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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멍난 숟가락 Nov 05. 2017

치킨 삼국지

과연 양념이냐, 후라이드냐!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배가 고파야 먹는 사람. 때가 되면 먹는 사람. 나는 후자 쪽이다. 내 몸의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내 유전자가 늘 이렇게 외치기 때문이다. “오늘이 다 지나가기 전에 끼니를 챙겨야 한다!”      


그날도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동생 역시 점심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가 무교동 낙지볶음과 일민미술관 카페에서 와플을 먹어서 배가 부르다고 했다. 하지만 끼니때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저녁을 먹을지 말지, 먹는다면 뭘 먹을지를 놓고 논의했다. 동생이 광화문에서 버스를 탈 때부터 일산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일단 만나기로 했다. 제부까지 셋이서.     


그런데 제부가 명쾌하게 메뉴를 정해주었다. 또 다시 뭘 먹을지 논의하던 중에 튀어나온 “치킨”이란 단어에 제부의 얼굴이 환하게 밝혀진 것이다. 어느 치킨집으로 갈 지는 금방 정해졌다. 얼마 전, 근처에 새로 치킨집이 생겼는데 다들 한번쯤 먹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날통닭”이라는 이름의 그 치킨집에서는 영계를 통째로 노릇하게 구워서 판다. 한 마리에 6천원, 두 마리에 만천원. 3천원을 더 내면, 한 마리는 양념으로 바꿀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만사천 원을 주고 양념 한 마리, 후라이드 한 마리를 샀다. 근처 홈플러스에서, 당연히 맥주도 샀다. 저녁 메뉴가 갖춰지자, 동생이 한 마디 했다. “아, 이제 치킨이 당기네!” 나 역시 약간의 출출함을 느끼고 있었다. 먹을 것 앞에선, 언제나 내 위가 먼저 발 빠르게 움직인다.      


치킨을 먹을 때도 리듬과 박자가 존재한다. 처음에는 눈치 볼 거 없이, 각자의 리듬과 박자대로 먹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한다. 누가 얼마나 먹었는지, 언제 포크를 내려놓을 것인지 가늠해본다. 그날은 동생이 먼저 포크를 내려놓았다. 이제 남은 건 제부와 나. 제부는 양념을 집중적으로 먹었고, 나는 후라이드에 몰입해 먹었다. 게다가 난 닭다리를 두 개나 먹었다! 양념 하나, 후라이드 하나. 너무 많이 먹었나 싶었지만, 치킨 앞에서 내 이성은 이미 마비되고 말았다. 치킨을 한 조각 집을 때마다 나는 정중하게 물었다. “이거 먹어도 되니?”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계속 먹었다. 끝까지 포크를 내려놓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느새, 치킨은 단 두 조각만 남았다. 날개 쪽 양념 한 조각과 다리 쪽 후라이드 하나. 제부와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마치 전장에 나선 무사처럼.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인가! 적과 나는 같은 것을 원하는가, 다른 것을 원하는가. 과연 양념이냐 후라이드냐! 이윽고 제부가 입을 열었다.

“누나, 고르세요. 전 다 괜찮아요.”

혼자 탐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속마음과는 달리,

“나도 괜찮아요. 원하는 거 고르세요.”

“전 정말 괜찮아요!”

“어머, 나도 괜찮아요!!”


다시 정적. 저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양념이냐 후라이드냐! 다시 제부가 말했다. 

“전 괜찮아요. 후라이드도 양념에 찍어먹으면 돼요.”

“나도 둘 다 괜찮아요.”

하지만 실제 내 속마음은 이랬다. 

‘제부는 양념을 너무 많이 먹었어. 여기서 내가 후라이드를 고르면, 골고루 맛 볼 기회를 뺏는 거겠지? 아, 나는 후라이드가 좋은데… 여기서 내가 후라이드를 고르면 후라이드를 내가 싹쓸이 하는 거잖아. 거기다가 닭다리 세 개를 내가 다 먹는 거고!’


그때, 동생이 끼어들었다. 

“왜 이렇게 진지해. 그냥 여보부터 선택해!”

그렇게 선택권은 제부에게 넘어갔고, 망설이던 제부는 포크를 높이 추켜올렸다. 포크가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양념이냐 후라이드냐. 앙념? 후라이드? 양념… 양념… 으윽, 포크가 찍은 건 후라이드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휴, 내가 먼저 선택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그렇게 삼국지 속 전쟁 같은 저녁 식사가 끝이 났다.      


그런데 다음 날. 동생 부부를 다시 만나게 됐을 때 제부의 진짜 속마음을 알게 됐다. 동생이 “이제 솔직하게 얘기해보자. 석현아, 너 뭐 먹고 싶었어?” 라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제부는 “양념”이라고 대답했다. 제부가 후라이드를 선택한 건, 다 나에 대한 배려였던 것이다. 나는 “아악, 이럴 줄 알았으면 솔직하게 말하는 건데!” 라고 절규까지는 아니고, 소리를 조금 높여 말했다. 치킨에 대한 내 마음은 언제나 똑같다. 치킨은 후라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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