봤다. 아이가 열이 39도가 넘어버려 아이 아빠가 집으로 오고, 약을 억지로라도 먹여야 해서 안쓰럽게 발버둥 치는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instagram @zuzu.mom

'애가 아플 때 제일 힘들어'라는 말을 직접 체험한 날. 보고 있기만 해도 너무 예쁘고, 어떻게 이런 생명체가 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고 귀엽고 소중한데, 이 아이 때문에 너무 힘들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니. 우리 써니는 어떨까, 내 아이니까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럽겠지?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아이, 사랑만 주기에도 시간이 아까운 아이로 키우고 싶다.


최근에 내 유튜브는 육아 관련 알고리즘에 걸렸는지, 육아 컨텐츠가 추천 목록을 장악했는데, 그러다가 우연히 접한 '본질 육아' 지나영 교수의 강연이 생각난다. 존스홉킨스 소아청소년정신의학과 교수인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난임치료를 5년 동안이나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결과가 좋지 않아 결국 난임치료를 중단하면서, 친정엄마에게 '나는 아이를 낳으면 진짜 잘 키울 자신이 있는데,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훌륭한 딸을 키운 훌륭한 어머니의 말, '아는 잘 키울라고 낳는 게 아니다. 사랑해주려고 낳는 거다.'

그리고 지 교수가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야 하는 사랑의 메시지로 강조한 두 가지. '조건 없는 사랑', '절대적 존재 가치'. 부모는 아이를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리고 너는 존재만으로도 특별하고 가치가 있고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이 두 가지 사랑의 메시지를 항상 마음에 품고, 써니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끊임없이 말해주어야겠다. 

'엄마는 너를 조건 없이 사랑해'
'너는 존재만으로도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아이야'
추천!!! Youtube '세바시 강연 Sebasi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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