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호식탐탐 15화

양파가 뭐길래

그럼 생양파도 먹어야겠네?

by 구멍난 숟가락



아빠는 중국집에 가면 양파를 달라고 한다. 기본 상차림에 양파가 있는 집이면 모르겠다. 양파가 없는 집에 가도 꼭 그런다. 동네에 맛있는 중국집이 생겨서 엄마 아빠랑 식사를 했던 어느 날이었다. 그 집의 기본 찬은 단무지, 자차이, 볶은 땅콩. 종업원이 기본 세팅을 마치자마자 아빠가 정중하게 말했다.

“양파 조금 주시겠습니까?”

“저희집에선 양파 안 드려요.”

“쓰읍.”

아빠는 쓴 입맛을 다셨다. 짜장면에도 짬뽕에도 탕수육에도, 중국요리에 빠지지 않는 양파가 이 집에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거 조금 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는 뜻인 듯했다. 아니, 그거야 줄 사람 마음이지요. 안 준다는데 왜 그러시나요, 아버지!

양파에 집착하는 아빠는 뒤끝도 있다. 식사가 끝난 뒤, 다들 맛있다고 기분 좋아하는데 아빠가 툭 한마디 던졌다.

“난 별로던데.”

이해할 수 없었다. 양파 좀 못 먹었다고 어떻게 그 맛있는 음식들이 맛없을 수 있나? 대체 양파가 뭐길래.

그 뒤로도 종종 중국집에 갔다. 그때마다 아빠는 “여기 양파 좀 주시겠습니까?” 라고 물었고, 나는 속으로 ‘또 시작이다…’ 하고 중얼거렸다.


한동안 아빠의 양파 타령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아빠가 새로운 타령을 시작했다. 외식 얘기만 나오면 “짜장면에 탕수육 어떠냐?” 하는 것이다. 탕수육 짜장면은 환영지만, 아빠가 고른 집이라면 분명 가성비를 따졌을 테니, 그냥 맛있다기보다 ‘가격에 비해’ 맛있는 집이 뻔했다. 그래도 물어봤다.

“거기가 어딘데?”

“대박각.”

“대박각!”

대박각이라면 이미 아빠도 먹어본 적이 있었다. 간짜장이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집으로 매장이 협소한데다 늘 대기 손님이 많아 내가 포장을 해왔더랬다. 아빠는 그 간짜장이 대박각 것인 줄 모르고, “너는 그 동네 살면서 대박각도 안 가봤냐?”는 친구의 말에 꼭 대박각에 가보겠노라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도 다시 먹어보고 싶었다. 이번엔 홀에서. 중국요리는 주방에서 나오자마자 먹는 게 제맛이니까!

그 사이 대박각은 매장을 넓혀 두 정거장 떨어진 곳으로 이전했고, 한 시간 대기는 기본이었다. 최근 고관절이 불편한 아빠에게 한 시간 대기는 무리였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대박각 2호점이 우리집 근처에 새로 생긴 것이다. 이름은 영은루.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웨이팅도 적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소문이 퍼졌는지 가게 앞엔 기다리는 손님이 제법 있었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다행히 의자가 마련돼 있어 힘들진 않았다. 딸과 단둘이 외식을 해서인지, 아니면 고대하던 짜장을 먹게 되어서인지 아빠는 들뜬 모습이었다. 나는 조금 긴장이 됐다. ‘과연 이 집엔 양파가 있을까?’

“oo님!”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우리는 홀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 받은 테이블에는 기본 상차림이 놓여 있었다. 얇게 저민 단무지, 고추절임, 볶은 땅콩. 양파는 없었다. 나는 아빠를 흘끔 봤다.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빠는 점잖게 물을 따르고 있었다. 설마…… 취향이 변하셨나?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음식은 미리 주문해둬서 금세 나왔다. 계란 튀김이 올라간 소담한 면, 인심 좋게 담은 유니짜장. 진한 춘장의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짜장을 몽땅 붓고, 계란을 톡 터트렸다. 노른자가 짜장 위로 흘러내렸다. 침을 꼴깍 삼키며 고루고루 비비는데, 아빠가 말했다.

“여기 양파 좀 주시겠습니까?”

아뿔싸. 방심했다. 역시, 아빠는 그렇게 쉽게 양파를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양파를 안 준다는데 왜 굳이? 양파 대타로 볶은 땅콩은 안 되나요, 아버지?

친절한 직원이 동작을 멈추고 아빠를 바라봤다. 아주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직원은 두 손을 모아 말했다.

“물론이지요!”

작은 접시에 양파가 담겨 나왔다. 아빠는 젓가락으로 양파를 집어 춘장에 찍고는 아작아작 씹었다. 아빠는 왜 이렇게까지 양파를 고집할까.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어디, 나도 한 번 먹어 볼까? 유니짜장을 먹다 말고 양파 접시를 봤더니, 어느새 양파는 동이 나 있었다.

식사가 끝난 뒤. 미뤄둔 숙제를 끝낸 개운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서는데 아빠가 말했다.

“다음엔 짬뽕을 먹어봐야겠다.”

앙파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평가가 후하다니. 아빠에게 양파란 도대체 뭘까.


우리 자매들은 가끔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뒤, 기일을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하곤 한다. 지금까지 나온 계획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기일마다 모여서 두 분이 좋아하던 음식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 얘기를 하던 중, 누군가 말했다.

“그럼 생양파도 먹어야겠네?”

우리는 다함께 웃었다.

아빠에게 양파가 뭔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 양파가 뭔지 이제 안다. 우리는 양파를 보며 아빠를 기억할 것이다.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난 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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