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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Sep 07. 2021

믿음의 결

믿음 좋은사람 말고'믿음의 결'

학교, 직장, 교회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다. 

나의 이야기를 0부터 100까지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참 행복한 것이다. (지금은 있으니까 나는 행복한 건가 봐)

나이가 들수록 각자의 생각이라는 것이 굳어져버려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때론 버거워지기도 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테두리 안에 우리 모두가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기 다른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어쩌면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신앙이라는 포장 아래에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있기도 하다.)


믿음의 정도도 다르다. 

이 성장을 위한 노력도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성장에 대한 갈망이 있고, 어떤 이는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간다. 




우리는 흔히 배우자 기도를 할 때 ‘믿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믿음이 좋다는 것이 무엇일까?

진짜 믿음이 좋다고 그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일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믿음 좋은 사람의 정의를 한번 보자.

-기도를 잘하는 것

-리더로서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것

-사교성이 좋은 것

-말씀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것

-교회를 오래 다닌 것

등등등….


이게 정말 믿음이 좋은 것일까.


물론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면 이런 것들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저 매우 극히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니까.


믿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에 숨겨져 있는 본심은 무엇일까?

내가 믿음이 부족하니 믿음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내 믿음도 좀 좋아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 아닐까?

그러나 믿음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스스로 믿음을 성장시킬 수 없는 사람이 어찌 둘이 함께 있는다고 성장하겠는가!



나도 처음에 믿음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했지만.

어느 순간 기도가 바뀌었다.


‘믿음의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믿음 성장 몫은 그저 나와 하나님의 관계에 맡길 테니, 

나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끝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려고 노력한다. 이게 지나쳐서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나와 잘 맞는지 정말 모르겠더라. 내 머릿속으로는 도저히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 저는 잘 모르겠으니, 그저 저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의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기도가 좋은 기도였던 것 같다.




만남을 이어오며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는 ‘믿음의 결이라는 것’은


첫 번째로 신앙생활을 할 때 열심의 정도이다. 

매일매일 큐티를 하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런 정도가 비슷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상황인데 아무래도 오프라인 예배가 집중이 훨씬 더 잘된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리더를 하고 있고 온라인일 때는 온라인에 참여하지만 오프라인을 하면 무조건 오프라인으로 간다. 이런 열심의 정도가 비슷하면 서로 격려하게 되고 동기부여가 된다.


두 번째로 가치관이다. 같은 신앙인 이더라도 믿음의 정도는 다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신앙생활을 하지만 재테크와 부동산, 주식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관심을 잠깐 가졌다가 이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염려에서 비롯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 일의 목표는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데, 

부동산을 투자하는 것이 우리 미래세대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이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된 것이다.

재테크와 주식의 경우는 내가 벌어들이는 수익 이외에 다른 수익을 더 얻고 싶은 것이다. 

이는 내가 현재 벌어들이는 수익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때에 따라 필요를 다 채워 주실 텐데 이도 염려와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하지 않는다. 

한 가지 예이지만 이런 사례에서도 생각이 비슷해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세 번째로 신앙적 나눔을 할 수 있느냐 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열심의 정도와 가치관과 이어지는 것인데, 

우리는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끝에 결론은 결국 ‘하나님’이 되곤 한다.

결혼이라는 것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면 그 안에 하나님이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나눔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두는 사람이라면 모든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빠질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나눔이 되지 않는다면 정말 그건 너무 힘들 것 같다.

사람마다 나눌 수 있는 주제가 다르고 깊이가 다를 것인데, 이것을 상대방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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